봄에는 주꾸미를 먹고, 가을에는 전어를 먹으러 오곤 하는 동네 해물집을 오랜만에 찾았다. 두툼한 겉옷을 벗고 자리에 앉은 뒤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테이블 위에는 과메기와 도루묵찌개가 올라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도루묵찌개가 반가워 일단 냉큼 시키고, 다소 시큰둥하게 과메기도 함께 주문해 보았다.
나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자랐다. 사실 태어난 곳은 강원도가 아니고, 초등학교 때 5년 정도 산 게 전부이긴 하지만, 나의 인격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던 시기였기에 이 시간의 농도가 짙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두 분 다 강원도가 고향이시고, 어쩌다 보니 강원도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평소 내가 강원도 사람이구나, 를 느낄 때는 많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학교에서 울산바위와 도루묵의 이름의 유래를 배우지는 않는다는 사실에는 짐짓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울산바위의 경우 사실상 전해져내려 오는 전설에 더 가까우니 그렇다 쳐도, 도루묵의 경우에는 나름 실제 연구 논문도 다수 있는 민담인데 말이다. 그 왕이 정확히 누구였냐에 대한 의견은 다소 분분하지만, 피란길에 오른 임금이 '묵어'를 맛본 뒤 맛이 좋아 이름을 '은어'로 바꾸었지만, 전쟁이 모두 끝나고 환궁한 뒤 다시 그 맛을 보고는 크게 실망하여 이름을 '도로 + 묵'으로 되돌렸다는 이야기이다.
무를 넣어 개운한 알배기 도루묵 찌개
이 계절 즈음이 되면 밥상에는 어김없이 도루묵찌개가 올랐고, 어른들은 이 얘기를 반복해서 들려주시곤 했다. 호방하게 썬 무를 맨 밑에 깔고, 저마다 송골송골 알을 잔뜩 밴 도루묵을 곱게 뉘인 뒤 빨간 양념으로 푹 지져낸 도루묵찌개였다. 씨알이 크지는 않지만 제법 뽀얀 게 부드럽고, 알은 꾸득꾸득 씹는 재미가 있으며, 숭덩숭덩 들어간 무 덕분에 국물은 아주 시원하다.
가끔 서울에서 만나는 도루묵들은 냉동으로 올라와 살이 단단하고 알도 딱딱하지만, 선도 좋은 도루묵 살은 굉장히 연하고 부드럽다. 이 날의 도루묵은 냉동은 아닌 지 살점도 부드럽고 알도 뽀들뽀들 기분 좋게 씹혔다. 어릴 적부터 친숙하게 먹어본 그 맛과 얼추 비슷한 맛이 났다.
좌측부터 각각 꽁치와 청어로 만든 과메기
그에 반해 과메기는 사실 수년 전 난생처음 먹어본 음식임을 고백한다. 어릴 적부터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더랬다. 청어와 꽁치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조선 수군들이 전쟁 시 전투가 없을 때는 고기잡이에 몰두 소금은 귀했기에 절이기보다는 말려서 군량으로도 재원으로도 요긴하게 활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포항 사람들은 한 번씩 학교에서 모두 배웠을 수도 있는, 그 사실을 말이다.
꽁치와 청어 과메기를 나란히 먹어보니 둘은 식감도 맛도 확연히 달랐다. 청어는 좀 더 부드럽고 젤리 같은 식감으로 특유의 비릿한 향도 덜하게 몰랑한 반면, 꽁치는 살짝 비릿함은 돌지만 조금 더 꾸들꾸들하게 농축되어 고소한 맛이 났다. 그냥 다 비슷비슷한 깜장 생선 조각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음식을 두 개나 한꺼번에 맛본 느낌이다. 포항에서는 이 과메기를 밥반찬으로도, 간식으로도 많이 먹는다던데, 이제야 이 맛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게 같은 바닷마을 출신으로서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봤자 이 작은 반도, 맞닿아있는 바다가 짧은 겨울 동안 내어주는 맛. 내년부터는 이렇게 꼬박꼬박 한 상에 모아 올려 먹어봐야겠다.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그리고 어른이 되고난 후 새로 배운 바닷마을의 겨울 식탁을 한 상 차려 챙겨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