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20대부터 함께해와 이제는 각자 가정을 꾸린 어엿한 30대가 된 친구 세명과 함께였다. 예전에는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참 많았는데, 어느샌가 '아무거나 좋아, 얼굴이나 보자'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던진 '요즘 킹크랩이 싸다던데?'라는 한 마디가 우리를 노량진으로 이끌었다.
금요일이어서 그런가, 퇴근하자마자 달려갔는데 이미 수산시장 내부는 활기를 넘어선 거대한 에너지가 그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조마다 펄떡대는 생선들과, 그 이상의 힘을 쏟아 한 마리라도 더 팔고자 하는 상인들.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먹잇감을 고르려 눈을 빛내는 손님들까지. 매끈하게 시공된 새 건물 바닥이라 유독 더 크게 들리는 찰박찰박 물소리들과 뒤엉켜 마치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했다.
사실 수산시장은 늘 어렵다. 좋은 생선을 고르는 법도 모르겠고, 바가지 쓰기 십상이라던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킹크랩 가격이 싸다고는 들었지만, 어느 정도 가격에 먹어야 싸게 잘 먹었다 할 수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 어엿한 삼십 중반의 어른인데, 이곳에 오면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가 되는 기분이다. 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노량진 호갱 안 되는 꿀팁' 급하게 검색하여 읽어보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나름 모든 신경을 끌어모아 제법 어른인 척, 제법 야무진 척해보지만 아마 한참을 어설펐으리라.
이럴 때는 필요한 것은 결국 '믿음'이다. 끈질긴 호객 행위에 못 이겨 마주하게 된 이 상인 분이 부디 양심적인 분이시길. 이 분이 골라주셔 내 앞에 도달한 이 생물이 부디 좋은 아이이길. 그저 운명에 믿고 맡겨볼 뿐.
이 날 우리는 키로 당 8.5만 원에 킹크랩을 구매했고, 가리비와 새우 등을 덤으로 받았다.
킹크랩은 우리가 예약한 초장집으로 자동으로 이송되어, 먹기 좋게 쪄서 내어주신다고 했다. 늘 이 과정은 참 편리하면서도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지만, 별 수 있나. 가벼운 마음으로 미리 예약해 둔 초장집으로. 좌식 테이블에 얇은 비닐 한 장 깔고 왁자지껄 먹는 초장집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어느덧 예쁜 편백 나무 찜기 받침이 세팅된 테이블에서 가져간 와인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아이스버킷까지 세팅해 주는 시대가 와있었다.
챙겨 간 화이트와인을 꺼내어 놓고 잠시 기다리면 먼저 덤으로 받은 새우, 굴, 가리비 등등이 먼저 등장. 그런데 좀 뒤적여보자니 젓가락에 걸리는 몇가지가 빈 껍데기라니. 괜히 또 어리숙하게 당한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던 찰나, 자세히 보니 쪄내는 과정 사이에 껍질에서 탈락했을 뿐인 오동통한 살점들이 눈에 띈다.
역시, 믿음이 중요하다.
워낙 손님이 몰린 날이어서 그런가 킹크랩이 쪄서 나오기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1시간 뒤에 받은 킹크랩은 이미 새우와 조개로 어느 정도 갑각류의 달큰함을 맛본 입에도 한참을 부드럽고 한참을 달고 한참을 맛있었다. 푹 쪄 내어 한껏 부드러워진 껍질 사이로 올올히 들어찬 속살이 아쉬움 없을 정도의 볼륨으로 입안으로 들어오니, 세상 더는 부러울 게 없다.
다리 하나하나, 몸통 살 구석구석 쪽쪽 빨아먹은 빈 껍질을 차곡차곡 포개어 나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 그리고 남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게딱지에 내장으로 비빈 밥이 나올 때 즈음.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이미 수백 번은 되풀이하고 있는 중인 학창 시절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 시절의 상상했던 엄청 단단하고 멋진 어른의 삶과는 영 딴 판인, 아직 한없이 어리고 철없는 우리의 모습에 까르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수산시장에서 매일매일 킹크랩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게 움직이는 "어른"의 사회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그럴듯한 대화를 나누고, 제법 야무진 척을 해보지만, 사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그 결정 중에는 분명 현명한 선택도 있었을 것이며,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근데 뭘 어쩌겠는가. 그냥 내가 내린 결정을 믿고 먹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