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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inar Flow Oct 18. 2021

재앙 리콜러 두 남자의 간사이 여행 #1

비, 눈보라, 만나면 사건 사고를 부르는 두 남자의 여행 이야기



햇수로 19년, 지긋지긋한 친구놈이 있다. 중3때 동네에서 고구마를 판 적이 있는데, 서로의 인생에서 손꼽히는 추억이다. 얘 집에선 나를 고구마라고 부른다. 


고구마와 도루코의 4박 5일 간사이 여행이 시작됐다. 대게 남자들이 그렇듯, 우리 여행은 순식간에 성사됐다. 휴가 가야 되는데 어디가지? 일본이나 갔다올까? 어 그래. 그냥 그렇게 시작되는거다. 짐은 가기 전날에 싸면 되고, 허세빡세게 들어간 선글라스 하나면 준비는 끝난다. 그렇게 떠난다.


알려둘 것이 있다. 이 친구와 어딜 가면 크던 작던 항상 재앙이 따른다. 바닷가에 놀러갔다 싸워서 따로 돌어온 적도 있으며, 낚시 갔다 폭설을 만나 차 사고로 헬게이트가 열릴 뻔 한적도 있다. 이번 역시 쉽지만은 않은 여행길이었다.


동남아와 일본을 저울에 올려놓고 나는 꽤 고민했고, 그래도 익숙한 일본이 낫겠다 싶었다. 나름 첫 해외여행이라 호텔부터 항공권까지, 꽤 오랜 시간을 조사했다. 성수기에 싸봤자 얼마나 싸겠냐만, 피치항공의 항공권으로 30만원 초반대에 예약했다.



나는 서울에 있고, 친구는 대구에 있고, 비행기는 김해에 있다. 서울 > 대구 > 김해. 이 것만으로도 빡센 일정이지만, 흐린 날씨도 짜증났지만, 마음은 설렌다.


역시는 역시다. 

김해 공항에 내려 티켓을 뽑자마자 재앙은 시작된다. 친구가 김해공항으로 오는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렸단다. '조금만 참지 이 미x놈, 다 와서 무슨 x소리인가' 

근데 내가 왜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분명 내 지갑이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닌데.. 이정도 쯤은 서막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다행히 지갑은 발이 달려있지 않았고, 비행기의 발도 아직 땅에 붙어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맨 앞줄에서 맨 뒷줄로 밀려난다. 수속은 20-30분 정도 늦어졌다. (그래서 2시간 전에 오라고 했나보다.)


급하게 핫도그로 배를 채운다. 

'어?'

여기에 아까 티케팅을 할 때 내 앞에 있던 여자가 다시 서있는 게 보였다. 수수한 복장의 그녀와 두 세번 정도 눈이 마주쳤는데, 여기서 또 만난 것이다. 신기한 듯 서로를 보면서 일본에 도착하기까지 4번이나 마주치게 되는데.. (의미 없는 숫자에 의미를 두는 남자입니다.)



기분좋은 착각은 내리고 짐을 올린다. 피치항공은 소문대로 작고 좁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재앙이 찾아온다. 피치항공은 자리지정도 부분 유료화되어 있다. 창가 자리로 예약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창가 바로 옆이었다. 창문이 작아서 여기는 창가가 아니면 밖을 보기 힘들다. 


참 꾸준한 삽질이다. 창가에 앉은 그 아주머니가 그 순간만큼은 만수르보다 부러웠다. 1시간 30분동안 밖을 볼 수 없었고, 아이패드만 눌러댔다. 중간 중간 알아들을 수 없는 저글리쉬(일어+영어)를 구사하는 스튜어디스 앞에서 'what?'이라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고.. 다행히 내 옆에 앉은 놈은 캐나다 유학 몇년 다녀왔다. (물론 그가 다 알아듣는지 아닌지는 확인 할 수 없었다.)



  

저가항공사의 디젤 냄새와 함께 이륙한 비행기는 간사이에 도착했고. 처음 만난 건 궁극의 습도였다. 대구출신임에도 우리 둘은 10분만에 혀를 내둘렀다. 여행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x발 x나 덥네"였다. 10분이면 땀으로 흥건할 정도다. 


  


입국심사를 하는 곳에서 잊고 있던 그녀가 다시 보인다. 나는 친구의 친절한 지도 아래 일본인 이미그레이션 라인에 서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 여자를 따라서 그쪽으로 간 건 아니다.) 공항 직원이 당황해 하더니 위를 가르키며 여긴 자국민 게이트라고 알려준다. 

"아, 네" 

다시 외국인 라인에 줄을 선다.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데.. 그녀가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창피한 표정을 감추는데는 선글라스만한 게 없는데, 다행히 쓰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건물과 마을이 있고, 왼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지겹지 않은 그림들을 지나치면서 '그래 여행은 이 재미야'라고 생각한다. 일본 버스나 지하철은 조용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흡연구역으로 달려들어갔는데, 친구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와 여기서 담배를 피고 방금 떠났다는 것이다. 

"아... 그래?음.." 

담배는 더 빨리 타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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