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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코치 Young Aug 22. 2021

씨앗을 심어주는 엄마, 싹을 틔워주는 책

씨앗을 심어주는 엄마, 싹을 틔워주는 책

 아이와 함께 있으면 전에는 해보지 않던 일을 하나씩 하게 마련이다. 집에서 식물을 길러 보는 것도 그랬다. 아이와 함께 빈 화분에 흙을 채우고 씨앗을 심었다. 매일 아침마다 조금씩 물을 주고 씨앗에서 언제 싹을 틔울지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이제는 따뜻한 봄이 오면 습관적으로 빈 화분에 무슨 씨앗이든 심으려고 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므로 씨앗을 심기에 아주 좋다. 씨앗을 키우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성을 들인 시간만큼 뿌듯함이 배가 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의 씨앗을 심어주려고 한다. 아이와 놀아주고, 많은 걸 보여주고, 다양한 것을 들려준다.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건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아이는 엄마가 읽어준 책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책에 나온 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언젠가는 아이의 행동으로 싹을 틔우기도 한다. 




 아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 숙제도 혼자 곧잘 하고, 밥도 혼자 잘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자 나도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처럼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을 만나 저녁시간에 상담을 하게 되면 퇴근 시간이 늦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날은 아침에 아름이에게 내가 저녁에 상담 약속이 있어 평소보다 집으로 늦게 올지도 모르니 저녁을 먼저 챙겨 먹으라고 일러두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평일에도 사무실에 와서 나를 기다릴 때도 있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더니 집에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날도 혼자 집에 있겠다고 해서 저녁에 먹을 반찬이랑 국을 넉넉히 만들어 두고 아침에 출근을 했다. 저녁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부랴부랴 들어갔는데 마침 나보다 조금 먼저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와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름이에게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아직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아이더러 혼자 먼저 저녁 먹으라고 해서 미안했던 마음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시간이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밥을 안 먹고 있어? 숙제는 했어?”


 아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자기 방으로 향했다. 아이 뒤에서 황급히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휘젓던 남편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녁 8시가 다되어가는데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고, 숙제도 하지 않았다는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집에 오자마자 애한테 왜 그렇게 짜증부터 내냐고 말하는 남편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그사이 방으로 들어간 아름이가 손에 접시를 들고 나와 말했다. 


“엄마, 사실은 이거 만드느라 그랬어요.”

“이게 뭔데?”

“오늘 학교에서 달걀로 카나페를 만들었는데 집에서 다시 해보고 싶었어요.”


 접시 위에는 삶은 계란이 반으로 잘라져 있고 그 위로 삶은 노른자에는 오이와 계란이 다져져서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이런 걸 혼자 어떻게 만들었냐며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아름이는 신나서 내게 말했다. 



“엄마, 제가 평소에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데 먹을 때마다 아삭한 식감이 없어서 좀 아쉬웠어요. 전에 엄마가 저한테 칼로 다지는 거 알려주셨잖아요. 오이랑 당근이랑 다져서 노른자랑 섞으면 더 맛있어질 거라고 상상했어요.”


 평소에 자기가 무언가 직접 하는 걸 좋아하는 아름이에게 볶음밥 만들 때 칼로 야채 다지는 걸 알려주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을 떠올려 아이는 작은 손으로 오이랑 당근이랑 다졌나 보다. 아이가 한 것이라 해도 제법 야무지게 오이와 당근을 작은 크기로 다져 놓았다. 얼마나 신경 써서 칼로 다졌을까 싶어 순간 목이 매어왔다.


“엄마, 드셔 보세요! 에그 카나페가 2개니까 하나는 엄마가, 하나는 아빠가 드세요.” 

“너도 먹어야지.” 

“아니에요, 저는 학교에서 만들어서 먹었어요. 사실 더 만들고 싶었는데 냉장고에 계란이 하나밖에 없어서 이것만 만든 거예요.” 


아름이가 에그 카나페 만드느라 저녁을 못 먹은 걸 모르고 먼저 화부터 낸 게 미안해서 얼른 에그 카나페를 입에 넣고 먹었다. 


“엄마, 계란에 소금은 안 넣었는데 데코로 케첩 뿌려서 심심하진 않죠?” 

“음.. 정말 맛있어. 그리고 네 말대로 오이랑 당근이랑 다져 넣어서 아삭한 식감 때문에 계란이 훨씬 맛있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어떻게 이걸 혼자 해볼 생각을 했니?”

“엄마가 읽어 준 책에서 그 요리사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요리는 행복한 상상이라고. 망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요.”


<세상을 발칵 뒤집은 창의인물> 책에서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 편 by 웅진


 그날 늦은 저녁을 후다닥 먹고 아이가 말한 그 책을 꺼내 읽어 주었다.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늘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음식이 나온다. 페란 아드리아는 생선뼈를 잘 튀긴 다음에 솜사탕으로 겉을 감싼 ‘미라’라고 불린 요리도 있다. 젤리가 접시에 담긴 요리가 나와 손님들이 어리둥절해하면 페란 아드리아는 손님에게 조용히 다가가 ‘수프를 포크로 콕 찍어 드세요.’라고 말한다.


 페란 아드리아가 요리를 개발하는 개발실은 마치 과학실험실과 같다고 한다. 마지막 장에 ‘페란 아드리아처럼 해보기’ 부분을 읽으면서 “나중에 엄마에게 또 에그 카나페 만들어 줘. 정말 맛있었어. 그리고 엄마가 모르고 너한테 화낸 거 미안해. 시간이 늦었는데 저녁을 안 먹고 있다니까 나도 모르게 화부터 냈어.”라고 말했다. 아름이는 내게 나중에 에그 카나페를 또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잠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 내용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이는 책에 나온 말을 기억하고 따라 했다.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에게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씨앗을 심어주고 싹을 틔우지 못한 경우도 있다. 엄마의 잔소리로 인해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은 경우가 그렇다. 아름이와 함께 본 책 중에 크레파스, 사인펜, 물감 등의 재료로 다양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인데 언젠가 아이랑 보면서 책에 나온 대로 나중에 해보자고 했었다.


 아름이는 초등학교 때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낮 시간이 자유로웠다. 그 시간에 아름이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혼자 꼼지락거리며 무언가 만들기를 해서 그때 쓰라고 아이클레이와 크레파스, 파스텔, 색종이 등을 사주었다. 아이가 원하면 언제든지 꺼내서 마음껏 쓰도록 집에 사다 놓았다.



 어느 날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가 자기 몸집보다 커다란 교자상을 펼쳐놓고 그 위에 스케치북을 펼쳐 놓았다. 물감에 물을 타 묽게 만들어서 스케치북에 흘려놓고 빨대로 후후 불고 있었다. 아름이가 힘차게 빨대로 부는데 스케치북 밖으로 물감을 탄 물이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돼!’라고 소리쳤다. 조심하란 의미에서 말하려고 한 건데 너무 크게 소리쳤었나 보다.


 아름이는 깜짝 놀라서 스케치북을 덮어 버렸다. 나는 물감이 카펫에 떨어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하며 신문을 깔아주려 했는데 이미 마음이 상해버렸는지 안 하겠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아이가 뭔가 해보려고 하면 되도록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려고 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인지 나중에는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제법 잘 만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화장품을 넣어 다닐 수 있는 파우치를 만들어 왔는데 반에서 자기 혼자만 손바느질로 지퍼를 달았다고 자랑했다.


 이것저것 혼자 만들어보던 아름이는 과자와 빵을 직접 만들고 싶어 했다. 아름이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빵이 있는데 오븐이 필요하다 했다. 그러나 집에서 아이 혼자 있을 때 오븐을 사용하면 위험할까 걱정이 되어서 집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바꿀 때가 되면 오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에 오븐이 있는 친정으로 아름이에게 베이킹 재료를 손에 들려 보냈다. 우리 집에서 친정이 가깝기도 하고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도와주고 칭찬까지 해주셔서 더 좋았다. 든든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것저것 만들어 보더니 아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금혼식 때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축하드리기도 했다. 



 아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자기가 학교 대표로 서울시 독서토론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아름이 학교에서 독서토론대회가 있었는데 제일 먼저 반에서 토론을 해서 대표가 되고, 그다음에는 학년 대표로 되어 마지막에는 학교 대표로 서울시 독서토론대회에 가게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을까 싶다. 담임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는데 토요일에 독서토론대회가 있으니 부모님이 가도 되고, 선생님이 가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독서토론대회에 나간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어떻게 독서토론대회가 진행되는지도 궁금해서 내가 따라가겠다고 했다. 


 독서토론의 주제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 아름이는 독서토론대회가 있는 토요일까지 며칠 동안 스스로 집에 있는 인물 책을 꺼내 읽고 공책에 정리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서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기특해했다.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느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 되어 아이 손을 잡고 서울시가 주최한 독서토론대회가 열리는 학교로 갔다. 아이들은 정해진 반에 들어가 토론 주제로 입문을 30분 동안 쓰고 토론을 했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토론을 하는 동안 대기하는 장소인 강당에서 아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름이가 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왔다.


 아이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동상을 받았다는 결과 발표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먹는데 아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들어간 그 반에서 내가 쓴 입문이 점수를 제일 잘 받았어요.”

나는 아름이에게 혼자 스스로 준비해서 했으니까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과 함께 가족 모두 아름이가 독서토론대회에 다녀온 걸 축하해주러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을 먹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독서토론대회에 아이들이 학교 대표로 가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혼자 앉아 아름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온 몇 명의 엄마들은 서로 인사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더라. 처음 보는 사이일 텐데 언제 그렇게 친해졌지?” 

“같은 논술학원 보내는 엄마들이겠지. 엄마들이 모여서 학원 정보 같은 거 공유한다면서.”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이가 더 기특했다. 스스로 독서논술토론대회에 나가려고 혼자 책을 읽고 정리했던 며칠의 시간이 분명 큰 경험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나는 그저 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책을 읽어주는 씨앗을 심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도전을 해서 다양한 싹을 틔우고 있었다. 가끔은 엄마인 내가 상상하지 못한 싹을 틔워내는 아이를 보며 빛나는 앞날을 힘차게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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