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어주는 엄마, 싹을 틔워주는 책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상상하면 사랑하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다정하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엄마들의 고민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독서와 아이를 위한 독서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엄마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생기는 고민을 담아보았다.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려 하면 책을 덮어 버리거나 책을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을 한꺼번에 넘겨 버려요.
아기들이 보는 책은 글과 그림이 있어서 엄마는 글을 읽어주고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 된다. 그러나 아기들은 책을 뭐라고 생각할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말한 구강기에 해당되는 아기들은 손에 쥐어지는 모든 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게 책이라도 말이다. 책을 입에 물고, 빨고, 이가 나기 시작하면 책 모퉁이를 음식처럼 잘근잘근 씹기도 한다.
아기들은 어른처럼 책을 들고 한 장씩 넘길 수 있도록 소근육 발달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엄마처럼 책장을 한 장씩 넘기고 싶지만 책장을 넘기다 종이로 만든 책을 찢기도 한다. 아기는 아직 글을 모르기 때문에 엄마가 책을 읽어준다는 걸 모른다.
그렇다면 아기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없는 걸까? 아기들이 책과 친해지는 시기에 책은 학대받고 모욕당하는 존재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책 읽기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아기들을 위한 책은 책이라기보다 때로는 놀잇감에 가깝기도 하다. 아기들이 보는 책 중에 천으로 만든 책이 있다. 책을 손으로 만지고 구겨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촉감책도 있다. 아기들이 보는 책 중에 종이로 만든 책도 있는데 어른들이 보는 책보다 두꺼운 합지본이 있다. 두꺼운 보드지로 되어 있어 아기들이 책장을 한 장씩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아기들 손에 꼭 쥐어져 보기 쉽도록 책 크기가 손바닥만한 책도 있다.
아이가 밤이 되면 자기 싫어서 책을 읽어 달라고 해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엄마는 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고 싶은 것은 아이로서 당연한 일이다. 이런 아이에게는 책을 읽어 주다 잘 시간이 되면 불을 끄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좋다. 불을 끄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엄마 목소리와 아이와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위해 백설공주같은 동화를 여러 번 패러디하기도 했다. 등장인물에 아이 이름을 넣어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엄마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어도 좋다. 엄마가 자신처럼 어렸을 때가 있었다는 걸 옛이야기 듣는 것 이상으로 좋아하는 아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와서는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듣지 않고 책 읽어주는데 중간에 돌아다녀요.
한 때 국내에서 TV로 방영된 <소머즈>라는 제목의 인기 시리즈물이 있었다. 제이미 소머즈라는 여자 바이오닉 인간의 활약이 주내용이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소머즈는 아무리 멀리서 나는 소리일지라도 잘 들을 수 있었다. 추억의 TV 프로그램 등장인물로 기억하고 있는 소머즈를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바로 우리 아이들의 소머즈의 청력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아이들은 신체발달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때라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이상할 나이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다주고 잠시 엄마 옆에 앉아 있다 금세 일어나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나도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말고 덮은 적이 종종 있었다. 아이가 7살 무렵, 그날도 그랬다. 아름이는 내게 책을 갖다 주고 방구석에 가서 무언가 꼬물꼬물 만지고 놀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덮어버렸더니 아름이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왜 책 안 읽어줘?’
‘엄마가 책 읽었는데 네가 듣지 않아 그러지.’
‘엄마, 나 엄마가 책 읽어주는 거 듣고 있었어.’
그렇다. 모든 아이들은 소머즈의 귀를 갖고 있다.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는 이해할 수 없지만 아이들은 책에 그려진 아주 작은 그림을 보고 기억한다. 아주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 그렇다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위해 계속 책을 읽어 준다는 건 엄마로서 대단한 인내심을 갖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그럴 때에는 책을 읽어주는 CD나 오디오 앱, 전자기기를 틀어주면 된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되 다른 방법을 병행해 나가면 된다.
우리 아이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만 읽으려 해요.
아이들이 돌이 되어 걷기 시작하면 몸이 작아 그런지 집안 구석구석 모든 곳을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어디 구석에 있었던 건지 아주 정말 작은 물건도 아주 잘 발견한다. 그리고 책 모퉁이에 그려진 작은 그림도 잘 기억한다. 아이가 어려서 글을 읽지 못할 때 책 제목을 알지는 못하지만 책에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말한다. 아이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본다는 것은 여러 권을 읽는 것과 의미가 같다.
엄마가 보기에 똑같은 한 권만 보는 것 같지만 아이는 그 한 권의 책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읽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공룡을 좋아한다면 공룡이 등장하는 책을 읽어 주면 된다. 공룡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창작책, 공룡 뼈 이야기가 들어간 과학책, 공룡 종류가 나온 백과사전을 골고루 읽어주면 아이는 어느새 공룡박사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둘째가 자기 책은 읽지 않고 오빠 책을 보려고 해요.
아이가 둘 이상인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첫째가 둘째가 보는 아기책을 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책은 아이 나이에 맞는 책, 아이 나이보다는 쉽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 그리고 아이가 도전해 볼만한 책으로 3단계로 읽게 해 줄 수 있다. 아이들은 책을 읽었다고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가 둘째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어서이다. 엄마가 둘째에게 맞는 책을 읽어주고 싶다면 첫째에게 둘째 아이가 볼 책을 읽어주면 된다. 의외로 첫째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아요.
아이가 어떤 영역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는지 체크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전래, 명작, 창작책 같은 이야기책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관찰책, 과학책, 백과사전 같은 비문학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이 아니다. 아이가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찾아 그 부분만 읽어주면 된다. 그리고 비문학 책은 책 내용과 관련해서 실험을 하거나 만들기를 함께 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이 학창 시절에 과학 과목을 싫어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과학을 책으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반드시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있어야 훨씬 재미있다.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책을 좋아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부터 읽어주면 된다. 대부분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아이들을 보면 책의 수준이 아이보다 높거나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보고 혼자 읽으라고 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함께를 좋아한다. 아이에게 매일 조금씩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건 습관이다. 단언컨대, 모든 아이들은 책을 좋아한다.
한글을 뗐는데도 아이가 혼자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아요.
얼마 전, 어떤 기사에서 헤밍웨이가 집필한 《노인과 바다》영어 원서가 문장이 간결하고 수려해서 영어 공부하기에 적절하다는 글을 보고 냉큼 샀던 적이 있다. 1 ~ 2장은 그럭저럭 읽어나가다 모르는 단어들에 막혀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산항이 항구 이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지도에서 부산항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은 부산항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면 음식 이름인지, 도시 이름인지, 사람 이름인지, 항구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뗐다는 것은 영어로 치자면 파닉스를 알고 음가를 읽는 것뿐이다.
전 세계에서 책 읽어주기 열풍을 이끈 화제의 밀리언셀러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책의 저자 짐 트렐리즈는 듣기 능력과 읽기 능력이 비슷해지는 나이가 14세 전후라고 한다. 나도 아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자라나는 아이에게 맞춰 책을 꾸준히 읽어 주고 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면 매일 15분 이상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속도보다 아이가 눈으로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면 그때는 스스로 읽으려고 한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엄마가 좀 섭섭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어땠냐고 물으면 ‘재미있어.’‘몰라.’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해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6~7세 정도 되면 아이에게 책을 읽고 난 후 질문을 해서 아이의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된다. 아이에게 책에서 어떤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는지, 어떤 등장인물이 제일 멋져 보였는지 등을 물어보고 아이가 대답을 못하면 엄마의 생각을 먼저 들려주면 된다.
“엄마는 백설공주 책에서 사냥꾼이 가장 용감한 것 같아.”
“왜?”
“왜냐하면 사냥꾼은 자기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백설공주를 구해주었잖아.”
아이들은 따라 하기 천재이다. 엄마의 대답을 들은 아이는 엄마와 똑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얼마 가지 않아 분명히 아이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단답형으로 대답했을 뿐이다. 아이의 대답이 엄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반드시 아이의 생각에 맞장구를 쳐야 한다.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라고 말이다. 아이의 대답에 호응을 해주고 엄마 생각을 말해주면 그 다음번에는 엄마가 생각하지 못한 아이의 기발한 생각을 듣게 될 것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노라면 어른이 생각하는 독서와는 전혀 다른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프랑스 문학계의 선두주자인 작가 다니엘 페낙《소설처럼》에 나온 책 읽기를 즐기기 위해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을 권리를 떠올려 보자.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중간을 건너 뛰어가며 읽을 수 있는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마음껏 상상하기)
7. 어떤 장소에서나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