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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코치 Young Aug 09. 2021

책, 몇 살부터 읽혀야 하나요?

씨앗을 심어주는 엄마, 싹을 틔워주는 책

 학창 시절, 새 학년이 되어 나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쓸 때마다 취미를 쓰는 칸에 나는 늘 ‘독서’라고 쓰곤 했다. 물론 책을 잘 읽거나 문학소녀이고 싶어서는 아니다. 남들에게 내 취미를 ‘독서’라고 하면 그냥 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무의식적으로 늘 그렇게 써왔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게 ‘책’은 공부할 때나, 시험 볼 때 주로 필요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주셨던 책을 제외하고 내 손으로 가뭄에 콩 나듯 사서 보았던 몇 권의 책이 내가 한 독서의 전부였다. 책은 공부할 때만 보는 게  아니란 걸 임신을 하고 태교란 걸 하게 되면서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고 배 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신호를 강렬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는 바로 입덧이다. 엄마로서의 각자 경험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입덧을 잊을만하면 다시 입덧이 계속 반복되었다. 무엇이든 처음은 낯설고, 두렵고, 설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입덧이 시작되는 아침이면 정말 속이 뒤집어질 듯이 토하다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 있게 된다. 그러다 허기가 갑자기 몰려와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야 속이 진정이 되었다.


 그렇게 폭풍우가 몰아치듯 몰려왔던 입덧이 조금씩 가라앉은 임신 5개월 무렵, 어느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몸속에서 뭔가 통! 피아노 건반이 가볍게 눌리는 느낌이 났다. 처음에는 그 신호가 뱃속 아기의 태동인 줄 모르고 갑자기 긴장을 했다. 시간이 몇 분 지나 다시 뱃속에서 통! 하는 느낌이 나자 순간 뱃속 아기가 내게 신호를 보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챘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처음으로 느낀 때가 바로 뱃속의 아기가 나에게 신호를 보낸 바로 그때부터였다.     


 뱃속의 아기가 엄마인 내게 ‘저, 여기 있어요.’라는 신호를 보내오는데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들이 말하는 태교라는 것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책장 가장 맨 꼭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애증의《수학의 정석》책을 꺼냈다.


 어느 누구라도 학창 시절에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수학이 그러했다. 수학에 흥미가 없던 내가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서 미분, 적분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할 때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숫자로 보일 뿐 수업시간에 멍하게 앉아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핑계를 대자면,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였다고 둘러대고 싶다. 어쨌든 적어도 내 아이는 수학을 즐겁게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 《수학의 정석》책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풀어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신문을 읽다 어떤 분이 태교로 뱃속의 아기에게 자주 들려준 음악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아이가 자라 악기를 다루게 될 무렵, 한 번도 연습을 하지 않았던 곡을 너무나 멋지게 연주해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는 사연이었다. 아이가 연주했다던 그 곡은 바로 엄마가 태교로 들려주었던 그 음악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난 그 사연대로 나도 따라 해 보았다. 오랜만에 공백의 하얀 연습장을 세로로 반을 접어 수학 문제를 연필로 꼬옥 힘주어 가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를 푼 지 하루, 이틀, 사흘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9년 만에 재활용분리수거일에 《수학의 정석》책을 조용히 분리수거하고 마음의 추억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임산부는 항상 행복해야만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다음에 눈을 돌렸던 태교는 바로 음악태교였다. 어렸을 때 집에 007 가방처럼 생긴 가방을 열면 클래식 음악이 담긴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들었던 클래식이라 태교로 듣기에 견딜 만했지만 클래식을 들으며 잠만 자서 태교가 되나 싶은 생각에 그다음에 눈길을 돌린 것이 바로 태담과 책이었다. 서점에 가서 살펴보았더니 태교동화가 여러 권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위한 책은 처음이라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난감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태교동화 몇 권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칼 비테 교육법으로 유명한 칼 비테는 ‘모든 것은 태교에서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태교를 통해 뱃속 아기와 엄마는 서로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와 연습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엄마가 된다는 기쁨도 있지만 임산부는 입덧이나 몸과 생활의 변화로 아무래도 예민해지기 쉽다.



 임신기간 동안 책 읽기는 임산부인 엄마도, 뱃속의 태아도 둘 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데 도움이 된다. 태교로 태아에게 책을 읽어 주며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따뜻한 이야기는 엄마에게 감동을 주어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또한 처음으로 아직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로봇처럼 멋쩍게 책을 읽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 킥킥거리며 웃기도 한다.


 아기는 10달 동안 엄마의 자궁에서 엄마랑 한 몸으로 지내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새롭다. 아기는 젖을 먹는 것도, 똥을 싸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체온조절을 하는 것도 모두 미숙하다. 게다가 아기는 아직 마음대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엄마나 다른 보호자 없이 아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들어왔던 엄마, 아빠의 목소리나 음악까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생후 3개월에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도 알아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청각이 발달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는 12개월까지다. 아기에게 태교로 들었던 음악을 들려주고, 엄마의 음성으로 책을 읽어주면 아기는 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편안함을 느낀다.      




 길게만 느껴지던 입덧 시기가 끝나고 아름이가 태어나기로 한 분만예정일이 2주가 지났다. 양수가 터지고 하루가 넘는 시간 진통 끝에 분만실에서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세상에 나와 첫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축하드려요. 공주님입니다.’라고 말하며 간호사가 아기를 내 옆에 뉘어주었다. 나는 내 옆에 누워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아름아.’라고 불렀다.


 아름이는 엄마인 내 목소리를 듣고 바로 울음을 멈추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름이는 태아 때 뱃속에서 누군가와 얘기하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출근하기 전, 퇴근하고 나서 아빠가 자신을 향해 태담을 해 주었던 아빠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태교로 태아에게 말을 건네고, 책을 읽어주면 태어난 후 아이는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눈 맞춰 주는 것을 좋아한다. 즉, 뱃속에서부터 익숙해진 엄마, 아빠의 목소리와 이야기는 아이에게 세상을 알아가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기 전에 누워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면 아기는 자라서 혼자 앉을 수 있게 될 무렵 엄마가 했던 대로 책장을 넘기려고 한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어른이 생각하는 책은 앉아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기 때 책은 놀이도구이자 친구다. 책을 입에 물고, 빨고, 발로 밟기도 하며, 기찻길처럼 책을 길게 줄을 세워두기도 한다. 아기가 책과 친해지려면 반드시 그런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림책 테라피가 뭐길래》책의 저자 카다 다쓰노부도 나와 같은 궁금증이 가졌다. 카다 다쓰노부가 그런 의문을 가졌을 때 다이라 마사토의 저서 《책을 읽어 주면 마음의 뇌에 닿는다》를 읽으며 수수께끼가 풀린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책을 읽어주면 듣고 있는 아이의 뇌는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요? 실험 결과 사고, 창조 등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분에서는 활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뇌에서 활성화된 부분은 정서와 감정에 연관된 일을 한다고 알려진 대뇌변연계로 저자는 이 부분을 ‘마음의 뇌’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섭다. 슬프다. 즐겁다. 기쁘다 같은 감정은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책을 읽어 줌으로써 ‘마음의 뇌’를 키우고,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어린 아기라도 그림책을 읽어줄 때 또 읽어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마치 놀이공원에 가서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여러 번 타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아기를 낳고 처음 하는 엄마 역할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는 아기에게 이미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엄마는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은 그림으로, 사진으로 글로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한다. 마음이 건강한 아이, 자기를 잘 표현하는 아이, 친구와 잘 놀 수 있는 아이, 긍정적인 마음, 화를 내기도 하지만 화를 잘 다스리는 아이의 이야기, 작지만 서로 돕고 살아가는 동물 이야기, 신기한 과학의 세계, 세계여러나라의 이야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등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결국 엄마는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책을 통해 세상이라는 씨앗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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