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흔하지만 강합니다.
점봉산의 야생화들은 다양하고 다채롭다.
하늘말라니나 동자꽃처럼 당당하고 화려하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듯 잎사귀 아래 꼭꼭 숨어서 피기도 하고, 꽃인지 잎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습의 꽃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꽃들을 조사하며 이름을 되새기고 기록을 하다 보면 조금은 더 마음이 가는 꽃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나는 제비꽃과 은대난, 은방울꽃을 좋아했다.
제비꽃은 보라색 가득한 색깔이 좋았고 은대난과 은방울꽃은 단아하면서 순수해 보이는 꽃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와 함께 조사를 하던 한 팀원은 참꽃마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조사를 하다가 참꽃마리만 만나면 지나치지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참꽃마리는 작고 화려하지도 않은 흔한 꽃으로 보였다. 나는 그런 동료가 신기해서 많고 많은 꽃 중에서 하필 참꽃마리를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팀원은 가까이에서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정말 예쁜 꽃이라며 나를 불러 참꽃마리를 가까이에서 보게 하곤 했다.
참꽃마리 꽃은 매우 작다.
보통 꽃의 크기가 7~10mm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참꽃마리의 꽃은 지름이 7m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들이 대부분이었다. 점봉산에서 만난 많은 꽃 중에서 사초나 벼과 식물의 꽃을 빼고는 개별초와 더불어 크기가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작았다. 꽃이 하도 작아서 접사 모드로 촬영을 할 때도 초점을 한참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그 팀원의 이야기처럼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확대해서 보면 참 예쁘게 생긴 꽃이다.
참꽃마리는 흔한 풀이기도 하다.
조사기간 내내 점봉산의 등산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또 전국의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꽃이 피는 기간도 봄부터 7월까지 긴 편이어서 눈에 잘 뜨인다. 흔한 꽃이기에 쓰임새도 많고 참꽃마리와 관련된 자료도 많다. 개체가 많고 눈에 잘 뜨인다는 것은 주변 환경에 적응을 잘한 강한 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땅에 잘 적응했다는 것이고 외부 스트레스도 잘 견디어 많은 유전자를 남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꽃마리는 강한 꽃이다.
2년 차 후배 J사원은 참꽃마리 꽃을 닮았다.
J사원의 첫인상은 '작다'였다.
처음 신입사원으로 우리 부서에 투입이 되어 부서원들에 인사를 했을 때 나는 그녀의 작은 키와, 조그만 목소리, 여리해 보이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그녀는 약해 보였다.
신입사원 OJT가 끝나고 각 시스템으로 업무 배정이 된 후 그 걱정은 더 커졌다. 많고 많던 시스템 중에 하필 가장 힘들다는 시스템에 담당자로 배정이 된 것이다. 그 시스템의 업무 리더는 무시무시하기로 유명했다. 불같은 성격으로 하루에 몇 번씩은 후배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사람이었다. 입도 험해서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는 소시오패스가 맞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객과도 쌍욕을 하면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 시스템의 고객들 역시 진상으로 유명했다. 시스템의 업무 환경이 얼마나 나빴었는지 그 시스템에 배정되었던 몇 명의 사원들도 견디지 못하고 업무를 바꾸거나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기까지도 한 전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만간 J 사원이 무너져 다른 업무로 바꿔달라고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면담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J사원은 예상외로 잘 버티었다.
욕설이 난무하던 업무 현장에서도 그녀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선배에게 갈굼을 당해도 생각 외로 J사원은 평온했다. 웬만한 사람들이면 멘탈이 수십 번 무녀 져 당장 그만두었을 상황에서도 그녀는 표정 변화도 없이 꿋꿋이 일을 했다. 평정심을 유지했다.
일 년, 이 년, 삼 년이 지나도 J사원은 처음 모습처럼 업무를 수행했다. 가끔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항상
"괜찮아요. 뭐 그냥 그렇죠." 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곤 했다.
J사원은 여유롭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유, 화내면 내가 힘드나? 지가 힘들지~~"
넉살 좋은 충청도 아저씨의 여유로움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심지어 몇 년이 지난 후에는 그 무시무시한 업무 리더가 J사원에게 사과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J사원에게 스트레스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나도 나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꽤 긍정적인 멘탈의 소유자라고 자부했으나 J사원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녀의 멘탈은 누구보다도 강하고 긍정적이었다. 힘이 세다는 의미의 강함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주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강함이었다. 상대방은 상처를 주겠다고 덤비는데 상처 자체를 받지 않고 그냥 튕겨버리는 고무공 같았다. 수없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냥 스트레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겉모습은 약해 보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도 강한 J사원 같은 사람을 한 번씩 만나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많은 공통점 중에 하나가 감정의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변화나 스트레스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더 잘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던 사람들이 마음이 여리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운 마음에 더 화를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경우도 있었다. 행복해 보이고 배려심도 많아 보였는데 정작 본인 속은 다 썩어 문드러져 있던 경우도 많이 보았다.
J사원은 10년 가까이 그 업무를 했다. J책임이 되었으며 사이코패스 같던 업무리더가 빠진 시스템의 새로운 업무 리더로서 훌륭하게 시스템을 운영했다. 지금은 다른 부서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워킹맘으로 회사 생활도 잘해 나가고 있다.
참꽃마리처럼 J사원도 작고 여려 보였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강했다. 험난한 생태계에서 작은 꽃으로도 살아남은 것처럼 J사원 역시 험난한 곳에서 살아남았다.
참꽃마리의 꽃말이 '행복의 열쇠'라고 한다.
회사생활에서 행복의 열쇠 중 하나는 J사원이 가지고 있던 여유롭고 평안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주변 환경이 어떠하든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 중에 하나이다.
참꽃마리는 작은 꽃이다. 작지만 예쁜 꽃이고 강한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