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의 힘
알렐로파시. allelopathy
알렐로파시. 타감작용(他感作用)
오스트리아 출신의 식물학자 한스 몰리슈(Hans Molisch)에 의해 처음 사용된 식물 용어로 식물이 성장하면서 일정한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경쟁되는 주변의 식물의 성장이나 발아를 억제하는 작용을 말한다.
타감물질은 초식 동물로부터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는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하며 다른 생물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배출하는 화학 물질로 에틸렌, 피톤치드(Phytoncide) 따위가 있다.
허브 식물의 독특한 향기도 타감물질에 해당하며 마늘에 포함된 알리신(Allicin), 고추의 매운 성분을 만드는 캡사이신(Capsaicin) 등도 모두 대표적인 타감물질에 해당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알렐로파시'
내가 좋아하는 생물학 용어 중에 하나이다. 말할 때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다. 어려운 용어 같지만 쉽게 풀어보면
"우리 식구 빼고 내 구역에서 다 나가!!"라며 화학물질을 뿜는 것이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상호(알렐로) 해로운(파시)" 이라고 한다. 단어만 보면 해로운 말 같지만 알렐로파시로 분비되는 타감물질의 대표주자가 피톤치드이다. 사람들을 숲으로 오게 하는 이로운 역할도 하기도 한다.
곰배령 입구에서 2km 정도를 걷다 보면 시원하게 하늘로 뻗은 전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기분이 좋아질 만큼 푸르고 시원한 전나무 군락지이다. 이 구간에서는 꽃이 거의 없었다.
꽃을 관찰하기 위해 땅만 보느라 뻐근했던 고개를 잠시나마 쉴 수 있는 매우 고마운 구간이었다. 나는 조사를 잠시 멈추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상쾌한 기분으로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걸어 지나가곤 했다. 나무들이 일정하게 심어져 있는 것으로 봐선 조림을 한 듯 보였다.
특이한 건 이 구간이 다른 곳과는 다르게 숲의 바닥이 매우 황량했다. 꽃뿐만이 아니라 다른 식물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와 잎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당시 조사를 하던 우리 멤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꽃이 모두 숨어버린 것이다.
알렐로파시! 바로 타감작용 때문이다. 전나무에서 나오는 타감물질이 꽃들을 모두 내쫓은 것이다. 전나무 숲 바닥에는 꽃들이 자라지 못했다. 간간이 보이던 꽃들도 없었다.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나 엉겅퀴조차 전나무 숲 바닥에선 꽃 피지 못했다. 꽃들에게 전나무 숲은 화학물질이 가득한 생화학 지대일 뿐 살만한 땅이 아니었다.
회사 생활에서도 알렐로파시가 있다. 가까이서 일하게 되면 서로 상처받게 되고 한걸음 물려서야 하는 관계가 존재한다.
과장으로 진급할 때쯤 기술 업무에서 기획 업무로 업무를 바꾼 적이 있었다. 부서의 인사, 기획, 총무, 재무와 같은 경영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고 부서장 곁에서 부서장의 수명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당시 우리 부서장은 완벽을 추구하는 업무 스타일을 가진 분으로 부서원들을 혹독하게 대하기로 유명했다.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서류 던지기, 험한 말로 부서원 면박 주기 등의 행동들도 서슴지 않았던 분이다.
이해와 타협보다는 부서원들을 윽박지르고 혼내는 방법으로 부서를 이끌어 나갔다.
그런 분을 바로 옆에서 모셔야 하는 역할이었으니 많이 힘들었었다. 거의 매일 혼이 나고 질책을 당했다. 회사 생활 중에 가장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중 다른 부서나 담당자의 의견을 취합하여 정리, 보고하는 업무는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부서장은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러다 보면 결국 모르는 것이 나오기 마련인데, 너는 왜 그걸 모르냐며 나를 호되게 질책하곤 했다
부서장은
"네가 나에게 보고했으니 네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너는 항상 디테일이 부족하다"
면서 나를 혼내고 질책했다. 억울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담당자도 아닌데 그런 디테일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시면 되지. 왜 또 굳이 항상 나를 통해서 들으시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 회식자리에서 나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혼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는데 나에게는 그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늘을 찌르던 나의 자존감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사라져 갔다. 오히려 극심한 불안과 공포로 바뀌어서 부서장의 헛기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보고를 해야 하는 날이면 잠도 못 자고 출근길에는 사고가 나서 다리라도 부러져 한 달만 입원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제 명에 못 죽겠다 싶어서 어떤 업무든 좋으니 업무를 바꿔달라고 중간 리더에게 애원했고 업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와 부서장은 알렐로파시였다.
상호 해로웠다.
부서장의 강한 업무 스타일은 내가 클 수 없는 땅이었고, 말랑말랑한 나의 업무 스타일은 그가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였다. 부서장은 나를 혹독하게 훈련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이겨내리라 생각했겠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나를 점점 죽어가게 하는 타감물질이었던 것이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다.
우리는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사이였단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이 딱 맞는 리더를 만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맞춰가면서 업무를 하기도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과감히 빠져나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굳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맞추려 노력하고 애써 견딜 필요는 없다.
당장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맞서려 하는가.
힘들면 피하면 된다. 나만 상처를 받는다.
꽃들이 전나무 숲에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한걸음 물러서서 다른 곳에 자리를 잡으면 된다.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나는 죽을 만큼 힘겨웠던 2년의 시간을 버티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몇년전 부서장은 회사를 떠났지만 그 부서장 아래에서 몇 년을 견뎠던 중간 리더분은 회사에서 꽤 잘 나가신다. 혹독한 트레이닝 덕분이었는지 보고서 작성 능력부터 커뮤니케이션 스킬, 협업 기술 등 회사에서 갖추어야 할 업무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인정 받는다. 얼마 전에는 승진을 하셔서 전 부서장의 자리보다 더 높은 역할도 맡으셨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계속 견디고 참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도 인정받으며 승진하고 잘 나갔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극한 상황에 못 버텨 벌써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전나무 숲의 꽃들처럼 피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자리가 있고, 맞는 역할이 있다.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는 전나무 숲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