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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공 Feb 24. 2023

겨우살이

기생하지만 재밌는

  겨우살이는 기생 식물이다.

  

  다른 나무의 가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기 때문에 한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나뭇잎이 없는 계절에 눈에 잘 뜨인다. 산길을 걷다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르게 가지가 촘촘하고 푸르른 부분이 있다. 멀리서 보면 새집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겨우살이이다.

  겨우살이라는 이름이 겨울을 산다고 해서 생긴 이름일 텐데 겨울에 유독 눈에 잘 띄어서 지어진 이름인 것 같다. 하지만 경험상 겨우살이는 겨울뿐만 아니라 거의 사계절 동안 푸르렀다.


  2005년 이른 봄 야생화 조사 장소 선정을 위해 점봉산에 갔을 때 나는 겨우살이와 처음 만났다. 낯선 모습에 교수님께 이런 깊은 산골에도 까치집이 왜 이렇게 많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나뭇가지 사이에 촘촘한 부분이 겨우살이이다.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본 점봉산의 겨우살이


  겨우살이는 재미있는 식물이다. 이야깃거리가 참 많다. 기생식물이기에 다른 나무 위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도 특이한데, 그 와중에 염치는 있어서 양분의 일부는 자기가 직접 생산한다. 차디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한겨울을 견디고 꽃과 열매를 피워내는 강인한 식물이기도 하다.


  그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바로 겨우살이 열매가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이다.

  겨우살이 열매는 매우 끈적거린다. 새들이 겨우살이 열매를 먹고 나서 똥으로 씨앗을 배출할 때, 이 끈적거리는 성분이 제 역할을 한다. 끈적거리는 성분 때문에 씨앗이 똥과 함께 새의 항문 주변에 붙어 버리는 것이다. 똥이 엉겨 붙어 엉덩이가 가려운 새들은 똥을 떼어내기 위해 나뭇가지 위에 엉덩이를 비비게 된다. 이때 떨어져 나온 씨앗은 나뭇가지에 붙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겨우살이는 부모가 한 것처럼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꽃을 피우고 끈적거리는 열매를 맺고 새들을 유혹한다.


겨우살이의 열매, 끈적끈적거린다.


  곰배령에서 식물을 조사할 때 많이 공부했던 것 중 하나가 식물들의 번식 전략과 씨앗의 확산 전략이었다. 어떻게 수정을 하는지, 수정된 씨앗은 어떻게 퍼뜨리는지, 그 방법은 식물들의 생활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등을 많이 공부하였다. 조사하는 동안 만났던 수많았던 식물 중에선 나에겐 겨우살이가 가장 재미있고 창의적인 전략가였다.

  

  새의 엉덩이에 붙어서 날아다닌다니! 나뭇가지 위에서 새의 입으로, 입에서 엉덩이로 그리고 다시 나뭇가지로. 누가 이런 여정을 거쳐 나뭇가지 위에서 살게 되었다고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독특하고 창의적인 전략을 가진 식물이다.


  20대 후반 입사를 하고 처음 부서에 발령을 받았을 때 옆 옆자리쯤에 부장님이 한 분 계셨다. 나보다 20년 정도 더 일찍 회사에 들어온 선배였다. 당시에 내가 본 부장님의 모습은 회사가 바라는 모습은 아니었다. 열정은 사라져 보였고 아주 오래전 빛바랜 사진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최 일은 하시는 건지 모르겠었고, 그저 하루하루 의미 없이 시간을 때우다 퇴근하시곤 했다.

  

  신입이었던 우리 동기들이 업무적인 도움을 요청해도 답해주지도 않았다. 동기들 중 일부는 그를 청국장이라고도 불렀다. 요청을 드리면 오랫동안 묵히신다고. 부서에서 희망퇴직이 명단이 돈다고 하면 거의 항상 1순위로 뽑히시던 분이셨다

  

  기생하는구나. 기생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난 그 부장님을 보며 겨우살이를 생각했다. 회사가 만든 시스템에 기생해서 회사의 양분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고 계시는구나.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복지에 기생을 하고 있구나.

  내가 잘난 줄 알았을 때, 오만으로 가득 찼을 때 나는 그 부장님을 깔보고 무시했다.


  나보다 20년 정도 일찍 입사했던 그 부장님은 10년 가까이 더 일을 하시고 몇 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다. 10년 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이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부서에서도 꽤 성대하게 퇴임식을 해 드렸고, 퇴임하시던 순간까지도 회사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가셨다. 끝까지 회사의 양분을 빨아 드시고 가셨구나.

  나는 그때도 겨우살이가 다시 떠올랐었다.


  나도 이제 회사 생활을 15년 넘게 했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서일까? 항상 젊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던 동기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봐서일까? 요즘 들어 문득 그 부장님 생각이 나곤 한다,

  

  그 부장님은 겨우살이가 맞다. 그런데 이제 나는 다른 의미로 부장님과 겨우살이를 생각한다. 기생식물 겨우살이가 아닌 추운 겨울을 견딘 강인한 겨우살이이다. 하루하루 회사 생활을 할수록 그 부장님이 진심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퇴직을 가장한 회사의 퇴직 강요, 후배들의 무시, 업무 시간의 무료함, 그 긴 시간을 버티신 것이다. 겨우살이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을 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씨앗을 퍼뜨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처럼 부장님도 30년이 넘는 긴 시간을 회사에서 살아남았다. 회사에 몸을 담고 있었던 긴 시간 동안 수 많았던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정년까지 버틴 것이다.

   

   그는 그의 가정을 지켜냈고 삶을 성공시켰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삶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만의 치열한 방식과 강한 생명력으로 견뎌낸 것이다.

    못생긴 나무여서 숲을 지키신 것이었고 끝까지 살아남았기에 강하셨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최근 들어서 겨우살이가 상업적인 가치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지 이런저런 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검색포탈에 '겨우살이'를 쳐보면 효능이나 가격 같은 연관 검색어가 제일 먼저 나온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쓸모없는 기생 식물인 줄 알았던, 그저 겨울을 견뎌내는 강한 식물이라고 생각했던, 겨우살이를 사람들이 비싸게 찾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다.

  겨우살이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독특하게 씨앗을 뿌리는 식물이다.

  수많은 겨울을 이겨내고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나가고 있는 겨우살이들에게, 그리고 회사라는 치열한 생태계 안에서 꿋꿋하게 몇십 년을 버텨내고,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수많은 부장님들에게 존경에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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