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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10. 2022

Hello stranger!

이상한 나라의 이방인



비가 주룩주룩 참 많이도 내린다. 연이은 폭우에 도심은 침수되고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나타났다.


비가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오래도록 망각하고 지낸 오만함이 은근슬쩍 자취를 감추고, 자연의 거셈 앞에 한없이 작아져 두려워하는 겁쟁이만 남았다.


남부지방은 전례 없는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가고 있다.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엄마의 푸념이 이어지는 나날이었는데, 이번에도 비는 남쪽을 피해 갔다. 이 좁은 땅덩어리가 이런 식으로 나뉜다는 게 희한하고도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 남부지방은 강남과 더불어 이번 비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곳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인근 도로가 유실되고 산사태로 터널이 막혔다. 자주 들락거리던 산책로는 토사와 나무 찌꺼기들로 뒤덮였고, 등산로는 무너졌다.

속절없이 물에 떠밀려 내려온 가재가 산책로에서 당황해하는 광경도 펼쳐진, 그야말로 천재지변의 무서움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안녕 가재야 너는 어디에서 왔니?  






지난주는 아이들의 방학이었다. 참 뜨겁고 더운 날들이었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워 밖에 나가기도 어려워 주로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둔 채 물놀이를 하며 보냈다. 내가 아낌없이 사용하는 이 전기들이 지구를 병들게 만들어 이런 무서운 자연재해를 만들어냄을 잘 알지만, 너지 넘치는 아들 둘에게 이 더위를 참고 이겨내라 할 수 없기에 자꾸만 이기심을 부리게 된다. 나 역시 덥고 습한 한여름의 날씨를 버텨낼 재간도 없서 아이들을 핑계로 내 이기심을 합리화 중이다.


뜨거운 나날 뒤에 이어진 폭우로 거의 2주를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게 되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자유 속에서 규칙을 잃어버린 건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해야 하는 일들을 미룬 채 아이들 뒤치다꺼리에만 급급했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늘었다. 하루도 같지 않은 아이들이라 그런가 육아는 암만해도 도통 늘지가 않는다.


어제는 유독 엉망이었다. 비가 와 세상도 엉망이었고, 집 안도 엉망이었고, 그 속에서 나도 엉망이었다.


늦은 낮잠을 잔 아이들이 밤 12시가 다 되어 꿈나라로 다. 그제야 내내 닫혀있던 창문을 조금 열어보니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에어컨을 끄고 온 집안의 창문을 열었다.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온 세상의 열기를 식혀주었는지 가을바람 같은 쾌청함이 느껴진다.


문득 이 방에 가만히 있는 나 자신이 세상과 동떨어진 낯선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쏟아지던 비와 엉망이 된 도로, 바람에 흩날리던 나뭇잎들과 갈 곳을 잃어 방황하던 새들.


온 거실에 널려있는 크고 작은 장난감들과 수북이 쌓여있는 싱크대의 그릇들, 가스레인지 위에 떨어져 있는 볶은 양파 한 조각과 엎어져 있는 물컵.


침대 위엘 굴러다니는 애착 인형들과 똑같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며 자고 있는 두 아이들.



지금 내가 속한 이 세상이 나의 것이 맞는 것일까?

왜 이토록 낯선 이방인이 된 기분일까. 오늘 낮에 만난 가재가 느끼는 기분이 아마 지금의 내 기분 같지 않을까 싶어 헛웃음이 났다.






10년 전 우연히 지나가게 된 스페인의 작은 항구도시 Cee라는 마을에서 내가 문득 떠올랐다.


항구도시 특유의 바다 냄새에 흐린 날씨가 더해서 묘하게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던 마을이었다. 길에는 유독 중년의 아저씨들이 많았다. 낯선 이방인을 끈덕지게 쫓아오던 그들의 폐쇄적인 눈빛이 '넌 대체 뭐야?'라고 쏘아붙이는 듯 느껴져 이유 없이 주눅 들어 버렸다. 그 낯설고 기묘한 분위기를 뭐라고 묘사할 수 있을까?


아무튼 어제의 집에서 나는 그 마을을 느꼈다. 내가 이룬 내 집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 낯설어진 건 집이 아니고 나인 게 맞겠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끼는 집주인이라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아무 나라의 이상한 이방인이 맞는 건지도.






그러고 보면 나는 유독 내가 남의 옷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아직도 나에게 딱 맞는 옷들 찾지 못한 건지 아니면 그냥 다들 이러고 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모든 것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다. 아주 별 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조차도 말이다.


오늘 낯에 만난 가재들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어버린 가재들. 1 급수의 맑은 물에서 사는 녀석들이니 곧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어딘지도 모르는 낯설고 딱딱한 곳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지도 모른 채 말이다.  




아침이 되고 그치지 않을 것만 같던 비도 그쳤다.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각자의 작은 사회로 나갔고 나는 다시 혼자 남겨졌다.


혼자 남겨진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아주 잠시만 즐기고, 엉망이 되어버린 내 세상을 다시 정돈해야지. 엉망이 된 도로도, 세상도 금세 제자리를 찾겠지. 모든 것은 다 제자리로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내가 자꾸만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건, 낯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훌쩍 떠나버리면 되는 여행자의 그것이 그리워서인 건 아닌가 모르겠다. 제자리가 없는 여행자의 삶, 그런 것들이 아주 조금은 그리운 것 같다.



금세 다시 어질러질 것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을 매일 수없이 반복하는 나날들. 아이들이 크면 이 반복도 줄어들겠지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모든 것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본다. 저 멀리 붕떠있던 내 마음도 말이다.




다시 맑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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