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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12. 2017

각자의 기대

간격을 유지하며 함께 걷기  



 나는 대체적으로 착한 딸이었다. 딱히 큰 말썽을 피운 적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독립을 해 나와 혼자 자취를 했다. 혼자 살아온 그 시간 동안 나는 혼자 밥을 해 먹고 산책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나는 타고나기를 누군가에게 받는 것을 잘 못하는 성향이었다.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무엇인가를 해다 주는 것도 모두 나였고,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어지간해서는 도움을 안 받고 혼자 해낼만했었다.


 반찬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면 근처 사는 친구에게 가져다줬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길에는 꼭 가족들과 친구들의 선물을 사 왔고, 기분이 좋아서 혹은 친구가 힘들어해서 라는 이유 등으로 선물들을 했었다. 그렇게 주는 것이 아깝진 않았다. 그것들을 고르고 준비하는 동안의 내 모습이 좋았고, 그렇게 나간 마음이 더 큰 감동으로 돌아올 때가 더 많았기 때문에.  삶이 내게 관대한 이유도 바로 이런 것에 있다 믿었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었다. 사 남매 중 삼남인 그는 자기 것을 스스로 챙겨야만 가질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말썽을 많이 피워 경찰서도 몇 번 왔다 갔다 했고, 동네에서 나름 유명해(어떤 쪽인지 자세히 모르는 걸로..) 어머니는 곧잘 창피하여했다고 한다.


 집에서 먼 거리의 대학을 다녔고, 그 후로 장교생활을 했던 5년 동안을 또 타지에서 혼자 생활을 했다. 혼자가 지긋지긋해 군 제대 후 다시 집으로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했고, 무엇인가 잘 안 풀리는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다 같이 뛰어다니며 그 일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했다. 시간과 비용에는 구애받지 않았다.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에겐 친구도 연인도 가족 이상이 되진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삶의 우선순위는 나 자신 > 대체적으로 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는 나와 남의 구분이 명확했고 내 것과 남의 것의 기준이 확실했다. 그의 울타리에 들어와 있는 가족들에게는 모든 것을 헌신했지만 그 밖에 있는 타인들에게는 일말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조차 아까워했다.





 우리도 넉넉지 않은데 남에게 줄 것이 어딨냐 했고 나는 부족하지 않은데 못 나눌 것이 무어냐 했다.

 

 막내딸의 생활을 하나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한 처가의 무관심이 남편은 서운하다 했고, 

 시시때때로 나를 챙기려 하고 함께 무엇인가 하길 바라는 시댁의 관심이 나는 부담스러웠다. 


 준비되지 않은 미래가 행복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남편은 말했고,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것이 행복이라 나는 말했다.  

 

 아끼자고 했고, 누리자고 했다. 

 낭비라고 했고, 투자라고 했다. 

 소모적이라 했고, 필수적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토록 다른 환경에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품고 자라 왔음을 실감했다. 



 





 이토록 다른 두 개의 인생이 만나 지지고 볶고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게 결혼이라면 우리는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를 만나도 결코 나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기에 이는 불가피한 충돌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방향의 어떤 방식의 충돌 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정말 많이 다르구나." 


 로 어제의 대화는 끝이 났지만, 시간이 더 많이 지나고 삶이 조금 고단해진 이후에도 이 차이를 서로의 다름으로 인정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이토록 다르다면, 그 기대에 맞춰 서로가 조금씩 변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은 그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환경과 나의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대로 변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인다. 


 두 개인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지만 실제로는 두 개인의 삶이 아니었음을.. 옛 어른들 말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둘이 좋아하는 것이 결혼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진솔한 동반자가 내 곁에 있음이 감사하다. 그렇게 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미래를 꿈꾸며 함께 고군분투를 하겠지. 그래도 아직 사랑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는 아직 핑크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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