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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26. 2018

계란 입힌 소시지

가장 그리운 무언가



 생일을 앞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생일날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다 해줄게.”


 “분홍색 소시지. 계란 입혀서.”



 잠시의 고민도 없이 남편의 입에서 나온 음식은 소시지였다.

 요즘 유행하는 육즙이 넘치고 건강함을 강조하는 소시지가 아닌,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가 도시락에 넣어주던 그 분홍빛 소시지가 먹고 싶다 했다. 그것도 계란까지 입혀서.


 몸에도 좋지 않은 밀가루 소시지를 굳이 생일날 먹고 싶냐 구박하는 나에게 남편은 그거 하나면 된다고, 다른 건 전혀 필요 없으니 괜히 고생하지 말라고 말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예전에 엄마가 생일이면 늘 그 소시지를 구워 주셨거든.”


 “아 그랬구나.”



 이제야 남편의 대답이 이해가 된다. 남편이 원한 그 소시지는 그리움의 맛을 지닌 특별한 소시지였다.






 나는 시어머니가 안 계시다. 남편의 어머니는 우리가 결혼하기 일 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어머니의 부재를 맞닥뜨려야 했던 시댁 식구들은 충격과 혼란의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이 보내는 하루하루에는 모두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 늘 어머니를 떠올리며 얘기하곤 했다.


 그런 마음에서 나는 늘 시댁 식구들이 안쓰럽다. 홀로 남겨져 끼니도 제때 못 챙겨 드시는 아버님과 아직 어린 도련님, 그리고 그 둘을 챙기느라 요리를 나름 해 내는 아주버님도 어쩐지 안쓰럽다. 물론 그들은 충분히 잘 지내고 괜찮다고 늘 말하지만 여자 없이 남자끼리 살아가는 집에 대한 알 수 없는 동정심에 시댁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어쩐지 불편해진다.

 

 내가 뭔갈 더 잘해야만 할 것 같고 그들에게 도움이 돼야만 할 것 같은데, 돌도 안된 아기를 안고 있는 데다가 살림은 초보인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되기는 실로 쉽지 않았다. 게다가 프로 살림꾼이셨다던 시어머니와 비교하면 발끝에도 못 미칠게 틀림없어 오히려 무언갈 하겠노라 나서기가 더 힘들었다. 그래도 남자들만 넷 남은 삭막한 분위기가 나와 우리 아기로 인해 조금은 나아졌으리라 스스로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시아버님은 늘 시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나에게 미안해하신다.


 엄마가 있으면 요리한다고 고생 안 해도 될 텐데.

 엄마가 있으면 몸조리도 좀 도와 줄텐데.

 엄마가 애기 하나는 진짜 잘 보는데.

 엄마가 있으면 니들이 한결 수월 할 텐데.




 남편은 내가 그의 어머니처럼 해 주기를 내심 바라는 듯하다.


 우리 엄마는 아침에 계란 토스트를 잘 해주셨어.

 우리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은 이불빨래를 하셨어.

 우리 엄마는 손주들 키울 때 안 그러던데.

 우리 엄마는 혼자 이런 거 척척 잘만 하던데.



 그렇게 나의 시댁 남자들은 모두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나는 그 속에서 늘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허둥대곤 한다.  






 한 번은 늘 어머님을 찾는 남편이 못마땅해


 “아니 그럴 거면 어머니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50세 넘으신 분이랑 결혼했으면 오빠가 원하는 것들 다 뚝딱 해줄 텐데.”


 라고 툴툴 대기도 했다. 매사에-특히 음식과 살림 부분에서 늘 어머님과 비교를 당하다 보니 어느 순간 화가 나기도 한다. 돌아가신 어머님 흉내나 내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싶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주 내 방식이 아닌 어머님의 방식을 흉내 내곤 했다. 내 방식이랄게 아직 정립되지 않은 살림 초보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늘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남편의 추억 속에 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냈을 때 남편이 비슷하다 말해주면 기뻤고 아니라고 말하면 서운했다. 그렇게 나의 주방에는 나와 시어머니가 오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자주 어머님을 찾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절로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던 엄마의 음식들이 생각나고, 엄마의 작은 습관들이 생각나고, 함께 보낸 즐거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다 결국엔 슬퍼지고 만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무서울 만치 끔찍하다. 언젠간 겪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취직을 해 엄마의 품에서 멀리 떨어진 나에겐 엄마는 그저 명절이면 당연히 돌아가는 고향 그 자체였다. 언제 가도 나를 반겨주는 유일한 고향이었고, 언제나 내 편인 가족이 저 멀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의 원천. 그게 가족이었고 엄마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엄마와 따로 떨어져 보내다 보니 엄마에 대한 기억들도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해가 지나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오래된 엄마와의 추억이 남은 내 인생에서 내내 곱씹어질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더 진작에 더 많이 찾아뵙지 못했을까?

 왜 같이 여행 한번 제대로 가지 않았을까?


 늘 괜찮다던 엄마가 진짜 괜찮은 줄 알고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엄마가 괜찮댔어.” 라는 핑계로 넘어갔던 수많은 날들이 떠올라 자꾸만 죄책감이 든다.

 엄마가 되어보면 그 마음 알 거라는 말이 이제야 와 닿는다. 엄마의 인생이, 엄마의 희생이 이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늦진 않았다. 나의 엄마는 다행히도 아직 건강하시고 여전히 젊으시다. 새로운 가정이 생긴 딸에게 엄마는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내가 서운할 지경이지만 말이다.


 요즘 나는 엄마에게 무언갈 더 해주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요리도 잘 못하는 내가 시댁 식구들을 위해 국을 끓이고 나물을 하다가 문득 내 가족들에겐 반찬 한번 해 준 적이 없음이 떠오르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남편 얘기를 듣다가 내겐 엄마와 함께 보낸 일상이 거의 없는 듯 해 마음이 아프다. 그간 좋은 딸이 아니었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 얼른 만회를 하고 싶은 의욕이 앞서 나간다.


 이번에 내려가면 꼭 엄마가 한번 먹어보고 싶다던 막내딸 표 오일 파스타를 해 드려야지.

 늘 당연하게 받아먹던 밥상을 이번엔 내가 차려 드려야지.



 “어이고~ 우리 막내딸 이제 철들었나 보네!”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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