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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an 18. 2018

지금과 맞바꾼 것

where am I ?



아침에 일어나 남편을 깨우고 출근을 시킨다.

아기와 조금 더 잠을 자고 일어나 젖을 물린다. 아기와 놀다가 또 졸려하는 아기를 재우고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시리얼로 간단히 때우기도 하지만, 영양제는 꼭 챙겨 먹는다. 완모를 하고 있는 지금, 내가 먹는 것은 모두 아기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책임감이 자아낸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곧 백일이 되어가는 아기는 사람이 옆에 없으면 깊게 잠이 들지 못한다. 얼른 아침을 먹고 치우고 칭얼대는 아기의 옆에 가서 조용히 토닥여준다.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 챈 아기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꿈나라로 돌아가고, 새근새근 잠이 든 아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벅찬 행복이 느껴지곤 한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사라질 이 순간이 벌써부터 아쉬워 지는,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평온한 행복이다.



그 어느 순간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한낮의 평화




새벽 수유로 나 역시 피곤해 오전에는 아기와 함께 곯아 떨어지기 일쑤다. 그렇게 한시간여의 짧은 낮잠을 한번 자고 나면 아기는 또 일어나 배고프다 칭얼댄다. 아기를 안아주고 또 젖을 물린다. 하루종일 반복되는 이 짧은 접촉이 모여 아기의 작은 몸을 조금씩 키워내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배가 부른 아기는 엄마를 보고 웃기도 하고 모빌을

보고 놀기도 한다. 그러다 또 금새 다시 잠이 들고 나는 잠이 든 아기의 옆에 누워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본다. 휴대폰 전자파에 아기를 계속 노출시키는 것이 조금 미안하지만, 잠든 아기만 보며 가만히 있는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라디오와 친해졌다. 생전 들을 일 없었던 낮시간의 라디오. 운전기사들만 듣는 줄 알았던 그 라디오에는 나처럼 아기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연이 종종 나오곤 해 혼자가 아니라는 묘한 위로가 되곤 한다. 이래서 다들 라디오를 듣나보다.


그렇게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듣다가 잠이 깬 아기에게 또 수유를 하고 또 놀고 또 재우다 보면 어느새 남편이 퇴근을 한다.

따끈한 저녁밥을 지어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 같은 것은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이었나보다. 씻고 나온 남편에게 아기를 넘기고 저녁준비를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일주일에 두세번은 배달음식을 찾게 된다.

결혼전에는 엄마처럼 뚝딱 오첩반상을 차려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나 혼자 내 밥 한끼 차려 먹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점점 단조로워지는 한 끼.


저녁을 먹고 치우고 아기를 남편이 씻긴다. 아기의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깨끗히 세탁된 옷으로 갈아입혀준다. 젖을 물리고 아기랑 놀아주다가 졸려하는 듯 하면 아기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안고 흔들어준다. 잠이 든 아기를 침대에 눕혀놓고 나면 조금 분주해진다. 못다한 집안일을 마저하고 늦은 샤워를 하고 남편과 대화도 나누고 티비를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기가 깰 때마다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려가며 새 하루를 맞이한다. 이런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 나의 삶은 이토록 달라졌다. 아기의 존재와 엄마로써의 역할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막연히 상상해보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엄마가 되는 길은 정말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확연히 쇠약해진 관절에서 느끼고, 아기는 정말 생각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은 온 마음으로 느낀다. 예전같지 않은 내 몸을 보고 느끼며 속상해하다가도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는 아기를 보면 금새 기쁨이 차오른다.


이 것은 정말 일차원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이다.

육아라는 것이 이토록 본능적인 행동의 연속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본능을 따르기도 바쁘기만 한 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그 중간 어디즈음에 있을 듯한 ‘나’의 이성은 저 멀리 가출을 해 버린듯하다. 꿈, 목표, 계획 따위의 것들 말이다.



늘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엇이든 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내가, 이렇게 집안에만 틀어박혀 아기의 일차원적인 욕구를 채워주며 살고 있다니.

여자가 가야하는 당연한 삶이라는 그 엄마로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확신하지만 말이다.



예전의 내가 하고 싶어하던 것들이 이제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작고 소중한 생명 앞에서 내 자아의 욕구는 저 멀리 뒷전으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예전의 나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지금은 아이가 웃으면 행복하고 잘먹으면 기쁘고 울면 괴로운 한 사람의 흔한 엄마만 남았다.


그것이 싫은 것만은 아니지만, 문득 한번씩 예전의 내 모습들이 조금 그리운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두려울게 하나 없었던 그 시간들이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인생의 어디쯤에 있는 걸까?

아이와 함께 나 역시 자라고 있는게 맞는 걸까?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내 인생을 다시 일궈낼 수 있을까?


아기의 고른 숨소리로 채워진 고요한 밤이 점점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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