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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04. 2017

강원도 남자와 부산 여자

싸움의 이유



 남편은 전반적으로 다정한 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마누라가 보고 싶다 노래를 부르고 사랑한다 외친다. 내가 화를 내던 짜증을 내던 귀엽다고 웃으며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나는 전반적으로 무뚝뚝한 편이다. 시도 때도 없는 남편의 고백에 뭐 잘못 먹었냐며 시니컬하게 대꾸하기 일쑤이다. 귀엽다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남편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짜증을 낸다.


 한 나라의 남쪽 끝과 북쪽 끝 어딘가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이토록 달랐다.



 늘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만 만나왔던 나는 다정한 남자를 만나 사는 삶을 꿈꿔왔었다. 속정은 많아도 겉으론 투박스러운 경상도 남자는 나의 예민함을 감싸기엔 역부족이라 생각해왔었다.


 지금의 남편은 십 년 전에도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그의 느림과 다정함이 나는 늘 부러웠고 좋았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 여유로움도 좋았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이 사람을 보고 많이 배우고 닮고 싶었었다.



 하지만 요즘은 별것도 아닌 일들로 서운하고 짜증이 나곤 한다. 분명 남편은 그대로인데, 달라진 건 그저 나인 듯한데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디 앨런의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를 보면 늘 무엇인가를 찾아 방황하며 살아가는 크리스티나가 나온다.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마리아 엘레나가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고질적인 불만족, 바로 그거야. 고질적인 불만족, 큰 병이지!"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엘레나의 트라이앵글



 나 역시 크리스티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생각했었다. 무엇에도 큰 정을 주지 못하고 금세 질려버리고 마는 성격. 큰 뜻을 품고 대단한 일을 해 낼 수 있으리라는 본인에 대한 과대평가를 품고 살아가지만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금세 포기하거나 도망치고 마는 성격.

 '이건 나와 안 맞아.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또다시 열정을 쏟고는 또 안 맞는다는 이유로 금세 질려버리고 마는, 아주 몹쓸 병에 나도 걸려있다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 살아왔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원 없이 해 가며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그런 삶. 하지만 결혼 이후의 생활은 결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함께여야 했고 합의해야 했고 양보하거나 쟁취해야 했다.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늘 내 곁에서 항상 같은 남편에게 나만 불만이 쌓인 이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자유를 잃은 것 같다는 막연한 나의 불안감과 피해의식.


 사실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춰주길 바랬고,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 남편 앞에서 투쟁 아닌 투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한마디 행동 하나를 다 전투적으로 바라보고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그도 그의 세계를 나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가느라 힘들게 분명하다. 늘 혼자 결정하고 혼자 선택해오며 살아온 것은 그도 나와 같을 테니 말이다. 사사건건 배려와 양보를 강요하는 와이프라는 존재가 그 역시 당혹스러울 만하다. 그의 입장도 머리로 이해는 간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가 더 배려하고 양보를 해야만 하는 듯하다. 나와 완전히 같은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양보는 당연하고 나의 양보는 지는 듯 해 억울한 이런 욕심 가득한 마음은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일주일에도 수없이 좋았졌다 미워졌다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는 2017년의 뜨거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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