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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17. 2018

남의 편 말고 내 편하면 안 되겠니?

오늘도 우리는 육아전쟁 중



 결혼 생활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하다.


 처음 아기가 태어났을 때 초보 엄마와 아빠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기에 매사에 함께 고민해가며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아서 했었다.


 우는 아기를 안는 것도 당연히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몫이었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함께 놀아주는 것 그 모든 것이 신기하고 소중해 어느 하나 서로에게 떠넘기지 않았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기꺼웠다.


 그러다 아기가 어느 정도 크고 모든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난 요즘의 우리는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얼른 목욕시켜~~."

"잠시만."

"언제 할 건데??."

"이거 다 보구."

"아 그게 뭐가 중요해. 재워야 하니까 얼른 씻겨!"

"그럼 네가 씻겨~."


 휴...


 신생아가 있는 집에서 부부싸움은 피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그랬다. 우리 집은 안 그럴 줄 알았더니 역시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선배들의 조언은 정말 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데, 그걸 겪어봐야만 깨닫는다는 것이 큰 함정이다. 이렇게 또 몸으로 실감하고서야 옛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구나... 생각한다.



 나는 2년 차 전업주부이다. 삼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전업주부는 처음 해 보는 중이라 온통 낯설고 새로운 일 투성이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요즘 전업 주부라 하면 다들 부러워하다가 금세 먹고살기 힘들지 않냐 걱정해준다.
아직 아기가 어려서 그런지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있다. 살림 초보인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밥상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차려준다. 예전엔 아침도 간간히 챙겨줬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니 아침은 일어나서 나가는 걸 봐주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그마저도 아기 이유식이 중기로 접어들면서 대폭 줄었다. 아무리 해도 하루 두세 번 아기의 이유식과 간식을 챙기면서 나와 남편이 먹을 저녁까지 준비할 시간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우리 집에서 가장 지출이 큰 항목은 늘 외식비이다.


 청소기는 매일 돌리지만 걸레질은 2-3일에 한 번 한다. 이마저도 혼자 자취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며 스스로를 대견해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던 남편의 눈에는 영 못마땅한 눈치다. 청소와는 담쌓고 지내던 막내딸이 이 정도라도 해냄이 기특한 친정엄마와는 달리 말이다.



"울 엄마가 진짜 대단했구나."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남편에게 미안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든다. 미안함이 들 때는 "그러게 어머니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어쩌다 나랑 했데?" 하거나 "요즘 그렇게 사는 여자가 어딨어?" 하고 웃으며 상황을 넘기곤 한다.



 문제는 서운한 마음이 들 때인데, 이 때는 거의 전투 모드로 상황이 돌변하고 만다.



"아니 뭘 더 어떻게 잘하라는 거야?"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는 게 쉬운 줄 알아?"


"차라리 내가 나가서 돈 벌 테니 어디 한번 살림해봐!!"



 남편도 할 말이 많다.



"나가서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아?"


"내가 살림하면 이것보단 훨씬 더 잘하겠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살림까지 해야 해? 나도 좀 쉬자!"



 그럼 나도 또 반격을 한다.



"나는 그럼 언제 쉬어? 난 24시간 내내 애만 보는데?"


"나 지금 내 기준에선 엄청 잘하고 있거든? 맘에 안 들면 직접 해!"


"이럴 거면 애는 왜 낳았어!"


 (아가야 미안해. 네가 귀찮은 건 절대 아니란다.)


 맘에 아주 조금 있는 서운함을 한가득 부풀려 쏟아내고 나면 너무 유치한 엄살을 부린 것 같아 조금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쏟아진 물인 걸.



 둘이서 혹은 각자 보내던 여유 시간은 아기의 탄생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시간과 맞바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도 벅찬 행복이지만 그 속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희생이 '너의 것' 인지 '나의 것'인지를 놓고 우리는 이 유치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루한 싸움이라는 것을 둘 다 알지만 그 순간만큼은 결코 질 수가 없기에 모든 원망은 다 끌어와 퍼붓게 된다. 지나고 나면 참 한심하지만 말이다.





참 이상하다. 서로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서로에게 떠넘기게 되고 미루게 된다.



혼자 있을 땐 잘만 하는 아기 기저귀 갈아주기가 남편이 있을 땐 왜 이리 하기 싫은 걸까?


냄새나는 쓰레기는 그냥 가져다 버려도 되는데 왜 남편 생각이 먼저 나는 걸까?


남편이 함께 있으면 왜 그냥 드러누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은 걸까?



남편도 나와 별반 다른 것 같진 않다. 집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을 보면 말이다. 처음엔 당연했던 '우리', '함께' 그리고 '내가 먼저'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시간이 지나 아기가 크게 되면 모든 상황이 좋아진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빌어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요즘이다.





 결혼을 하기 전 나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아빠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었다. 텔레비전에서 주말마다 나오는 슈퍼대디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저게 과연 현실인 것인지 허구인 것인지 의문이 들곤 했고, 텔레비전 속 아빠들을 흉내 내느라 동분서주하는 주변 아빠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힘들겠다 싶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는 주변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저런 아내가 되지 말아야 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육아 1년 차인 나 또한 슈퍼맨 같은 남편을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퇴근한 뒤에는 가정에 충실한,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주는 슈퍼맨 같은 남편을 자꾸 기대하게 된다. 직장 다니던 시절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못한 채 늘어져 잠만 자던 내 모습을 잊은 채, 그 역시 처음 결혼하고 처음 아기를 키워보는 그저 평범한 남자 사람일 뿐이라는 것 또한 잊고선 말이다.


 게다가 나 역시 그가 꿈꿔온 이상적인 아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예전에 서로 꿈꿨던 결혼생활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결혼을 하면 아침밥상이 척 하니 차려져 있고 옷이 색깔별로 정리되어 옷걸이에 걸려 있으며 아침이면 아내가 꺼내놓은 옷을 입고 아침밥을 먹고 출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했다.
 그때는 '뭐 그런 비현실 적인 꿈을 꿨어? 요즘 그런 여자가 어딨어?'라고 핀잔을 주고 말았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의 생활이 남편의 이상과는 많이 다름이 분명하다.


 나 역시 이런 결혼생활을 꿈꾼 건 아니었으니 쌤쌤으로 하자고 웃어넘겼지만 때론 거기에 대한 미안함이 들기도 한다. 아기를 핑계로 애써 모른 채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서로 유리한 건 끄집어내고 불리한 건 집어넣은 채 사는 게 결혼생활인가 보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 했다. 딱히 누굴 편드는 건 아니지만 결코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기에 이런 말이 나온 듯하다. 내편은 아니니 남의 편인 거겠지. 나와 너무도 달라 결코 내 편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남편과 오늘도 소소한 다툼을 하고 아기를 재운 뒤 치킨 한 마리를 시켜 함께 앉았다.


"오빠 남편이 남의 편이라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아. 오빤 아무래도 내 편은 아니야."


"왜? 나는 네 편인데? 그럼 넌 누구 편이야?"


"나? 나야 오빠 편이지. 나는 아름다운 내편- 아내잖아."


"하하하하하.."



"오빠도 남의 편 말고 내편 해 주면 안 될까?^^"  



이렇게 전쟁 같은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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