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Oct 25. 2018

남편의 미소를 찾아서

행복한 가정, 그 쉽고도 어려운 것



같은 아파트에 사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16개월 딸을 키우고 있는 C이다.


나보다 한 살 위였지만 동갑인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쉽게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임신 후 직장을 그만둔 것도, 돌이 넘어까지 모유수유를 하는 것도, 타지에서 혼자 육아를 하고 있는 것도 비슷했다.
육아라는 세상에 동떨어져 홀로 사는 것 같았던 일상에서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난 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기쁨이 되었고, 그렇게 쉽게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던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첫 만남은 여럿이 함께 였었는데, 그 날, 누군가가 다음 생에도 지금 남편을 만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함께 만났던 세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와중에 C는


"나는 다음 생에 태어나도 우리 남편 찾아내서 결혼할 거야. 남 주기 너무 아까워!"


라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남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체 어떤 남편이길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모두 C의 대답에 놀란 듯 보였지만, 사랑해서 결혼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야?라는 그녀의 대답에 다들 어쩐지 머쓱해진 듯 보였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니까..' 쯤으로 타협하고 남편은 응당 욕먹어야 될 존재쯤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평범한 아줌마들에게 갑자기 들이밀어진 사랑이란 단어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특히 남편에 대한 불만이 한참 쌓여 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유독 한가했던 C와 나는 거의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정말 대단할 것 같았던 C의 사랑과 남편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는데... 뭐랄까, 아니 이런데도 사랑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인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단 허리가 아픈 C의 남편은 육아에 거의 참여를 못했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운전을 하지 못했다. 흔히들 말하는 좋은 남편의 범주를 많이 벗어난 남편과 살면서 육아와 살림과 운전까지 혼자 해 내면서도 남편을 너무 사랑한다는 C를 보니 어쩐지 민망해졌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렇게 까지 해 내는 사람도 있는데, 늘 사랑타령만 하던 나는 실로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기만 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사랑을 빌미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남편에게 요구하고 있었는지.

노력하는 남편에게 이것밖에 안 되냐 얼마나 많은 타박을 하였는지.


남편을 이해하지도 사랑을 제대로 표현해 주지도  못한 채 이해받기만 바라고 사랑받길 원했던 최근의 내 모습이 자꾸만 C의 미소에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행복한 가정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조금 더 함에도 남편이 조금 덜 함에도 관대해진다면 다툼이 없어지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이론적으로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실천이 결코 쉽지 않던 그 삶의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지금 이 시점에 만나게 된 것은 지금 내겐 정말 큰 행운인 듯하다.





퇴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일상에 지친 직장인의 고단한 얼굴이었다. 집에서 늘 마주 보는 얼굴. 그러고 보니 요즘 남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 같다. 늘 미소 띤 얼굴로 화도 잘 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피로해 보이고 부쩍 짜증도 늘었다.


바빠진 일 때문이라 남편은 얘기했지만, 혹시 그 이유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닐까?


술자리도 친구와의 만남도 모두 뒤로한 채 거의 대부분의 나날을 7시에 퇴근해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 남편의 노력을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도 남편을 불러해달라고 요구하며 어린애 같이 굴었던 내가 남편은 귀찮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미루고 싶은 일들도 당장 해 내라 닦달하는 나에게서 남편도 피로함을 느끼고 있진 않을까?



문득 지금의 내 모습은 예전 선배로서의 남편과 남자 친구로서의 남편을 대하던 그 수준에서 멈춰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무조건적인 내편이 되어 기념일을 챙기고 양보하고 배려해주던 예전의 선배와 오빠이던 모습과 평생을 함께하며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남편으로써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가장으로써의 무게는 고려하지 않은 채 예전과 달라졌다 투정만 부린 철없는 아내가 된 건 아니었을까?


우연히 찍힌 사진 속 굳어있는 남편의 얼굴이 내 탓인 것 만 같아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결혼 전 남편에게 결혼을 왜 하고 싶냐 물었을 때,

"나도 이제 의지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대답을 남편이 했었었다. 이 남자에게 내가 힘이 되어 주리라 다짐했었는데, 힘은 커녕 짐이 된 건 아니었나 모르겠다.

나에게 의지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남편. 스스로 짊어진 가장의 무게를 나에게 조금 덜어준다면 참 좋을 텐데.


C처럼 충만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참아내고 양보할 자신은 없만, 지금보다는 조금 덜 불평하고, 덜 요구하고 조금 덜 화내야겠다.


남편이 다시 나를 보고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잠시 저 멀리 보내 두었던 남편을 향한 사랑을 다시 데려와야겠다.  

더 기쁜 마음으로, 충분히 기꺼운 마음으로 내 남자를 챙겨 주어야겠다. 나와 내 남자와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이전 12화 다음 생엔 결혼하지 않을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