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Sep 11. 2018

다음 생엔 결혼하지 않을래

혼자이고 싶다는 게 이리 큰 욕심일 줄 몰랐어.




육아 10개월 차. 이제 아기도 제법 크고 이 생활에 적응할 법도 한데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적응은커녕 나날이 더 힘들어지는 듯하다. 요즘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에게선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게 되었다.



여전히 엄마 껌딱지인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고 사랑이다. 엄마를 말하기 시작한 뒤로 그 짧고 귀여운 발음으로 "어마~" 하고 다가와 안길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한 행복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세상을 얻기 위해 나의 자유를 포기해야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좁디좁은 우물에서 쉼 없이 발장구를 쳐 가며 간신히 몸을 띄우고선,  푸르른 하늘만 올려다보며 그 위의 바람을 그리워하는 꼴이다.

매일 나가는 바깥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나는 밖이 그립다. 혼자 나가서 혼자 만끽하는 자유가 그립다.




엄마 등만 보면 울어대는 아기 덕분에 화장실도 간신히 가게 될 줄이야... 큰 볼일이라도 볼라 치면 문을 열어둔 채 아기를 화장실 바닥에서 놀게 해 두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샤워나 머리 감기는 동물원 안에 든 원숭이가 된 것처럼 문 앞에 갇혀있는 아기에게 갖은 재롱을 떨며 해야 한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여유롭게 씻은 게 언제인지...
밤에 남편이 와서 아기를 재우고 씻을 때면 상황이 좀 낫지만  혹여 내가 씻는 소리에 아기가 깨지는 않을까 숨죽인 채 후다닥 씻고 나오곤 한다.


아기가 잘 때 쪽잠을 자고, 아기가 일어나면 자동으로 깨어나야 한다. 늦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아기의 뒤척임과 울음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만큼 자는 것은 이뤄질 수 없는 달콤한 환상처럼 들려온다.


잠 자기 직전까지 책을 읽다 덮고 잠드는 걸 좋아했던 나인데 책을 읽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읽어봤자 육아 책, 이유식 책, 아이 건강 책이 전부인 요즘이다. 반쯤 읽힌 채 책장에 꽂혀버린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나를 내려다보고 한숨 쉬는 듯하다.


밥은 아기가 먹고 남은 간 안된 이유식을 욱여넣거나 빵이나 과자로 대충 때우기 일쑤다. 갖은 유기농 재료에 건강한 식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내며 설탕과 조미료 덩어리인 인스턴트 푸드를 내 몸에 밀어 넣는 꼴이라니... 다른 엄마들의 그런 일상을 들으며 나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 역시 똑같은 흔한 엄마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나를 위해 옷을 입고 단장을 하고 밖에 나가본 게 언제인지... 문화 센터도 다니고 동네 엄마들 모임도 나가긴 하지만 언제 돌진할지 모르는 아기를 위해 노메이크업과 편한 옷차림만 고수하고 있다.


나를 위한 운동도, 나를 위한 문화센터도 아기의 생체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그 모든 게 사치로 느껴진다.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은 아기를 위한 것으로만 남아있다.



기본 의식주가 충족되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한다고 했던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자유를 박탈당한 갓난쟁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시간은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다. 누군가가 나와 아기 사이의 공간에 들어와 준다는 것, 나만 향하던 아기의 시선과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음이 꽉 막혀있던 내 숨통을 조금 틔여준다.


그렇게 남편이 퇴근하면, 아기는 아빠에게 잠시 넘긴 채 낮시간 동안 엉망이 된 집을 정리하고 함께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아차, 우리의 식사에 앞서 아기의 이유식이 먼저이다. 하루 세 번 먹는 10개월의 아기의 저녁밥까지 챙겨주고 아기를 씻기고 나면 9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우리 밥을 먹곤 한다. 그 마저도 대충 때우고 마는 간편식 위주이다.


이런 나날들에 남편도 때론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힘들게 일을 하고 들어오면 바로 아기를 집어던져놓곤 밥도 제대로 차려주지 않는 와이프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는 날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당장 내 코가 석자라 내가 더 크게 화를 내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힘들어 죽겠다고 알아주면 좋겠다고 온 몸으로 얘길 하면 남편은 나도 그렇다고 온 힘을 다해 얘기한다. 그렇게 돌쟁이를 키우는 가정의 평화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둘 다 힘들다. 서로를 보듬어 주기엔 각자 너무 힘들고, 너무 힘든 우리를 보듬어 줄 누군가는 근처에 없다.
이래서 많이들 친정이나 시댁 근처로 이사를 가나 보다.





나는 과연 좋은 엄마일까?

나는 과연 좋은 아내일까?



잠든 아기와 남편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엄마로서는 그래도 대충 80점은 줄 수 있겠지만 아내로서는 50점이나 될까 모르겠다.


육아도 살림도 다 완벽히 해내길 바라는 남편에게 나는 항상 부족한 와이프일 수밖에 없다. 원래 무엇이든 시키면 더 하기 싫은 법. 나의 살림 방식이 불만인 남편에게 맞춰주려 더 노력하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되려 이 정도 하는 것도 감사해하라며 큰소리치기 일쑤이다. 돌아서면 미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지만 말이다.



나를 이해해달라 그렇게 얘기하면서 나는 과연 남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내 하루가 힘든 만큼 그의 하루도 힘든 걸까?



나는 출근을 꿈꾸고 남편은 휴직을 꿈꾼다.
그렇게 서로의 것이 더 쉬워 보이고 좋아 보이는 요즘이다.






결혼 전에는 결혼이 하고 싶었었다. 아이도 낳아 잘 키우고 싶었다. 다들 하는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결혼 후, 그래도 혼자인 것보단 낫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생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순간도 여자임이 싫었던 적이 없던 나였었는데, 이렇게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다음 생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오롯이 나 하나 분의 인생을 혼자서 살아가야지.



이게 바로 지금 시대 출산율 0.9의 이유인 것 같다.


내 딸에게 혹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선뜻 권하고 싶지 않은 하루들을 살아가는 것이 결혼이라면,

혼자서 누리던 모든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내게 소중한 그 누구에게도 추천해줄 수가 없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다음 생엔 결혼하지 않으리 다짐해본다.





이전 11화 남의 편 말고 내 편하면 안 되겠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