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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일상
by 지니 Jul 06. 2018

한 가지 빼고 모두 다른 우리들

워킹맘이 할 수 있는 선택



 한국에서는 출산을 한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 가는 것이 일종의 코스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이 특수한 문화를 누릴 것인지 말 것인지 임신기간 내내 고민을 하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도 해보자 싶어 산후조리원 예약을 했었다.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다. 2주간 머무는 비용이 3백만 원에 육박했으니.. 어쩌면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리는 사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리원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혹은 한국에서 조리원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한나절은 떠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오늘은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해 보려 한다.






 첫 만남은 정말 민망함 그 자체였다. 두 평 남짓한 공동 수유실에서 너도나도 가슴을 까고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신생아와 씨름을 하며 만나야 하니 말이다.



“언제 낳으셨어요?”

“자연 분만하셨어요? 제왕절개 하셨어요?”

“젖은 잘 나오나요?”

“아기가 잘 빠나요?”



 그 와중에 조리원 이모님이 들어오셔서 한 명 한 명 가슴을 봐주신다.



“좋은 가슴이네요. 아기가 잘 물 수 있겠어.”

“교정기를 사용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나중엔 다 익숙해지기 마련이에요.”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내 가슴과 젖꼭지가 - 누군가에게 제대로 공개조차 해 본 적 없던 그 은밀한 부위가 이토록 진지한 관심의 중심에서 평가를 받는 날이 올 줄이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그 낯설고 화끈거리는 순간에,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바로 조리원 동기이다.



 지금껏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나 자신을 다 까(?)놓고 만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도 마찬가지겠지.



 처음은 민망함에 서로 수줍게 인사 정도만 나누게 된다. 첫인사로 가슴 트기부터 했으니 충분히 민망할 만도 하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 생활하고 따로 밥을 먹지만, 거의 종일 불려 다니는 수유 콜과 세 시간마다 해야 하는 유축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거기에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라도 하게 되면 짧은 대화나마 나눌 수가 있게 되는데 첫 대화를 트기는 그리 어렵진 않다. 우리에겐 출산과 첫 육아라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엄마의 나이나 직업 등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몇 호실의 누구 엄마만 있을 뿐이었다.


 이 주간의 조리원 생활 동안 나와 취향(?)이 비슷한(참여하는 수업이 유독 겹치는 두 명이 있었다) 두 명의 엄마와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조리원 이름으로 된 단체 톡방이 새롭게 생겼다. 그렇게 나에게도 ‘조리원 동기’라는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셋 다 처음 해 보는 육아였기에 모르는 일 투성이었다. 조리원을 퇴소해 집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초보 엄마들은 정신이 없었고, 그나마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안을 이 작은 모임에서 받았다.


 각자의 집에서 각자 떨어져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비슷한 시간마다 아기에게 젖을 물렸고, 비슷한 산후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동질감 속에서 서로의 마음과 고통을 이해해주고 나누는 관계가 되었고, 남편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 가며 우리는 조금씩 돈독해졌다.


 서른이 넘어 만났던 모든 새로운 인연 중에서 가장 끈끈하고 사심 없는 인연이지 싶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같은 조리원을 이용했다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우리였기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힐 일도 없었고,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어떠한 편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의 성장과 함께 삼십 대 중반 늦깎이 엄마들의 우정도 깊어졌다.


 우리는 정말 모든 면에서 달랐는데, 특히 우리가 선택한 여자로의- 아니 엄마로서의 삶이 가장 큰 차이였다.




 A맘은 큰 대학병원 간호사이다. 3개월의 출산휴가는 사용했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할 여건이 안돼 아기는 복직과 동시에 친정에서 키워주기로 했다. 하지만 친정이 지방이었기 때문에 매주 주말마다 두 시간 거리의 지방에 내려가 아기를 데려오고 다음날 다시 데려다주고 있는 워킹맘이다.

 100일 만에 떼어놓고 온 아기가 눈에 밟혔지만, 이런저런 여건을 고려했을 때 휴직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매일 크는 아기는 영상통화로 지켜봐야 했고, 주말이면 낯설어하는 아기와 다시 친해지고 또다시 헤어지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엄마의 아쉬운 마음을 모른 채 아기는 쑥쑥 잘만 크고 있었고, 엄마보다 할머니와 더 애착을 형성한 아기의 모습을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속상해했다. 거기에 평일엔 출근 주말엔 장거리 이동과 육아라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가면서 둘째는 꿈도 꾸지 못하겠다 단념하는 중이었다.


 B맘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대기업 직원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서 사용하고 나라에서 주는 휴직급여를 챙겨 받고 있다. 벌써부터 복직할 걱정에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잘 보내려 애쓰고 있는 휴직 맘이다. 당장 복직은 몇 개월 뒤인데 그래 봐야 아기는 고작 돌을 조금 지났을 뿐이다. 친정도 시댁도 아기를 봐줄 여건은 안돼 돌쟁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데, 회사에 있는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 두고 당첨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게 된다면 다행인데 안될 경우를 대비해 근처 어린이집을 조사하고 어디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픈 요즘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육아와 병행할 수 없는 직장을 다닌 덕(?)으로 당당하게 퇴사를 하고 십여 년간 내 온 고용보험의 혜택도 하나도 받지 못한 채 남편의 벌이로 생활을 하고 있는 전업맘이다. 경제적으론 조금 부족하지만 아기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 자신 또한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워킹맘과 휴직 맘과 전업맘(곧 워킹맘이 두 명이 되겠지만)이라는 우리의 이 차이는 실로 아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른 것과 다름없는 수준의 차이였다.


 직장을 다니던 여자가 출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개뿐인데 그 셋을 하나씩 고른 상황이니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선택을 조금씩 부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 선택이 나았다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 세 가지 선택지엔 모두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선택을 하게 된 것에는 나의 의지 보단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선택들로 우리의 미래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많은 것이 다른 채 자라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공통점은 세 가지 선택 모두 엄마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육아는 엄마의 전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일과 육아 중에 한 가지 만을 선택해야 하는 이 상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가 않았다. 물론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여전히 너무나 많다.


 특히 전업맘을 선택한 나는 그 선택이 나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과 커리어가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상실감에 빠지곤 했다. 한창 일하던 시절엔 남의 얘기로만 치부했던 경단녀가 되고 보니, 뜨겁게 일했던 지난 십 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면서 지금 이렇게 애만 보고 있는 상황이 못 견디게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려고 대학을 졸업하고 치열하게 취업하고 경력을 쌓으려 열심히 일했던 건가?


 실제로 출산이 많이 늦어진 요즘 애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을 비교해보면 대학을 잘 가든 못가든- 취직을 잘하든 못하든 -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듯하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집에서 애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 여자의 길이라니. 자아실현이 인생의 목표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육아가 내 자아실현과 동일시되는 이상한 상황이 닥쳐왔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은 엄마의 삶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이게 옳은 건지 아직 모르겠다. 엄마로서의 길과 나로서의 길은 분명 다른 길임에 틀림이 없기에 어떤 길이 더 좋은 길인지 아직 알아낼 재간이 없다.


 워킹맘은 또 워킹맘대로 아기에게 온전히 내 시간을 할애하지 못함에 벌써부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복직을 해야 해서 모유 수유를 끊어야 했던 A맘은 그저 아기에게 미안해했다. 자주 보지 못함에 미안해했고 아기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함에 미안해했다. B맘은 곧 자신에게 닥치게 될 미래를 알고 있기에 아기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더 많은 정성을 쏟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만 보고 있는 나는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


 그렇게 각자의 상황은 달랐지만 엄마가 된 우리는 자주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참 신기하게도 아기가 아파도 내 탓, 성장이 느려도 내 탓, 어디가 이상하다 하면 다 내 탓이오 하게 되는 죄인이 되어 버렸다. 이게 엄마의 마음인 건가?


 내가 제왕절개를 해서, 모유수유를 안 해서, 매운 걸 먹어서, 외출을 해서, 손을 안 씻겨서 등 아기에게 미안한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온전히 나에게 귀속된 하나의 생명을 키운다는 것에서 오는 무한한 책임감은 죄책감과 함께 오는 것이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셋 다 힘들었다.


 눈에 넣어도 안 이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더해 나 자신 혹은 세상과 싸우느라 저마다 힘들었다.



그래도 이쁜 우리 아기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요즘 젊은이가 가장 쉽게 포기하는 것 중 하나이다. 아니 포기까지 닿기도 어려운 선택사항 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이 단계까지 오기 위해 수많은 난관과 싸워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직접 겪어보니, 육아는 정말 결코 쉽게 권할만한 것은 아닌 듯하다.

 아기는 혼자서도 잘 큰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키우는 방법이란 없기 때문에 먹이고 재우고 씻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기는 어느새 훌쩍 커 있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닌 듯하다. 아이를 키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잘 모르겠는 이 사회와 싸우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이제야 무엇인가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한두 가지 정책의 변화로 해결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는 듯 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육아는 결코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많은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공동의 영역이다. 경단녀가 된 엄마의 인생도, 워킹맘이 아기를 더 잘 볼 수 있는 환경도 내가 잘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마의 희생만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님에도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요즘 엄마들은 정체성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 인생과 맞바꿔야만 하는 것이 육아가 되지 않는 세상을 내 아이들은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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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자. 쓰기중독자. 걷지말고 춤추듯 살아라. 일상 속 혹은 밖, 또 다른 하루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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