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현대사의 암울했던, 그러나 희망의 씨앗이 생명을 잉태하던 그때의 평범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세밀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한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 준 '나성여관' 집 막내, 삼수생이지만 공부를 포기한 '우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온통 어둡고 답답할 뿐이다.
억센 어머니와 무기력한 아버지, 학생운동으로 쫓기는 신세인 형, 백화점 점원인 누나.. 그리고 낡은 나성여관에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
빚 때문에 여관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아줌마,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할아버지, 건설 현장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아저씨.. '우연'이 바라보며 전하는 서울 어느 모퉁이의 나성여관은 희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 같은데,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 희망은 어딘가 정신적으로 부족한 아이처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가져 볼 만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고향을 가고 싶어 휴전선 어딘가를 헤매는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삶을 망쳐 놓은 고문 기술자에 대한 응징에서, 재개발로 나성여관을 떠나는 가족들의 발걸음에서 희망은 싹을 틔우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는 계속 흐르고,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를 밀어내며 새로운 역사는 쌓여가지만, 삶에 대한 절망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 절망이 깊을 때, 그 어둠의 공간에서 희망이 싹을 틔우는 것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