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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Jul 09. 2021

오롯이, 나를 위한 생일파티





며칠 전, 친구가 열매라는 태명을 가진 첫째 아이를 낳았다. 내 손보다 더 작은 조막만 한 얼굴에 오목조목 눈코입이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테디베어 인형만큼 작은 아이가 내 친구의 몸에서 태어나다니. 또 한 번 생명의 신비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열매라는 아이가 태어날 때 즈음, 나는 34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은 일 년 중에 가장 시끌벅쩍하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날이지만, 30대가 된 이후부터는 양가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하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한 날. 아마 한 살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기쁨이라는 감정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리는 것 같다.


나는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는 시기인 7월에 태어났다. 올해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드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간 탓인지 모르겠지만 7월이, 특히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 싫었다. 생일이 지나고 나면 올 한 해가 다 끝나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6월이 되면서부터는 생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하루하루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기어이 생일은 나를 찾아오긴 했지만.


스무 살의 나는, 생일이 되는 7월 7일 자정 알람이 땡! 울리자마자 파티를 하지 않았다며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었다. 온 가족이 내 생일을 제일 먼저 기억해주고 축하해주지 않았다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때 그 앙증맞고 귀여운 스무 살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 나는 파티를 하자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카톡에 극구 손사래를 친다. 생일은 내게 있어 가족들에게 듬뿍 사랑받는 날이었는데 이제는 온 가족이 나만 바라보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진다. "파티는 무슨 파티야~ 밥도 안 먹어도 괜찮아!" 올해 생일은 그냥 평범한 일상처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생일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막상 아무도 몰라주면 슬프다고 엉엉 울어버릴 거면서. 이렇게 생각만 해두고 누구보다 생일 축하 노래에 기뻐하고 손뼉 치고 행복해했던 사람 나야 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올해 생일은 이상하게 유독 특별했다. 생일을 앞둔 일주일 전, 나는 급하게 독립을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1인 주거 브랜드인데 직접 브랜드를 경험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촬영 이틀 전, 부랴부랴 짐을 싸서 입주를 하게 된 것이었다. 혼자 생일을 보내게 된 내가 안타까우셨던지 엄마는 미역국 한통을 싸주셨다. '엄마가 열심히 끓여주신 미역국이 있으니, 생일 아침에 꼭 내 손으로 생일상을 차려 먹어야지!' 이제는 내 집이 된 불광역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생일 당일 아침,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나를 위한 생일상을 차렸다. 서른네 번의 생일이 지나도록 나를 위한 생일상을 차려본 적이 없었다. 생일상은 조촐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햇반 한 그릇과 엄마가 싸주신 미역국, 조금 시어버린 김치 한 그릇이 전부였다. 밥을 먹다 말고 아차!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숟가락을 놓았다. "예시야,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축하해줄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소리 내어 축하해주자는 마음이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기만 했지, 나 자신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던가? 내가 진심으로 내 생일을 축하해준 적이 있던가? 그 짧은 시간에 지난 34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너무 어여쁘고, 소중한 나의 성장 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구나, 새삼 어른이 되어버린 34살의 내가 실감이 났다.


1988년 7월 7일, 응애응애 온 세상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울던 내 모습은 어땠을까? 부모님은 둘째로 태어난 나를 안아 들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자라면서는 어떤 딸로 자라나기를 바라셨을까? 지금 나는 부모님이 생각했던 것과 얼마나 다르게 성장해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와 있게 된 걸까? 손수 차린 생일밥을 먹으며 나에 대해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지난 역사와 같은 날들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글을 쓰고 나면 지금의 나를 더 이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생일상은 조촐했지만, 여러모로 뜻깊은 든든한 식사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짐을 하게 됐다. 앞으로 매년 7월 7일에는 내게 소리 내어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자고. "예시야,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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