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시 Oct 05. 2018

내 집을 갖게 된다면

내 방 같은 욕실을 갖고 싶다






술만 취하면 꼭 화장실을 제 방처럼 누워 잔다는 친구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술에 취해서는 아니지만 나도 화장실을 내 방처럼 사용할 때가 있는데 어쩐지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큰 욕조도 없는 우리 집 화장실에 (아니, 욕실이라고 하자 무튼 그곳에) 앉아 글을 쓸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해진다. 화장실이야 말로, 그 어떤 공간보다도 은밀하고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가장 매끄럽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을 살짝 받아두고, 엄마는 얘가 도대체 뭘 하나 걱정할 정도로 오랜 시간 글을 쓴 적이 꽤 여러 번 있었다. 따뜻한 물이 굳었던 몸을 풀어주면서 머리까지 맑게 정화시켜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깨끗하고 좋은 욕실에 대한 애정은 여행을 떠날 때에도 특별하다. 아무리 오래되고 낡은 집이더라도 화장실만은 깨끗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숙소를 정할 때 욕실을 가장 먼저 체크한다. 좋은 숙소의 방만큼이나 정말로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의 넓고 깔끔한 화장실을 볼 때면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을 헤아릴 수 없다.



나중에 내가 살게 될 집을 인테리어 한다면 우리 집 욕실은 방만큼 컸으면 좋겠다. 호텔에서 체크인했을 때의 그 모습처럼 물기 없이 말끔하게 관리하고 싶다. 욕실의 욕조는 내 하체의 길이보다 1.5배 더 컸으면 좋겠다. 충분히 누워서 그 시간을 누릴 수 있게. 욕조의 머리맡엔 여닫을 수 있는 서랍장이 놓여있어 여러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펜을 넣어두고 반신욕을 할 때마다 욕조에 걸쳐진 테이블 위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맥주 한 캔을 마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욕조에 가득 담긴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면 한 문장을 끄적이고, 잠깐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물속에 풍덩 들어가 차가워진 몸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주는 반신욕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제 충분히 됐다 싶을 때 물기를 털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욕실. 그저 볼일을 보고 몸을 씻어내는 것 그 이상으로, 내 마음의 편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욕실을 언젠가 꼭 갖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시절 우리가 나눴던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