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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Apr 03. 2023

김지운 김도희 <차별> 단평 : 그래도 현재지에 가까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아쉬움, 그럼에도 조선학교 이슈에 한 걸음 더 들어가다

2007년 김명준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2006년 개봉한 양영희의 <디어 평양>과 더불어 여러모로 독립/다큐멘터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과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유인촌이 나왔던 <김의 전쟁> 같이 한국 극영화에서 재일동포(또는 재일코리안, 자이니치)의 현실 문제를 다룬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저 소재를 선정적으로 써먹기 일수 였습니다.


<우리학교> 등이 나온 이후에서야 영상의 영역에서 ’조선학교‘를 비롯해 오랜 시간 레드 콤플렉스에 갇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조선적-조총련 등 북한과 가까이 관계를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접근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우리학교>나 <디어 평양>이 없었다면 이후 나온 <울보 권투부>나 <60만번의 트라이> 같은 작품도 없었을 것입니다.



<차별> 또한 이 궤도에 놓인 작품이에요. 특히 조선학교의 근래 상황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가장 밀접하게 이어져있는 다큐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작사인 이스크라21을 비롯해 영화의 공동 감독이자 제작사의 대표인 (<조용한 가족> 연출한 분과 동명이인의) 김지운 감독이 본래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지역을 바탕으로 제작한 독립 다큐멘터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미 조선학교를 다루는 작품은 <우리학교> 이래 수차례나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조선학교의 일상이나 스포츠 활동 등을 다루며 이 공간의 존재와 의미를 다뤘다면, <차별>은 좀 다른 길을 택합니다. 심상치 않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갈수록 조선학교가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과 어떻게든 이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애시당초 오랜 시간 조선학교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가받는 것도 난망했고, 학력을 인정받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2012년 이후로는 북한과의 오랜 관계를 이유로 고교 학비 무상화를 비롯한 여러 학교 지원책에서 제외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든 뒤집기 위해 여러 차례 시위나 캠페인를 펼치고, 각 지역별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법적 소송도 진행했지만 상황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2017년 오사카조선학교의 1심 승소를 제외하면 모두 최종 패소로 끝났죠.


<차별>은 이러한 조선학교 존속의 위기를 정면으로 다뤄내고 있습니다. 이전의 작품들이 조선학교에 가해지는 여러 압박이나 편견의 비중을 줄이며 일상 속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면, <편견>은 이미 벼랑 끝에 놓여 위태한 상황과 이에 맞서는 움직임, 그러나 쉽게 바꾸기 어려운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모습을 교차하며 재일동포에게 있어 조선학교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왜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조선적이라는 정체성은 이들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조심스레 파헤칩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죠.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담아내려다 보니 끝으로 갈수록 편집이나 구성이 덜컥거리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지만, <우리학교> 이후 조선학교를 다룬 적지 않은 다큐들이 지닌 ‘근원을 묻는 접근’을 회피하는 측면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차별>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 더 핵심적인 부분을 보고자 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작중에는 분명 조선학교 자체가 행정적으로 차별을 받는 이상으로 조선학교 진학을 택하는 학생수가 나날이 급감하는 것은 무엇인지, 조선학교와 북한 사이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북한이라는 나라가 지닌 모순이 당사자나 연대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고민하며 접근 가능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은 이에 대해서 묻는 것은 조심스럽다 생각했는지, 아니면 ‘어찌되었든 북한도 재일동포도 같은 한민족’이라는 설명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던지 핵심이 될 수 있는 순간에서는 여전히 돌아가는 선택을 택합니다.



물론 그러한 질문이나 고민이 가지는 민감함이나 어려움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순간순간 보이는 조선학교와 재일동포 사이의 결코 쉽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애착과 정체성의 측면을 깊숙하게 다뤄내었기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지점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은 쉽게 해소할 수 없는 아쉬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은 <우리학교> 이후 15년이 지나서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이 놓인 현실에 좀 더 밀착하여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 김철민의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을 비롯해 다큐창작소의 장단편 다큐가 있었지만, 냉정히 말해서 여러 이유로 피상적으로 다가가는 측면이 강했으니까요.) 통일-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학생-사회 운동을 하면서 해당 지점에 애착이 깊었다면 그 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에 여러 복잡한 심정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실재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의 현재지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둔탁거리고 아쉬운 지점이 있더라도, 근년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응시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디어 평양>부터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당사자로서 일본-북한-남한의 경계를 다뤄내는 양영희의 작품과 같이 봐야, 비로소 빈 자리가 채워지는 작품일지도 모르겠어요.




덤. 작품의 흥행 상황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 4월 2일까지 일단 관객수 1347명을 기록했는데, 개봉 전 시사회 등 관객을 제외하면 실관객은 545명에 불과하죠.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약 8천명,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약 4천명 관객을 기록해 그 정도는 올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래저래 좋든 싫든 독립 다큐멘터리, 특히 소재가 지니는 시의성이나 분명한 목적성을 갖춘 작품들이 영화관을 통한 개봉 전략을 다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고요.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영상의 배급과 유통을, 그리고 접근의 방식을 다시 만드는 긴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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