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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은 <준스톤 이어원> 단평 : 질문이 없는 정치다큐

계속 양산되는 정치적 다큐멘터리의 흐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by 성상민 Mar 12. 2025

보고 싶지 않지만,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지 너무나도 뻔히 알지만, 궁금한 마음과 도리어 영화 외적으로 뭔가를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은 생각으로 가끔씩 보게 되는 작품군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종교 소재, 정치 소재, 그리고 음모론 소재 작품 상당수가 저에겐 그렇다고 할까요. <준스톤 넘버원>도 그런 마음으로 보게 되었네요. 오랜 시간 독립PD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고,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는 2019년 <시인 할매>로 처음 만들었던 이종은 감독이 보수 정치인 이준석의 2023년부터 2024년까지의 행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작품은 정말 뭐라고 할 말이 그리 없습니다. <그대가 조국> 같은 근래 현재 활동 중인 정치인을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처럼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억울함’이나 ‘한’은 잘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래서 이 사람이 무슨 정치를 하고자 하는지, 구체적인 입장은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질문으로서 파고들지 않거나 매우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는 경향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조금은 날카로운 것처럼’ 보이려는 연출은 있습니다. 이준석의 측근인 천하람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준석의 발언이나 행보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보여주려고는 하죠. 그러나 딱 그 정도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정말 앞에서만 짧게 나온 채, 뒤의 인터뷰 인용은 결국 ‘이준석은 그래도 왜 좋은 정치인인가’로 향해 가니까요. 사실 들여다보면 꽤나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지점이 충분합니다. (작품에서 어떻게든 안 보여주려고 하는) 자신이 내놓은 여러 문제적 발언들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발언이 낳을 여파를 생각하고 하는 것인지, 자신이 어쨌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보수적 정치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 또는 2020년대 이후 엄청나게 요동쳤던 여러 행보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말이죠.


하지만 영화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애시당초 질문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기도 하고요. 작품은 딱 ‘윤석열의 당선과 이후 지방선거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으면서도 결국 축출당한 이준석이 어떻게 신당을 창당하고 첫 국회의원 당선으로 복수하는가’라는 영웅적인 서사에 천착하고, 그 서사의 이입에 방해할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은 어떻게든 배제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결국 의도치 않거나 대수롭게 삽입된 장면들이 결국 이준석에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지우려고 해도 완전히는 지우지 못하게 만들죠. 기왕 확실하게 지우려고 했으면, 이낙연의 ‘새로운미래’(현, 새미래민주당)과의 합당이 결렬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왜 배복주는 합당에 참여하면 안 되는지’를 말하는 장면도 뺐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도 이전에 제작된 <그대는 조국>이나 <노무현입니다> 같은 류의 작품과 포커스로 삼은 인물의 성향만 다를 뿐 참으로 데칼코마니 같습니다.


물론 애시당초 이 작품은 이준석의 지지자나 팬을 위해서 만든 작품이고, 이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 다큐멘터리니 약간의 흠결도 목표 관객들에게는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 양산이 되는 상황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생산적일 수 있겠죠.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 지지하는 다큐멘터리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이제야 만들어질 뿐이지,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등에서는 꽤나 입장이 분명한 정치 다큐멘터리는 자주 나왔었으니까요. 근래 트럼프를 엄청나게 칭송하고 그에 반하는 존재는 모두 노골적으로 악으로 치부하는 다큐멘터리를 양산하며 참으로 악명높은 디네시 더수자(Dinesh D'Souza) 같은 양반도 이미 진작에 있었으니까요. 넷플릭스 한국 서비스 초창기에는 사라 페일린을 옹호하는 다큐멘터리도 있었던데요.


어차피 팬덤을 위해서 만든 작품이니, 딱 그에 맞춰서 모든 구성요소가 짜맞춰지는 건 당연할 수 밖엔 없습니다. 앞서 말했던 대로 이런 작품이 해외에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이 제법 영화관에 걸리는 미국이나 일본 등이 작년 <건국전쟁>이나 <그대가 조국>, 또는 김어준의 <그날, 바다>, <더 플랜> 같은 작품이 개봉할 시기의 한국 박스오피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류의 작품에만 계속 사람이 몰리고, 그 이외의 독립적이거나 비주류적인 작품에 사람이 거의 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철저히 팬덤의 존재에 영합하는 다큐멘터리가 계속 양산되고, 그런 작품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결국 깊은 고민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질문을 누군가는 받고 싶지 않겠지만, 그런 질문이 싫었으면 마치 아이돌 팬클럽에게만 공개되고 외부 노출을 철저하게 막는 류의 한정 영상처럼 정말 내부에서만 작품을 돌렸어야 했겠죠. 기왕 개봉까지 하면서 팬덤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표만 사면 보도록 결정한 순간에서 대채 어떻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틀어막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 문제는 <준스톤 이어원>만의 것은 아닙니다. 이미 독립영화나 비주류 영화에서는 팬덤이 모이기 쉬운 소재가 아니면 더더욱 관객층이 형성되기 쉽지 않는 건 물론 순환도 어렵게 된지 오래며, 이제는 독립·비주류 영화를 넘어서 영화판 전체가 그렇게 돌아가게 되는 마당이 된 한국 영화의 현 상황을 직시하고 그간의 상황을 성찰해야만 하겠죠. 이래저래 영화보다 영화 밖에서 벌어지는 흐름을 더 눈여겨봐야 하는 다큐멘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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