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때우기에 급급한 현실
자취생활을 시작한 건 10년 전쯤. 아기자기한 주방에서 온갖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거나 여유롭게 쿠키를 구우며 살 수 있겠다는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기 시작했는데 이제 밥을 먹는 것도 재미없고 귀찮아졌다.
예전에는 음식점에서 혼자 밥 먹는 손님이 있으면 "처량하다" "안돼 보인다"는 눈길이 많았지만 지금은 국민 10명 중 3명이 혼자 음식점을 찾는다고 한다. 이것도 모자라 혼자 술집에서 술도 마시고 고깃집에서 고기도 구워 먹는 사람들도 있단다.
'혼밥'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혼밥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생활에 녹아들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한집에 살고 있는데도 일주일에 한번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창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해야 할 중고등학생 때에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집에서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기 일쑤였다. 라면이 지겨운 날에는 엄마가 준 용돈으로 피자나 치킨을 시켜먹었다. 지금까지도 내 몸에서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떨어져 나갈 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 끼 때우기에 급급한 식사는 내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벌써 드시고 오셨어요?
혼자 먹는 밥의 단점 중 최악은 바로 '식사 시간의 단축'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혼밥족이 된다. 보통 사무직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나처럼 식사시간이 일정치 않은 업무를 해온 사람들은 '빨리 먹고 쉬거나' '빨리 먹고 일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어느 날 "나 오늘 국밥을 5분 만에 먹었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주변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그날부로 나는 '국밥녀'로 등극했다. 밥알을 식히는 시간도, 제대로 씹는 시간도 아까워 후루룩하는 것이 먹는다기보다 흡입에 가까웠다. 펄펄 끓여 나오는 국밥을 5분 만에 먹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누구 하나 자기는 안 그렇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황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지 못하고 그저 쑤셔 넣으며 살고 있다.
"혼자 먹고 혼자 일하려고 사는 것이 아닌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혼자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인생에서 느끼는 행복의 80% 이상이 음식을 먹는데서 온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말하는 우리 엄마. 그녀도 몇 년 전까지는 영양 불균형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1년에도 몇 번씩 응급실에 실려가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시골로 귀향하면서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종종 시골에 내려가면 한 끼 식사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어떤 좋은 일이 있어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는 날에는 2~3시간 동안 밥을 먹기도 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골고루 먹는 것, 무엇보다 식탁에 그리 오랜 시간을 앉아있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꿈같은 휴식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 초고속 혼밥은 또다시 시작된다. 언젠가 나도 여유로운 식사를 생활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혼밥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혼자 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