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달 Jul 16. 2016

삶의 무게

스물아홉 일기

내 나이가 많아지는 것은 곧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나의 부모가 황량한 이 땅에 나를 두고 떠나버릴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를 때우고 스쳐보낼 줄만 알았던 내가 어느 날 깨달은 것은 바로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인간의 도리와 예의를 가르쳐주신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 두 분은 2년 전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

이런 날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아무것도 몰랐던 유치원생 때부터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못 살 것 같아"라고 했을 정도로 두 분이 없는 세상은 너무 두려운 존재였다.


기억 속 나의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와 후덕한(?) 몸매를 가진 분이셨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할머니를 한번 업어드릴 기회가 생겼었는데, 체격이 좋은 나도 힘들 정도로 무게가 엄청나셨달까. 뱃살을 빼겠다고 웬만한 길은 걸어 다니시던 할머니였지만, 다이어트가 쉬워 보이진 않았다. 


세월은 금세 흘렀다. 질환으로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도 며칠을 앓으시더니 곧 그 길을 따라가셨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두 팔로 안아 들 수 있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그렇게 욕심 많고 열정 넘쳤던 할머니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준비를 하느라고 몸과 마음에 깃든 삶의 무게를 줄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안부전화를 걸면 반갑게 이름을 불러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들려주는 전화번호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