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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곰 Mar 15. 2020

그때 그곳에서

근사한 저녁이 될거야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학창 시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코 그때가 그립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 학교였기 때문에,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제는 일화가 된 몇몇 사건과, 시간이 변모해가면서 확신으로 굳어진 덕분에 꽤 사실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게 된 몇몇 기억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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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 몇 해 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때는 이 문장에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장 필요한 문장이 되었다. 약간의 고통과 무감, 견디는 삶과 망각, 멸시 속에서 살다 보면 결국은 이제 죽어도 괜찮겠지, 다른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왜 죽고 싶어 하는지 무구하고 찰나이며 그중에 어떤 것도 기대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이 무감은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게, 좋은 것만 기대하는 죄책감이 방향을 돌린다. 인생에 기대하는 좋은 것들을 생각해야지. 밤의 공항에 내려 밖으로 짐을 찾고 택시를 잡는 동안 체온이 올라가고 그때서야 두꺼운 옷을 벗어 가방에 넣을 때. 훅하고 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을 때, 낯선 도시의 밤에 택시를 타고 모르는 길을 가는 불안과 기대감. 보통 첫날은 가성비가 좋은 숙소에서 하루만 자고 이동하기 때문에 짐도 풀지 않는다.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정돈되지 않고 청결하다고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심란하고 들뜬 마음을 잡고 눈을 감는다. 그다음 날은 며칠을 고민하고 선택한 숙소로 간다. 본격적인 날은 지금부터야, 하는 마음으로. 구석구석이 마음에 들 때 안도하고 만족스럽다. 내일을 기대하지 않고 까무룩 잠이 들고나면 밝은 날. 그런데 앞으로는 첫날부터 소중하게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도 지나가는 곳, 순간으로 만들지 않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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