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을 낼 때, 편집자와 작가는 파트너가 된다. 편집자는 작가의 글을 전담하고, 작가는 때때로 편집자에게 의지한다. 글은 결국 작가가 쓰는 것이라 해도 책을 내기까지 편집자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하다(직접 출간하는 경우는 또 다르지만). 그렇다면 편집기자인 내 글은 누가 볼까? 당연한 말이지만 편집기자가 본다. 그 선배가 지난봄에 말했다.
"지난번에 업계 동향을 살피느라 챗GPT에 제목을 뽑아보라고 기사 핵심 단락 몇 개를 집어넣었더니 무난하게 뽑긴 하던데 약간 미국 매체 스타일이더라구요. 그래서 밥벌이 걱정 안 해도 되겠단 생각을... 그래서 말인데, AI의 제목을 기사 소재로 한번 써보면 어떨까?"
그로부터 6개월도 넘게 지나서 챗GPT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진 어느 주말, 인공지능(AI)에게 말을 걸어봤다. '직장에서 거절하는 법'을 다룬 글의 한 단락을 넣어주고 제목을 뽑아달라고 했다. '자아를 찾는 여정', '자유롭게 결정하는 법', '강한 나로 변화하기 위한 첫걸음' 같은 제목들이 나열되었다. 선배가 말한 '약간 미국 매체 스타일'이 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명사형으로 끝나는 문장을 좀 더 구체적인 동사형으로 바꿔 달라고 해봤다. '거절을 통해 내 의견을 표현하다', '거절로 나의 삶을 디자인하다', '거절의 용기를 가지다'로 바꿔주었다. 노력은 가상하다만, 쓸 만한 제목이 없었다. 순간, AI에게 역할을 부여하면 더 임무 수행을 잘한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났다. 나는 즉시, 역할을 부여해봤다.
"너는 시민들이 쓰는 글을 편집하는 편집기자야. 편집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