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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20개월부터 19살까지... 남편의 라이딩 인생

오전 8시 10분까지 등교하는 고3 딸, 태워다 주고 데리고 오는 남편

by 은경

지난 4월 마지막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고3 1호의 중간고사 기간. 2학년 기말고사부터 정시파를 선언한 1호는 그때부터 올해 중간고사까지 별다른 내신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반대할 상황은 또 아니다(이유는 다들 아실 테니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중간고사 내내 일찍 집에 온 덕에 야자(야간자율학습)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남편의 저녁 라이딩은 잠시 멈춤이었다. 그랬는데 금요일, 그러니까 지난 2일, 시험이 끝난 1일 다음날 오후, 야간자율을 학습하고 오겠다는 딸의 통보.


"응? 어제 시험 끝났는데, 야자?"

"응. 뭐 어때서. 모의고사는 안 끝났잖아."

"아빠한테 말했어?"

"아직."

"그럼 내가 말할게. 저녁 잘 챙겨 먹고 조심해서 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간고사 끝나면 친구랑 놀아도 되느냐고 물어서 "너는 중간고사랑 상관없다며?"라고 핀잔을 주었더랬는데. 그러자마자 "그럼 모의고사 끝나고는 놀아도 돼?"라는, 안 들은 귀 사고 싶은 소리를 했더랬는데. 이건 무슨 상황? 애 말마따나 뭐 어때서. 공부한다고 하면 다행인 거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했다. 남편은 평소 같지 않은 목소리 톤으로 말하길...


"응? 나 안 되는데... 저녁 먹으면서 한 잔 하기로 했는데... 허허, 어제 중간고사 끝나지 않았어? 왜 오늘 야자를 해? 아침에 학교 데려다 줄 때도 그런 말 없었는데?"

"걘 모의고사 준비하잖아. 모의고사는 시험은 다음 주니까."

"나... 데리러 못 가는데..."

"괜찮아... 그럼 자기가 1호에게 전화해서 버스 타고 알아서 오라고 해."

"아, 거참... 알았어."


그럴 것 없는데 남편은 미안하고 아쉬워하는 눈치다. 1호가 고3이 되면서 남편이 아침 등교와 저녁 하교를 책임지고 있다. 나는 오전 8시부터 근무라서 어렵기도 하지만,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해도 불가하다. 왜냐면, 내가 운전을 안 하기 때문이다. 못 한다. 면허는 있지만 한 번도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다. 이유가 뭐냐고? 이게 핑계가 될까 싶지만 운전이 무섭다. 조수석에서도 항상 긴장하는 타입이고 운전하는 남편을 보는 것도 무섭다. 내가 너무 자주 놀라는 탓에 남편이 놀란 적도 많다.


KakaoTalk_20250506_192517163_03-2.jpg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라이딩하는 남편.


사실 남편의 라이딩 이력은 상당하다. 두 아이 모두 20개월부터 취학 전까지 국공립어린이집에 7년을 보냈는데 매일 아이들을 실어 나른 것은 남편이었다. 초등학교 역시 오후 돌봄 문제로, 집과는 거리가 있는, 그러나 시댁과는 가까운 학교에 다녀야 해서 그 라이딩도 6년을 했다.


1호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이사를 해서 도보로 등교가 가능해질 때까지 남편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실어 나른 뒤에 출근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남편 회사가 당시에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이기도 했고, 유연근무제라는 게 있어서 출근이 늦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회사가 이사를 가서 지하철로 30여 분 정도 걸리지만 역시 유연근무제라 출근이 늦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신 퇴근은 늦다. 오후 9시가 넘어야 집에 오니까. 이러니 오전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챙기고, 오후에는 내가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오래된 우리 집만의 문화였다. 맞벌이 부부의 생존전략 같은 거였는데 남편 회사의 유연근무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중학교 생활 동안 1호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학원 라이딩 같은 건 없었다(중3 때 한 영어 과외 때문에 6개월 정도 일주일에 한두 번 라이딩을 했던 게 전부/ 집으로 '오지 않는' 과외 선생님도 있더라!).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아이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러던 것이 고3 때는 등교가 아예 오전 8시 10분까지라 남편이 지원에 나선 것이다. 남편은 오전 7시 50분쯤 집을 나서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와서 차를 주차한 뒤 지하철 역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지난 3월부터의 일과다.


가끔씩 아이가 일찍 오게 되는 날은 남편이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 남편은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당연히 1호가 집에 일찍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야자를 한다고 하니 데리러 가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되는데, 하루 정도 버스 타고 와도 되는데. 다정한 아빠는 여기서도 티가 난다.


내가 한때 '엄마가 한번 해봤어' 원고를 투고했을 때 어떤 출판사 편집자가 원고를 전부 읽어보시고 그러셨다. 원고에서 특히 아빠 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참 다정한 아빠신 것 같아 부럽다고. 내 원고에서 내가 아닌, 남편의 다정함을 느꼈다는 게 좀 아이러니했지만, 잘 보신 거다. 남편은 다정한 사람.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다정한 사람이니까.


하긴 첫 책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을 때도 모두 남편의 다정함과 스위트함에 놀라긴 했다. 어떻게 이런 아빠가 있느냐고. 있더라. 그게 내 남편이더라(가깝게는 우리 이모부도 그런 아빠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고는 몇 개의 출판사에서 검토만 하다가 결국 최종 계약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출간할 원고 폴더'에 묵혀 있는 원고를 볼 때마다 나만 보기가 아쉽고 또 아쉽다.


그래도 나는 육아일기에 가까운 '엄마가 한번 해봤어'를 지난 2017년 이후 꾸준히 쓰고 있다. 따져보니 햇수로 9년. 1호가 열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열아홉이 될 때까지 쓰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시작한 글인데 쓰고 보니 나를 위해 쓴 게 아닌가 싶다.


흔들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엄마라는 내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서. 아이들로 인한 내 삶의 변화를 기록하고 싶어서. 남편이 곁에 없었다면 단언컨대 이 글의 시작과 지속은 불가능했을 거다.


그런데 당분간은 남편이 휴가를 얻었다. 1호가 야자 대신 집 앞 스터디카페를 다니기로 했기 때문이다. 3개월 결재!(한 달 추가는 보너스) 내 입장에서는 야자보다 이게 더 낫다. 저녁 대충 먹는 것고 야자하는 것이 늘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의 잦아질 술자리는 별로 안 반가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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