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의 미혹
'증상'(症狀):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태나 모양.
'현상'(現想): 보고 듣는 데 관련하여 일어나는 생각.
'증상'. 이 말은 최근 들어 나의 삶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어온 단어 중 하나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증상'이란 단어는 병원 혹은 약국 등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나는 하루에도 쉴 틈 없이 나를 괴롭히는 갖가지 '증상'으로 병원을 자주 찾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매번 나의 불편한 '증상'들에 대해서 의사에게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말 내가 의사에게 말하는 '증상'이, 혹은 의사가 나를 보고 판단하는 나의 '증상'이 내가 앓고 있는 그 질환들의 속성과 실체를 온전히 밝혀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의료계와 이와 관련된 종사자들이 규정하는 그 '증상'과 그에 따른 '병명'들이 정확히 내가 겪는 신체 혹은 심리의 고통을 명백히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현재, 공식적으로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만 가지고서도 나는 8~9개의 질환을 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와 관련해서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알약의 개수만 해도 쳐다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올 정도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동안의 병력을 돌이켜보건대 이 '증상'이란 말이 얼마나 환자의 상황을 온전히 반영하고, 이해하여 그가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 아닌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격정적 의문 속에 시달리다 끝내는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내 몸에 큰 생채기를 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8년 11월 22일. 나는 정확히 나의 서른네 번째 생일날 내 신체 장기의 일부인 자궁을 내 몸안에서 끄집어내었다.
이러한 수술을 감행하게끔 만든 나의 병명은 이른바 '상세불명의 이상 자궁 및 질출혈'이었다.
이외에도 수술을 하기까지 2년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자궁을 포함한 생식기 관련 통증을 겪으며 전국의 대학병원을 전전하면서 받아낸 진단서에는 '상세불명'으로 시작하는 수도 없는 많은 질환명들이 나의 증상과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끝내 내 병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내 신체 장기의 일부를 드러내면서까지 그토록 애타게 찾아내고 싶었던 내 증상의 원인을, 병명을, 나는, 아니 의사들은 알아낼 수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의사와 마주한 내게 의사가 던진 말은 자궁은 '아무 문제없이'. '아주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혹시의 가능성을 두고 우려했던 자궁내막증도, 자궁선근증도 아니었으니 이제 안심하고 몸조리나 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는 내게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선 불법이지만. 언젠간 대리모가 합법이 될지도 몰라요. 그러니 젊으실 때 난자라도 미리 얼려놓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나의 자궁적출술을 시행한 의사와의 마지막 만남이자 대화였다.
수술 후 약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것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뭔지 모를 또 다른 증상 때문에 여전히 다른 병원들을 전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겪어야 하는 특정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것은 나의 지난 병력을 듣고 의사들이 내게 무심코 던지는 반문 아닌 반문이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쉽게 그랬어요?
물론 이러한 반응은 내가 아직 30대이고,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의사들의 반응이었다.
어떻게든 아이 하나는 낳으시고나서 수술을 하시지. 그러고 나서도 늦지 않았을 텐데...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들이 여기까지 똑같이 반복되다 보면 그때부터는 내 편에서 먼저 의사를 향해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왜 문제라는 거죠? 그 부분만 설명해 주시죠.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출혈을 동반하는 심각한 수준의 자궁근종도 아니고, 터지기 일보직전의 난소 관련 종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른 종양이나 암은 더욱이 아니었던 상황에서, 그것도 아직 젊은 여자가 자궁 적출을 감행했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의사는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니, 이해는 둘째치고 적어도 비난 어린 말투와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만 해도 되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의사들이 말하는 객관적 지표와 수치, 논리적 공식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례들은 '상세불명'이라는 무책임한, 혹은 책임전가식의 의료 판단으로써 많은 환자들의 이른바 그 '증상'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결국 밝혀내기 못한 채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과 통증에 시달리며 결국 최후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환자의 상황에 대해 그가 겪어 냈어야 할 고통에 대한 과정적, 심리적 차원의 관심과 위로를 보내는 의료인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나는 늦었지만 우리의 질병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모든 종사자들에게 이런 제안, 아니 부탁을 드리고 싶다.
이젠 환자의 '증상'보다도 환자가 그 '증상'으로 추정되는 상황에 의해 겪게 되는 '현상'에 좀 더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보자고 말이다.
그렇다고 병을 치료함에 있어 의학적 사실이 증명하는 환자의 '증상' 또는 '징후'를 소홀히 하자는 뜻이 아니다. 우선 환자의 '증상'을 기반으로 그 병에 접근하되, 그로 인해 부수적으로 환자가 겪어내야만 하는 병에 대한 환자의 주관적, 경험적 '현상'에도 적극적 관심과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3년 전 수술의 후유증과 스트레스로 또 다른 질병을 안게 된 지금. 가끔 운 좋게 내가 겪어내야만 했던 투병기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의사 혹은 간호사 선생님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과장스럽다고 생각될 만큼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그들이 내게 던지는 그 공감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와, 누군가를 멸시하지 않는 그 시선이 아직도 과거의 치료과정에서 얻은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용기와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살아가는 중에 나와 비슷한 혹은 다른 일로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이렇게 한마디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많이 힘드셨죠,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다 괜찮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