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민과 민감

예민함과 민감함의 온도

by 꿈꾸는 카프카

'예민'(銳敏)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민감'(敏感)하다: 자극에 빠르게 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영향을 받는 데가 있다.


나는 '예민한'사람이다. 그래서 가족을 포함해 지인들에게 나는 예전부터 종종 이런 이야길 듣고는 했다.


그건 네가 예민해서 그래
그 예민함을 좀 줄여보는 게 어때?


내 예민함은 신체적, 정서적 측면에서 모두 그 징후가 발현되고는 하는데 이를테면 나는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겨울철에는 히타에서 나오는 바람을 쐬지 못한다. 이는 에어컨이나 히타에서 나오는 인공적인 찬 공기나 뜨거운 공기가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1년 중 그나마 자유롭게 외출을 나설 수 있는 달은 채 넉 달이 되지를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것 같다. 약간의 더위, 추위에도 사람들은 에어컨이나 히타를 찾는다. 에어컨이나 히타가 없는 예전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과 겨울을 보냈을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지 몰라도 우리의 선조들은 분명 그렇게 한 여름과 한 겨울을 났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쉽게, 어쩌면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문명의 발전이 낳은 그 이기(利器)에 자연이 준 우리의 사계절을 의탁해버리고 있다.)

암튼 간 이와 관련해 '예민한' 나는 역시 그 원인은 찾기 위해 큰 병원에서 각종 알레르기 검사, 면역검사 등 현대의학이 내게 제공할 수 있는 형태의 모든 검사는 다 받아보았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 이상 없음. 물론 약간의 비염이 있기는 하나 비염이 있다고 해서 모든 비염 환자가 나처럼 에어컨, 히타 바람을 아예 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일단 나는 그 증상부터가 일반 비염환자들이 겪는 일련의 증상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게끔 하는 내 몸의 적정온도인 약 36.5~36.6도 사이를 벗어나는 환경에 노출되면 어김없이 몸이 시리고 아팠다. 그건 마치 살갗에 대패를 대고 살갗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듯한 느낌의 깊고 날카로운 통증과 같았다.

그렇게 전신의 근육통이 시작되면, 이어서 머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강력한 두통이 연이어 찾아온다. 물론 이런 증상들 이전에 코막힘, 재채기가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그렇다 보니 보통 5월만 되어도 에어컨을 틀고, 11월만 되어도 히타를 트는 상황에서 나는 거의 사시사철 동안을 내내 어떻게든 외부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내 몸을 사수해야만 한다는 절체절명의 지령을 스스로에게 내릴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통증이 시작되고, 그 통증은 족히 며칠간은 나를 시체처럼 꼼짝 못 하게 만들 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어딘가에서 무언가의 순서를 기다린다거나 한 장소에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될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민폐를 무릅쓰고 그 공간에 있는 담당자로 보이는 분에게 가서 조심스레 이렇게 부탁해야만 한다.


저기, 죄송한데 저 에어컨(히타) 좀 약하게 조절해 주시면 안 될까요?


생각 같아선 아예 '저기 저 흉물스러운 살인 무기 좀 당장 눈 앞에서 없애 뜨려 주시면 안 될까요? 저게 자꾸 절 숨 막히게 만들어요.'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있을 수도 ,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에 나는 내 양심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민폐를 동반하는 범위 안에서 나를 괴롭히는 현대 문물의 무기와 싸워나가고 있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겪어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병이 되었지만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이라고 불리는 병이 있다. 한 남자 탤런트도 한 때 이병을 앓았다고 하여 이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병이 되었는데 이는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과 이와 동반된 자율신경계 기능 이상, 피부 변화, 기능성 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역시 겉으로는 나처럼 멀쩡해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여성들이 출산할 때 겪는 산통과도 맞먹는 틍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그야말로 소리 없는 살인자와도 같은 병이라 할 수 있다. 이 분들 중에도 나처럼 바람만 불어도 통각과민과 같은 이상감각이나, 피부온도의 변화, 발한이상을 겪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CRPS 환자 중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90%에 달한다. (출처: 이음 앤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나를 진단한 의사들은 그 정도까지의 병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다면 정신과 진료를 한번 받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본인들은 더 이상 내게 해줄 게 없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처음엔 정신과를 방문한다는 게 생각만큼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다. (당시가 10여 년 전이니 그때만 해도 정신과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처럼 대중화되거나 그 문턱이 낮았던 때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건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다는 그냥 왠지 여기까지 가면 정말 모든 게 끝나버리는 것만 같고,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정신줄을 정말 놓아버릴 것 같은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나를 괴롭히는 병에 대한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오래 주저하던 끝에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상태를 약 10여 분간 듣던 한 대학병원의 정신과 교수가 내게 한 말은 이 단 한마디였다.


그래서 나한테 뭘 바라는 건가요? 내가 뭘 고쳐주길 원하는 거죠? 그냥 체력을 기르세요. 체력을. 이게 정신과에 올 만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이것과 관련해 병원을 전전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게 자체적으로 진단명을 내려주었다.


'나는 그저 조금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일 뿐인 거야...'


이것이 10년 전의 일이니,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도, 그리고 나 자신의 시각으로도, 나는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유별난', '이상한', 또는 '예민한'사람으로 그 시간을 살아왔던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을 두고 누구도 쉽게 명확한 답을 못 내리듯이 이런 신체적 변화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또는 어릴 적부터 '민감한'(여기서는 사람들에게 '예민한'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더 긍정적인 느낌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내 정서적 감수성이 먼저 작동한 것인지, 나는 심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민감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

'민감하다'라는 말은 '예민하다'라는 말의 어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조금은 긍정적 의미의 '감수성 측면의 우월성 또는 진보성'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예술가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사회와 시대에 대해 그 특유의 '민감성'을 어떠한 작품이나 행위로 승화해내는 이들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세상을 대하는 그들 각자만의 '민감성'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예술은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내 '예민함'이 지금은 비록 나를 사회에서 바라보는 정상인의 범주에서 밀어놓았을지언정, 한때 나는 '민감함'이라고 믿고 싶은 내 남다른 예민함을 내게 주어진 숙명이자 선물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다.


사춘기 시절,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느라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던 엄마를 기다리느라 어린 나는 늘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그런 내게 매일 밤이면 찾아드는 공포의 대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집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 발걸음 소리였다. 당시 복도식 아파트였던 우리 집은 우리 집을 왼쪽으로는 한 가구가, 그 오른쪽으로는 세 가구가 살았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는 자정이 넘어서 귀가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의미 없이 집 앞을 스쳐가는 사람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의, 특히 남자 발걸음으로 추정되는 묵직한 구두 소리만 들여온다고 하면 나의 온 신경세포는 그쪽을 향해 꼿꼿이 곤두세워져 있었고, 나는 그 소리가 우리 집 현관문 밖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온몸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혼비백산 지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보다 더 어린 시절 겪어야만 했던 가정불화가 만들어 낸 트라우마에 의한 불안장애라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공포와 불안이 만들어낸 표상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내게 각인되어 나를 끈질기게도 괴롭혀왔다. (출처:rama)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그 소리를 향한 나의 강박적 공포가 머릿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의 '불안함'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고통'에 대해서 그것을 글로 하나하나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그때부터 나는 '글'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글'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모든 가식과 위선을 떨쳐낸 채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친구로 남아있다.

마치 첫사랑이라도 앓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글'과 사랑에 빠졌고, 나를 이렇게 글이라는 세상에 허우적대게 만든 것을 어찌 보면 내 '예민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외롭고, 무엇에도 자신감 없었던 한 소녀는 막연하게나마 처음으로 '작가'라는 꿈을 품게 되었고, 조금은 많이 돌아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니 나를 이렇게 죽게도, 살게도 만드는 이 지극한 '예민함'을 두고 나는 마냥 증오하거나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살아 숨 쉬는 한 이 녀석을 나와 평생 함께 해야 할 친구라 여기며 이것을 잘 달래서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예민함이 아닌, 나를 살려낼, 여기에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본다면 나와 같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긍정의 민감함'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수밖에는.

그래서 난 오늘도 여전히 지극히 예민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이것이 누군가를 살릴 '세상을 향한 민감함'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keyword
이전 03화#3. 증상 or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