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애착

애착에 관한 고찰

by 꿈꾸는 카프카

'애착'(愛着) : 명사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


'애착'. 내가 평소에 가장 선망하는 것과 동시에 가장 두려워하기도 하는 단어가 바로 이 '애착'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특정한 누군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착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혹은 굳이 사람이 아닐지라도 동물이나 식물, 그밖에 어떤 물건에도 애착을 갖기도 한다.


대학시절. 교육학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한 때 이 '애착'이란 단어에 심히 깊게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심리학이란 수업을 들으며 '애착' 개념과 관련해 봤던 실험 영상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아이가 놀이방 같은 공간 안에서 자신의 엄마와 함께 놀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그 공간 안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때 이 상황에 대처하는 아이의 반응과 태도를 가지고 크게 4가지 유형으로 애착 단계를 논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매리 애인 워스가 말하는 애착 4가지 유형이다.


1. 안정적 애착 : 이 유형의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자유롭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를 한다. 그러다 엄마가 사라지면 잠깐 당황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다시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논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한다.


2. 불안-회피형 애착 : 이 유형의 아이들은 엄마와 놀다가 자리를 비워도 큰 행동적 변화가 없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등장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즉, 낯선 사람, 외부 현상 변화에 감정 변과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손 갈 곳 없다. 순하다. 착하다의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커서도 주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지나치게 가까워 지거나 친밀감을 가지는 것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3. 불안-양가형/저항형 애착 : 이 유형은 엄마가 옆에 있어도 낯선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고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 유형이다. 엄마가 떨어지려고 했을 때에도 울고 떼쓰는 등의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엄마가 놀이방을 나갔을 때에는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울기만 하기도 한다. 이 친구들은 엄마가 돌아와도 달래지지 않고 울고, 밀치고, 소리 지르는 등의 분노를 표출한다. 이 친구들이 크게 되면 타인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려고 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한다고 느끼면 버림받을까 봐 너무나 두려워하게 된다.


4. 혼돈형/혼미형 애착 : 이 유형은 앞선 세 가지와 다른 패턴을 보이는 아이들이다. 아무 목적 없이 놀이방을 배회하기도 하고, 허공을 쳐다보며 멍하게 있기도 한다. 엄마에게 기가도 하고, 회피하기도 하는 위 3가지에 정의되지 않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참고: 고고쌤의 심리로운 놀이터 )


생각해보면 나는 이 중에서 불안-회피형과 불안-양가형 애착을 모두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2가지를 다 지녔다는 것은 겉으로는 불안-회피형처럼 보이지만 실상 내 안의 '나'는 불안-양가형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는데, 7~8살 즈음인가. 엄마가 여느 때처럼 나를 데리고 동네 시장엘 간 적이 있었다. 허기가 졌던 모양인지 나는 엄마에게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장 초입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달라고 했고, 엄마는 크게 선심을 써 내게 김밥 한 줄과 팥죽 한 그릇을 사주었다. 팥죽 한 그릇을 엄마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고대하던 김밥을 먹으려는 순간, 엄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엄마 잠깐 나가서 은행 일 좀 보고 올 테니깐 꼼짝 말고 여기서 김밥 먹고 있어.


나는 순간 엄마에게 '가지 말라고', '김밥 먹고 나도 같이 가면 안될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없이 나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엄마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먹고 싶었던 김밥에는 단 하나도 손을 대지 못했다. 김밥은커녕 내 온갖 신경은 그저 분식집 문을 열고 엄마가 언제 들어오는지에만 온통 쏠려 있었다. 문을 열고 다른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했고, 그 실망은 점차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실제로 엄마가 그때 자리를 비운 시간은 채 30분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내 체감상으로 그 시간은 적어도 그의 몇 곱절은 될 만큼이나 길고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돌아온 엄마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갑게 엄마를 맞이했다. 나는 어렸지만, 엄마에게 엄마가 없이도 하나 겁나는 것 없이 이렇게 의젓하고, 씩씩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대견한 딸로 칭찬받고 싶었다.


왜 김밥을 먹지 않고 그대로 뒀냐는 엄마의 핀잔엔 팥죽을 먹었더니 갑자기 배가 불러 먹을 마음이 사라졌다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비로소 엄마가 내 눈앞에 자리 잡고 앉아서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김밥 하나를 멀쩡히 입 안으로 밀어 넣었던 8살 즈음의 아이.


난 그런 아이였다.

속에서는 어린아이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강한 분노와 불만이 늘 들끓었지만, 겉으로는 특히, 엄마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그런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과의 불화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 폭언에 지쳐있는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자 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jpeg 부모의 작은 불화 속에도 아이들의 가슴은 멍들어간다. 그리고 그 상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지배해 나간다.(출쳐: WJ의 소소한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한 아이의 가슴속에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어른 능구렁이가 떡하니 들어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어린 시절의 내(아마도 어렴풋이 5~6살 즈음이 아닐까 싶다)가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느껴 본 최초의 감정이 '슬픔', 혹은 '두려움'이었던 것을 보면 나는 진작부터 내가 살아남기에 만만치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내가 중학생 때쯤이었던가. 엄마가 내가 아주 갓난아기였을 무렵, 내가 얼마나 온순하고 착한 아기였는지에 대해 내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주던 적이 있었다.


어쩜 엄마 없이도 애가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는지. 그게 그렇게 고맙고 기특할 수가 없었단 말이야. 근데 그 망할 놈의 주인집 여편네가 꼭 마지막 밤 즈음에는 똥기저귀를 안 갈아줬는 모양인지 엄마가 일 끝나고 너 찾아서 들여다볼 때쯤이면 꼭 엉덩이가 똥 기저귀에 범벅이 되어 있었지 뭐야.. 나쁜 여편네. 공짜도 아니고 돈도 몇 푼 받아먹고 어찌 애한테 그럴 수가 있어. 내 그때 널 붙잡고 얼마나 울었던지... 그래도 뭐 어쩔 도리가 있나. 돈은 벌어야지. 일은 나가야지. 애 맡길 데라고는 그 주인댁밖에 없는데... 내가 그렇게 널 키웠다.


이 이야기는 그 후에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엄마가 술에만 취했다 하면 내게 고정 레퍼토리로 들려줬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엄만 후에 조금 더 세월이 지나 그때는 그 이야기를 무슨 대견한 아기 영웅담처럼 쉽게 쉽게 입밖에 내뱉었지만 난 엄마로부터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로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으로 운다. 그저 그때의 그 아이가 가엽고 안쓰러워서 마음으로나마 그 아기와 함께 울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여러 행선지들을 거치면서, 나는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종 왜 당당 하지를 못하고 자신감이 없었는지에 대해 이제는 조금씩 이해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내 안에 내재한 뭔지 모를 그 불안함과 공포심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내일모레면 곧 불혹을 앞둔 그야말로 정말 '어른'의 나이가 다 되어가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그때 누군가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고, 항상 주변 환경으로부터 오는 안정감을 갈구했다.

아동.jpeg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지을만한 그 아이의 성격, 태도 등은 대개 6세 전후로 대부분이 형성된다. (출처:다은재가노인복지센터)


지금도 아동학대나 방임, 가정폭력 속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부모라 부를 수 없는 자들이 어린 생명들에게 자신의 자식이란 미명 하에 말로 못할 상처로 한 인격체의 삶을 마구 짓밟고 훼손하는 행위들이 서슴지 않고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어른으로서, 그 아이들에게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아이들을 내 품에 꼬옥 안고 한없이 보듬어 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널 상처 준 그들 대신 내가 사과해도 될까? 지금의 너에게, 그때의 나에게, 좀 더 일찍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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