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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Oct 28. 2023

그곳은 가을, 이곳은 여름

흙냄새 가득한 여름

* 큼큼하다는 냄새를 맡는 모양새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한 쿰쿰하다는 곰팡이나 먼지 같은 냄새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표현하는 큼큼하다는 표현은 곰팡이 같은 쿰쿰한 정도는 아니면서도 적당한 흙냄새를 포함하고 자꾸 큼큼 맡고 싶게 되는 저만의 향수가 담긴 향기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요 며칠 갑작스레 사막에 비가 내렸다. 새벽 일찍 기상해서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사막 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불그스름한 태양빛이 조금씩 여명에 스미고 적도 가까운 곳에 비추는 강렬한 태양빛으로 벌써 더위가 느껴지는 것이 이곳 사막에서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왠지 달랐다. 태양빛이 하늘에 스미지 못했다. 구름이 가득 껴서 황톳빛 대신 회색빛 가득한 사막이었고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다 짜낸 걸레를 누군가 또 한 번 쥐어짜듯 그렇게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침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빗방울이 더욱 거세지더니 이내 세찬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여기저기 물이 고였고, 고운 모래는 진흙이 되었다. 하지만 비는 오래가지 않았다. 잔뜩 흐린 먹구름 사이를 어떻게든 비집고 빠져나온 해는 기어코 두둥실 떠올라 다시금 이곳이 사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고 빠르게 비의 흔적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해의 처절한 분투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뜨거운 더위는 한풀 꺾였다. 사막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찬 공기가 섞여 있었다. 뜨거운 햇빛, 내린 비가 증발하며 만들어내는 습기, 그 가운데 불어오는 찬 공기는 문득 나에게 한국에서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반도의 여름. 그곳의 여름은 나에게 강렬한 두 가지 감각을 선사했다. 하나는 뜨거운 햇볕이었고 하나는 큼큼한 흙냄새였다. 여름이니 강렬한 햇빛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큼큼한 흙냄새는 나에게 기억된 여름의 특별함이다. 비는 봄에도 오고 가을에도 온다. 제주는 겨울에도 눈 대신 비가 많이 오곤 한다. 하지만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의 비는 쓸쓸한 느낌이 가득하다. 감각이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비다. 감각이라는 단어에 느낌이 포함되어 있으나 주관적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과 비교하게 되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감각기관에 직접적인 자극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은 오직 여름비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큼큼한 흙냄새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소나기 이후 바로 내리쬐는 햇빛에 내린 비가 빠르게 증발하며 만들어내는 습기 때문일 것이다.


사막에서 비가 온 후 길을 걷다 크게 들이마신 숨에서 우연히 고향이 떠올랐다. 우리 집이 떠올랐고 가족이 떠올랐다. 한국은 가을의 문턱 아니 이제 그것을 넘어 거의 겨울 앞에 다가왔다고 한다. 트윈데믹이 몸살이다. 우리 엄마도 얼마 전 코로나에 또 걸리셨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며 집에 있기 갑갑하다고 나가서 풀을 뽑곤 산책을 하시곤 기어코 오늘은 오름에 오르셨다. 그것도 오름을 두 개나 오르셨다. 오름에서 본 풍경 사진을 받아보니 제주는 가을이 한창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비로소 우리나라의 여름 한가운데 선 느낌을 받고 있다. 시간도 여기는 5시간이 느리다. 같은 지구에 살고 있지만 조금 더디게 뒤쫓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러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겨울 한복판일 텐데 과연 날씨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여기는 한국이 가을, 겨울이 다가와서야 우리나라의 여름을 느낀다. 다행이기도 하다. 이제서라도 우리나라의 여름을 그 향수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감사한 일이다. 나는 한국의 여름을 좋아한다. 이곳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과 확연이 달랐기에 내가 좋아하는 여름을 느끼지 못하고 2023년이 떠나가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곳에서 그 느낌을 묘하게나마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내가 한국의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큼큼한 흙냄새인데 이곳에서 그 향기를 맡을 줄이야. 큼큼한 흙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여러 심상이 떠오른다. 내 또래 친구들이라면 공감할 심상 중 하나는 황순원의 소나기가 아닐까. 소나기를 읽고 있노라면 내내 큼큼한 흙냄새가 떠오른다. 잔망스러운 계집아이가 입고 있던 옷에서도 큼큼한 흙냄새가 났으리라.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 8개월여의 사막 생활은 지구 어느 곳에서나 사람 사는 곳과 똑같이 희로애락이 있었다. 그러나 늘상 덥기만 한 기후는 계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각과 심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기분이 어떻든 이곳은 늘 똑같이 더웠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3월에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밤낮으로는 추웠다. 그래도 한국이 추울 때 이곳에 왔기 때문에 견딜만했다. 4월 즈음 들어서는 10월이 다가는 이때까지 늘상 한결같이 덥기만 했다.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해가 뜨고 지는 시간과 같은 천문의 시간뿐이었다. 그랬던 사막이 비로소 변화를 보였다. 10월의 끝자락이었다. 이쯤 되니 이제 내가 떠날 때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계절이 주는 감각에 사람 마음이 변하는 한국인다움이 돌아왔구나 싶다. 1년의 절반 이상이 덥기만 한 곳에서 감정의 기복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온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기에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요동치는 감정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구나 싶다. 10월이 다 지난 사막에서 한국의 여름을 느끼며, 가을의 향수가 떠오른다. 내가 한국에 발을 디딜 때 한국은 이미 겨울이겠지만 가을의 문턱에 서있을 때 느껴지는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기쁘다. 큼큼한 흙냄새 덕분에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써 내릴 수 있었으니 우리에게 계절은 늘 좋은 소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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