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미드나잇 인 제주

현실과 환상을 오가고 삶과 일탈을 오가는 경계선에 우리가 있었다.

by 제주 아빠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에서 발췌

제주도가 가진 매력은 여행지와 삶의 터전 그 경계선이 모호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육지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지이지만 제주도민들에게는 삶의 터전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 경계선에 위치한 제주도는 조금 모호한듯한 모습을 갖고 있다. 제주도민들에게도 이곳은 최고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제주도민들은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납득이 갈만하다. 그냥 집 앞에 걸어 나오면 최고의 풍경과 휴식처가 있는데 굳이 다른 마을로 갈 필요도 없거니와 육지로 올라가 여행 가는 것도 이래저래 여건이 쉽지 않다. 섬이 가진 지리적 특성이 주는 이 모호한 경계선이 섬 여행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같은 바위에 서서 각자가 취미로, 생업으로 낚시를 한다. 취미로 낚은 물고기가 오늘 우리 저녁상에 올라가면 생업이 되는 것이고 생업인데 낚지 못해도 그 시간이 즐거웠다면 취미겠다.


예로부터 섬사람들은 거칠다는 평이 있는데 사실 잘 들여다보면 섬사람들은 거칠지 않다. 오히려 여유가 넘치고 낭만이 넘친다. 지중해와 에게해 어딘가에 위치한 섬에 사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영화 '맘마미아'에 나오는 사람들은 풍족하지 못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 삶이 찌든 듯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여유가 넘치고 낭만이 넘친다. 일반적인 여행지에는 삶과 일탈이 조금은 분명한 듯 나눠져 있지만 제주는 삶과 일탈이 팔레트 위 섞인 물감처럼 오묘하게 섞여있다. 완전히 섞어버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섞이지 않은 것도 아닌 하지만 언제든 농도를 오가며 섞일 수 있는.


그래서일까. 제주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웠다. 제주도에서 날 만난 사람들에게 육지에서의 내 모습을 설명하면 다들 믿지 않는 눈치다. 사실 나도 못 믿겠다. 섬에 사는 나와 육지에 사는 나는 분명 다른 존재 같다. 아무래도 육지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섬에서는 달랐다. 사람들과 여유 넘치는 삶을 그린 영화 몇 편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비포 미드나잇', 앞서 언급한 '맘마미아', 흑백 영화계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휴일' 등. 여기에 더해 니콜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빼놓을 수 없겠다.(영화로도 촬영되었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 3부작.(이미지 출처 : 구글)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이기도 했고 좋아하던 책이기도 했고 내 삶에 영향을 줬던 많은 조각들 중 하나이기도 했던 이런 것들이 내게는 그저 스크린 속에 있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 점 역시 나에게 제주도가 갖는 그 모호한 매력, 현실과 환상이 오가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흥분감,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진짜 내 앞에 세 명의 판타지속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 세명의 등장은 육아휴직과 쉼이라고 하는 다소 평범하고 무료할 수 있는 제주도에서의 삶에 백미를 장식할 발사믹 소스 같은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의 자유로움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며, 실제 그렇게 행동하고 다니는, 괴짜 같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주인공이 깨닫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순서로 보자면 데미안을 먼저 읽고 조르바를 나중에 읽었다. 이러한 순서로 책을 읽은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으리라. 사회 초년생이 싱클레어의 고민을 해봐야 한다면 이제는 조금 더 삶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나이에 조르바를 봤으니 그때의 심각함이 이제는 삶의 달관으로 승화된다고 할 수 있겠다. 결코 싱클레어의 고민 없이는 조르바의 삶을 살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싱클레어도 조르바를 읽어본다면 청년기 이후의 그의 삶이 달라졌으리라. '제주도민 조르바'가 있다면 우리가 섭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코지타운 김동섭 사장님이다. 이분의 삶은 그냥 조르바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갈음될듯하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배우 앤서니 퀸이 역한 알렉시스 조르바. 외모까지도 섭사장님을 닮았다고 느끼면 너무 과한 망상일까?(이미지 출처 : 구글)


직장에서 안식월을 받아 한달살이를 하고 있던 종운 형님은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했다. 아니 정확히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랜 직장 생활에 지쳐있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이 가진 시대적 애환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고자 꿈꾸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완벽한 자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 달을 같이 지내는 동안 거의 매일 막걸리를 마시며 자연인으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도는 자연인으로의 삶에 있어 꽤나 괜찮은 환경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로빈슨 크루소나 척 놀랜드처럼 만약 우리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면 적어도 제주도 정도의 환경이면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이 형님은 안 그래도 내 안에서 불타고 있던 이 모험과 같은 삶에 대한 불을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마침 종운 형님은 당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안식월을 맞이해서 길러본 것이라고. 형님이 내 맘에 불을 지피는 이미지가 딱 이런 느낌.(이미지 출처 : 구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닮은 정민 형님을 알게 됐다. 수염 가득한 외모도 풍채도 삶도 닮았다 느꼈다. 첫 만남은 분위기 좋은 저녁 무렵 앞마당에서 와인을 꺼내놓고 있는 형님한테 섭사장님이랑 막걸리 한잔 하자며 부른 것이었다. 고급져 보이는 와인을 드시려는 형님에게 싼티나는 막걸리를 대접하려 했는데 형님은 흔쾌히 합석하셨다. 별 볼 일 없는 안주였지만 잠시 후 합류한 종운 형님까지 모인 그 날이 우리 완전체의 첫 시작이었다. 나중엔 형수님들이 고급진 안주까지 가져다주셔서 꽤나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완전한 자유인을 꿈꾸는 종운 형님과는 다르게 정민 형님은 어느 정도 삶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경제적 자유를 꿈꿨다. 게다가 꽤나 오래도록 그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준비하셨던 터라 그런 지식에도 해박했고 경험도 많아 듣고 있으니 이미 그 삶이 현실이 된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정민 형님의 첫 이미지는 이런 모습이었다. 헤밍웨이와 숀 코너리, 러셀 크로우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하면서 중저음의 목소리는 숀 코너리와 가장 흡사했던 형님.(이미지 출처 : 구글)


조르바, 척 놀랜드, 헤밍웨이가 모인 밤이라. 여기서의 나는 조르바가 되고 싶은 싱클레어 정도라고 하겠다. 제주도에 온 이후로 끊임없이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해 고민하고 기도했다. 다 내려놓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더 준비해서 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려놓기엔 명분이 부족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싫어하지도 않았고 그게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받을 정도도 아니었다. 더 준비해서 오기에는 지금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형님들과 섭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막걸리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던 것은 머릿속에 쏟아지는 폭포수들에 그 알코올이 다 쓸려 내려가서는 아니었을까.


정민 형님은 코지타운에 오래 머무르시진 않았다. 협재 쪽으로 이동하셔야 했기에 만남은 짧았다. 그런데 헤어짐도 짧았다. 협재 쪽으로 이동하셨던 정민 형님은 코지타운과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 협재에서의 휴가가 너무 지루하다고 다시 돌아왔다. 한술 더 떠 사장님은 빈집을 그냥 내주셨다. 우리 완전체가 다시 모인 것은 6월 25일 섭사장님의 환갑날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환갑잔치를 준비하며 이래 저래 맛있는 음식을 내주셨는데 잠시 후에 사라진 사장님은 우리가 다 모이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완전히 만취가 되어 나타나셨다. 본인 말로는 술로 자기를 이기려는 젊은 중국인들을 혼내주고 왔다고 한다. 조르바가 따로 없다. 코지타운 객들로 모인 환갑잔치를 보며 사람들이 이렇게도 모일 수 있구나 참으로 재밌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환갑을 맞은 경자년생 김동섭 사장님. 갑경충이라며 갑자년생인 나랑 안 맞다고 투덜대지만 나는 조르바 같은 사장님이 좋다. 초는 안 불고 딴 소리만 하시다가 잔소리 들었다.


아이들은 편지를 써왔고 형님들도 소소한 선물들을 준비했다. 노래방 기계를 구비한 사장님댁 거실에서 아이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만취하신 사장님 만큼이나 정신없는 환갑잔치가 계속됐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내 정신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인간에 대해 그리고 있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던 나였다. 사람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였다. 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해서 자리를 피해왔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내가 선명하게 느끼는 그것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다는 생각이었다. 이 세 명의 형님들(섭사장님은 두띠 동갑 형님)을 앞에 두고 부쩍 말수가 많아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누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못 만났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마음껏 웃었고, 마음껏 노래 불렀고, 마음껏 먹고, 마셨다. 아이들도 부모들의 웃음 속에 질세라 더욱 웃고 노래 불렀다. 사실 환갑잔치에 사장님 가족분들은 누구도 오지 않으셨다. 어찌 보면 쓸쓸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날 사장님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가족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도 이웃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봤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 한 가지를 이웃사랑 실천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웃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그 순간 내가 느낀 이웃은 인류 그 자체였다. 가족이라고 구분하고, 객이라고 구분하고, 타인이라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웃사랑에 실패한 것이다. 46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문화를 향유하며, 미래를 꿈꾸는 이 존재들 모두가 이웃이다. 이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본인은 아이들을 싫어한다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옥수수, 소시지를 매번 잔치 때 빼먹지 않고 사다주시는 사장님. 참으로 이웃사랑 실천하고 계신다.


다음날 사장님은 전날의 기억 상당수를 잃었다. 그건 사장님의 유산이다. 객들이었던 우리는 그 날 많은 것들을 얻었다. 본인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나눠준 유산. 이웃의 소중함. 그리고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정민 형님과의 이별은 또 반복되었지만 나는 이제 알았다. 너무나 소중한 인연을 얻었으며, 이 인연은 언젠가 다시 이곳 제주 땅에서 이어지리라. 헤어짐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또다시 만날 것을 분명히 안 이상 질척거릴 이유가 없었다. 헤어짐에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미래 지향적 공동체에 심도깊은 대화를 나눴었기에 우리는 제주에서 그것을 구현하며, 재회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일상과 일탈의 주변에 놓인 제주도에서의 삶은 아름답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여유가 넘친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 줄지 알며, 타인의 꿈을 응원해줄지 안다. 경쟁이 필요 없는 이곳에서 객들은 사실 진정한 주인으로 살고 있고, 주인은 언제든 객이 될 여유가 있다. 각자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각자가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조연과 스탭이 없는 무대가 어딨겟으며, 향신료가 안 들어간 산해진미가 어딨겠는가. 만남을 통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게 인간인 듯하다. 아무리 혼자 독방에 앉아 고독을 씹으며 사색에 잠긴다고 해도 빛으로 나와 그걸 나눌 여유가 없다면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바비큐를 하느라 밤마다 자욱한 연기가 마당을 덮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이곳에 끊이질 않는다. 그건 사람 냄새. 사람 사는 냄새.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냄새. 이 향기에 취해 제주도에서의 삶이 더욱 풍요롭기 그지없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먹지 못할 동물들을 주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먹으라고 했는데 왜 네가 그것을 정결치 못하다고 하느냐고 한 소리 하셨다. 바울은 로마 사람이었다.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는 유대인의 법도로 로마인에게 전할 때는 로마인의 법도로 전했다. 그것은 결코 그들이 우유부단해서가 아니었다. 이웃사랑의 본질은 바로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 모두가 옳다고 할 수 있는 경계에 서있다. 사람을 더 알고 싶다. 사람이 좋다. 그리고 제주가 좋다.


성산일출봉 아래 해녀의 집 앞바다. 푸른 하늘은 현실이고 바다에 비친 하늘은 환상이겠지만 그게 뒤집혀있다고 어색할 것은 없겠다. 우리는 모두 그 경계선 어딘가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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