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섬나라 제주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 산다는 것.

by 제주 아빠


제주도는 큰 섬이다. 서울 면적의 3배에 달하는 큰 섬이기 때문에 섬의 내륙에 있다면 여기가 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법도 한데 제주도는 화산섬이라는 특이한 지형 조건 때문에 섬의 어느 곳에 있어도 웬만하면 바다가 보인다. 게다가 내륙은 다 산악지형이라 사람들이 거주하기 제한되다 보니 대다수가 해안에 살고 있어 더욱 그렇다. 나에게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라고 묻는 것은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 당연히 다 좋지. 우리나라에 그 둘이 모두 있어 좋은 곳을 고른다면 외설악에 위치한 강릉, 속초 같은 강원도의 도시들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강원도보단 제주도를 택했다. 산보다는 바다를 약간 더 좋아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의견이 십분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주도에 왔으니 바다를 만끽해야겠지.


바다를 만끽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가지가지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바다를 좋아하는 것 같다. 바다가 왜 좋을까? 호젓하게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쥐 죽은 듯 조용한 바람 없는 제주의 여름바다를 보며 생각에 빠져본다.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 바닷가에 살아도 바다는 적응이 안된다. 매일이 다르다. 끝이 없어 보이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자유를 꿈꾸는 것. 바다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주는 심상들. 특히나 여름엔 시원할 것이라는 감각의 자극 등 저마다 다른 이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바다를 좋아해 왔다. 동경해왔고 터 잡아 함께 살아왔다. 그렇게 축적된 인간의 문명에 항상 바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더욱이 도전과 새로운 시작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으니 여러모로 우리를 감상에 젖게 만들 법도 하다.


DJI_0849.jpg 표선해수욕장은 해변이 어마어마하게 넓다. 한창 놀다 보면 바다가 너무 멀어지거나 내가 있는 자리가 바닷물로 차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주로 옆면을 공략한다.


아이들은 바다를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은 인류 역사를 알지 못하지만 바다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바다는 어떤 것일까? 차라리 그걸 연구해보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바다를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물안에 잠겨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어머니의 뱃속에 체온과 비슷한 따뜻한 양수 안에 침잠되어 있던 10개월의 시간들을 몸이 기억하는 것일까. 그저 구명조끼에 의지한 채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물어보면 그냥 좋다고 할 뿐이다. (가끔 이 녀석에게 엉뚱하게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기억나?라고 물으면 기억난다고 대답한다.) 큰아이는 물에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고 논다. 같이 놀아주려면 꽤나 체력이 요구된다. 나가지도 않고 노는 게 참 대단하다. 그에 반해 작은 아이는 춥다며 오래 있진 못한다. 빼빼 마른 작은 아이는 어릴 적 갈비뼈가 다 튀어나와 배트맨 놀이를 하며 계곡에서 놀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부모 마음이 다 그렇듯 좀 크면 좋겠는데. 잘 먹고 살 좀 붙고. 포동포동. 젖살이 빠질까 봐 아쉽기만 하다.


바다는 또 모래를 품고 있다. 모래의 서그적거리는 느낌이 불편하다고 느낀 순간 내가 어른이 됐구나 느꼈다. 신나게 밖에서 뛰어놀고 특히 백사장에서 뛰어놀고 돌아온 아이의 신발을 털어줄 때만 신발 한가득 모래를 주어 담아 놓고도 그렇게 신나게 놀았나 싶어 놀랄 때가 있다. 어릴 때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나도 그렇게 놀았었지. 하지만 불편한지 몰랐다. 신발이 넉넉하게 커서 그런 것도 아니고 양말을 신고 있어서 모래가 직접 닿지 않아서도 아니다. 노는데 더 집중되다 보니 발끝의 감각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래가 조금만 들어가도 불편하다. 운동장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등산을 가도 신발끈을 꽉 조여 모래, 흙, 나뭇가지들이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전면 차단한다. 애초에 운동화를 신었다면 백사장은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아 졌다.


DJI_0865.jpg 산책 삼아 간 바닷가에도 아이들은 어김없이 신발을 벗어던지고 온데 모래를 잔뜩 묻혀온다. 터느라 바쁜 부모지만 그게 꼭 싫지만은 않다.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일단 놀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덕지덕지 모래가 붙은 채 돌아오는 건 또 별로 안 좋은가 보다. 신나게 놀고 나서 모래를 털고 집에 돌아올 때가 되면 어김없이 짜증을 부리곤 한다. 몇 번 겪다 보니 백사장이 있는 바닷가에 갈 때 꼭 챙겨가는 세트가 있다. 수건이며 돗자리, 깨끗한 물, 여벌의 옷 등. 집 앞 바닷가는 다행히 모래사장이 아닌 바위 해변이기 때문에 놀고 돌아올 때 깔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더 많이 가고 싶어 하는 백사장이 있는 바닷가인 표선해수욕장, 소금막 해변을 가려면 손이 꽤나 많이 간다. 육아빠의 필수템. 게다가 바다에 나갈 때 오늘은 물에 안 들어가는 날이야. 산책만 할 거라고 어르고 달래서 나가지만 아이들은 어김없이 물에 뛰어든다. 애초에 바다에 가면서 마치 아이가 없던 시절 아내랑 손잡고 바닷가를 거닐며 풍경을 유희하던 그 분위기를 기대하고 데려나간 부모 잘못이지.


여름바다는 작렬하는 햇살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이소에서 산 5천 원짜리 커다란 골프우산이 꽤나 쓸모 있다. 선물로 받은 그늘막 텐트도 한몫한다. 엄마는 아이들이 시커멓게 타서 까무잡잡해지는 게 걱정되어 연신 선크림을 발라주고 모자를 씌워주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빠는? 아이들이 얼마만큼 시커멓게 될 수 있을까 은근히 궁금하다. 균형 있게 육아하려면 엄마도 아빠도 필요할듯하다. 제주도 해변에서 놀고 있노라면 가끔 이국적인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커다란 대형견과 함께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이 패들보트에 개를 태우고 다닌다던가 아니면 개랑 같이 헤엄을 치는 경우다. 아이들은 그런 모습이 또 재밌고 신나서 개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개는 정말 물속에서 개헤엄을 친다. 자못 신기하다. 게다가 꽤나 수영을 잘한다. 꼬르륵 빠지는 경우가 없다.


KakaoTalk_20210109_154138460.jpg 해수욕장 시즌이 시작된 제주의 바다에는 제주를 닮은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안전요원들께서 순찰을 돌고 계신다.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안전요원이라고 한다.


4명의 가족이 꿈꾸는 제주생활에서 여름바다는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더 좋다. 누구 한 명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나머지 셋이 양보할 필요도 없고 바다를 모두 좋아하기에 딱히 주섬주섬 챙겨 나와야 하는 수고를 불평하며 견뎌야 할 일도 없다. 일단 나와서 엄마는 낚시의자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태닝을 즐기거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고 큰아이는 해질 때까지 물속에서 안 나올 것이기 때문에 분홍색과 하늘색의 수영모자, 땡땡이 수영복이 시야에서만 보이면 문제없다. 작은 아이가 이래저래 손이 가곤 하지만 마침 다른 이웃이 떠나며 주고 간 모래놀이 세트는 상상력 가득한 6살짜리 꼬마 아이의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엄마도 그 정도면 만족한 듯 아이와 잘 놀아준다.


아빠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는 스펙트럼 넓은 놀이를 한다. 수영도하고, 바닷속에 몸을 담근 채 얼굴만 내놓고 시커멓게 태우기도 하고, 물고기나 게를 잡기도 하고, 문어를 잡겠다고 쫓아다니기도 한다. 드론을 날리며 이렇게 평화로운 한낮의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기도 한다. 뭘 해도 잘 놀기 때문에 나 역시 즐겁다. 한여름의 제주 바다라니. 그저 신이 날 뿐이다.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그저 이렇게 바다에서 매일매일 신나게 놀기만 하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 해보는 건 어떨까?


가족들과 이야기해본다. 어떻게 여름을 알차게 보낼지. 큰아이의 대답은 뻔하다. 물이면 다 된다. 해가 너무 뜨거워 바닷가에 가지 못할 때도, 해가 져서 바다에서 놀지 못할 때도 물에서 놀고 싶은 큰 아이다. 그러면 간단하다. 수영장을 집에 설치하자! 거기에 더해 서핑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서핑 보드를 사야지! 작은아이는 꽤나 까다롭다. 요구하는 게 많다. 응 그래. ^^ 그냥 신나게 놀아주면 될 것 같다. 미안하지만 거의 누나가 하는 거 따라가게 된다. 작은아이의 설움이다. 엄마도 대찬성. 서핑을 배우고, 집 마당에서 수영하는 날을 꿈 꾼다. 정말 우리가 그런 시간을 보내게 된다니. 당근 마켓 애용자인 아빠는 순식간에 인텍스 수영장을 구한다. 풀세트로 큰 사이즈로 제대로 된 걸로. 엄마는 서핑 교실을 찾아낸다. 9살, 만 7세에 서핑에 도전한다. 내 딸이지만 부럽다.


KakaoTalk_20210109_154407418.jpg 여름 하면 또 소나기다. 가끔 바다에서 놀다 보면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는데 다 젖은 거 그냥 놀아도 춥지도 않고 오히려 시원하니 비 맞으면서 하는 해수욕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여름날 섬나라 제주엔 햇살이 작렬한다. 주변의 바닷물을 다 증발시키고 섬까지도 녹일 작정인가 보다. 바람과 햇님과 나그네 이야기가 떠오른다. 습도는 또 얼마나 높은지. 쾌적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래도 나름 중형 세단인 내 흰색 그랜져는 어느새 바닥은 모래로 가득하고 가죽시트 틈마다 과자며, 모래며, 쓰레기가 가득하다. 바닷가 한두 번 다니고 나면 세차를 해야 하는데 사실 귀찮다. 아무렴. 아이들이 신나게 놀면 됐지. 바닷가를 수도 없이 다녀왔으니 이 차는 속이 썩어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바다가 있어 좋다. 햇살에 적당히 데워진 바닷물은 따뜻하다. 바닷물에 반사된 눈부신 햇살이 섬을 뒤덮어 모든 게 빛나는 섬나라 제주다. 관광지라 낭만도 있다. 코로나도 잊고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에서 쉼을 느낀다. 제주도민으로 철없는 소리 좀 하자면 코로나로 지친 육지 사람들이 제주 와서 힘을 좀 얻고 가면 좋겠다. 이 넓은 해변을 우리 가족만 즐길게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담뿍담뿍 모여도 나쁠 게 없다고 느낀다.


오늘 하루도 여름의 제주를 아침부터 밤까지 만끽한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산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제주도는 넓다. 한라산 백록담을 기준으로 표선의 점대칭에 위치한 애월 정도쯤을 가려면 큰맘 먹고 가야 할 정도다. 그래도 여전히 섬은 섬인지라 어딜 가든 보이는 바다. 해변마다 간직한 다양한 풍경들. 심지어 바다의 색깔마저도 다양해서 이 섬을 둘러보는 일은 즐겁다. 여름날의 하늘을 닮은 파란 하늘을 즐기고 싶다면 대정읍 쪽이 좋은 것 같다. 동요에 나오는 그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고 싶다면 구좌, 종달, 세화나 김녕 해수욕장이 적당한 것 같다. 끝없어 보이는 넓은 백사장이라면 표선해수욕장이 좋을 것이고, 젊음을 만끽하고 싶다면 애월, 이호테우 해변이 좋을 것이다. 섬이 간직한 다양한 바다의 모습에 모이는 사람도 다양하다. 올여름은 참 기대가 된다. 즐겁고 보람찬 여름을 나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열심히 여름 나기 준비를 한다. 땀이 뻘뻘 나는 여름이지만 속옷까지 젖어버린 옷을 입고 있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멈추질 않는 우리 집이다.


KakaoTalk_20210109_155103043.jpg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바다. 하늘을 닮은 바다는 매일 다른 모습이기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특히나 섬나라 제주의 여름 바다는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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