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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ug 22. 2023

코치님, 용산고 농구부 가고 싶다는데요

※ 아이 이름은 '카레', 학교이름은 '포도초등학교'로 각색했으며, 글에 등장하는 학교와 선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 퀴즈 하나-


<문제 1> 아래는 학부모 A와 코치 B의 대화 중 일부이다.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A : 코치님, 카레 용산고 가고 싶대요.

B : 아니, 제가 경복고인데....

A : 아, 영화 <리바인드>에 용산고가 나와서요

B : 거기는 농구 2세들이 많아서...... 그리고 카레는 지원 많이 되는 학교를......


<정답을 고르시오>


1. 코치 B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2. 코치 B는 출신 학교롤 자랑하고 싶다

3. <리바운드>는 용산고 홍보 영화다

4. 학부모 A는 맑은 눈의 광인이다




며칠 전, 영화 <리바운드>를 다섯 번째 정도 보고 있는 카레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카레야, 용산고가 고등학교 중에선 농구 제일 잘하나 봐."

"그래? 그럼 용산고 갈래."

"오, 진짜?"


허웅, 허훈, 그리고 웅이 아버지 허재, 덩크 좋은 인물 천재... 아니 아니, 인물 좋은 덩크 천재 여준석이 용산고 출신이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 걸출한 농구선수 배출한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쉽게 말하는 카레 기세가 대견하기도, 귀엽기도 하여 "용산고등학교 카레 파이팅!" 주먹 쥐고 흔들어주었다. 농구 시작하기 전에는 서울대 간다더니 온갖 좋은 학교에 이름 한 번씩 걸어놓겠네 싶다. 그래도 거길 내가 어떻게 가냐는 속 터지는 소리 하지 않고 내가 가겠노라 천지 모르고 외치는 게 이놈 배짱이다 싶어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는 간만의 이른 퇴근으로 오랜만에 체육관에서 뵌 코치님에게 안부 겸 건넨다는 인사가 '용산고 카레'였던 것이다. 어랏, 그런데 말발 센 코치님이 어쩐지 1초쯤 말문이 막힌 것 같은데? 답지 않게 왜 눈을 피하고 어물쩍대시는 느낌이지?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경복고와 용산고는 라이벌 관계였던 것이다! 그 어떤 의도도 묻지 않은 나의 아찔한 순수함에 코치님은 방어 의지조차 잃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경복곤데..."라는 말을 버리듯 하셨을 리 없다. 이 미묘한 역학도 한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뒤에 이어지던 대화에서 경복고가 한 번 더 나온 뒤에야 "아~ 둘이 경쟁팀인가 봐요?"라는 말로 코치님의 체기를 내려드린 나였다.   


직독직해를 하자면 다음과 같은 대화인 셈이다.


"코치님, 카레 용산고 가고 싶대요."

"아니, 제가 경복고인데...."  "大경복고 앞에서 용산고를 가고 싶다는 재미난 말씀을 하시네요, 하하하! 지금 아드님을 가르치는 코치가 경복고 출신입니다, 어머님?"

"아, 영화 <리바인드>에 용산고가 나와서요"

"거기는 농구 2세들이 많아서...... 그리고 카레는 지원 많이 되는 학교를......" "용산고는 농구 2세들 많아서 빡세요. 괜한 고생 마시고 현재 포도초처럼 농구부 지원금 많이 나오는 학교로 가세요, 어머님?"





대학 농구에서 연고전이 영원한 라이벌이듯, 초중고도 지역 라이벌이 존재한다. 대학농구 명문 두 축이 연세대, 고려대라면, 고교농구 명문 3인방은 경복, 용산, 휘문이다. 경복, 용산, 휘문은 역설적이게도 학력성취도평가도 좋은 학교다. 나홀로 추리를 해보자면, 명문대 진학률과 맞물린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학업성취도가 높은데 운동부 진학률이 떨어질 경우 전체 진학률에 타격을 입으니 말이다. 명문대 진학률에 누를 끼친다면 농구부가 해체될지 모를 일이다.


연고전만큼 유명하고 치열한 이른바 '양배전', '배양전'으로 불리는 양정중/배재중, 양정고/배재고도 전국권 농구부다. 작년 우승팀은 용산고와 경복고 그리고 삼일상고고, 준우승과 4강권 팀은 무룡고와 제물포고, 동아고다. 선수 라인업에 따라 매년 성적이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선배아빠 말씀으로는 대개 격년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하니 올해 우승팀이라고 해서 내년에도 잘하리란 보장은 없는 걸로 보인다. 반대도 마찬가지고.


지역 라이벌에 많이 예민하냐 묻는다면...... 달콤 살벌한 게 다소 있긴 하다. 우선 연습경기는 단 한 번도 같이 한 적 없다. 같은 지역에 있는 학교면 교류도 더 활발하겠거니 했는데 현재로선 서로 닭 보듯 한다는 게 정설이다. 이번 농구대회 토너먼트에서 포도초와 라이벌학교가 같은 그룹에 배정되었는데, 알고 보니 작년에도 같은 그룹이라 토너먼트 경기를 펼쳤단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요~", "저기서도 징글징글하다 하겠네요, 서로서로 징글징글~ㅎㅎ", "끈끈한 무언가가 있네요", "청심환 챙겨가나요?" 단톡방이 들썩거렸다. 알고 보니 작년에 포도초가 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어쩐지, 복수혈전 분위기더라니. '격년 추수설'이 맞는지 올해는 포도초가 큰 차이로 이겨 작년의 치욕을 갚았지만, 조 4위로 탈락한 지역 라이벌 결과에 가재는 게 편인지 다들 착잡해하더라.


하지만 지역에서 신경전을 벌이던 라이벌도 상급 학교로 진학하여 만나면, 어제의 라이벌이 오늘의 동료가 되는 생태계이기도 하다. 물론 같은 팀 안에서도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또 다른 의미의 라이벌이 되지만 말이다. 포도초 코치님이 소개해주는 초, 중, 고, 대, 클럽, 프로 등 코치님들을 뵈면 연대, 고대, 성대, 중대 할 것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는 걸 보면 결국 라이벌이란, 명승부를 만들어주는 좋은 파트너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부록


고등학생 두 아들을 엘리트 농구선수로 둔 블로거 '소머즈여사'의 '지역 라이벌전의 묘미'에서 지역 라이벌 학교 일부를 발췌 해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매산초 VS 벌말초 VS 성남초

성남중 VS 삼일중 VS 호계중

낙생고 VS 삼일상고


인천

송림초 VS 인천안산초

송도중 VS 안남중

송도고 VS 제물포고


충북

청주비봉초 VS 청주중앙초 VS 국원초

충주중 VS 주성중

충주고 VS 청주신흥고


부산

동아중 VS 금명중

부산중앙고 VS 동아고


전북

군산중 VS 전주남중

군산고 VS 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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