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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Jul 21. 2023

상대팀 아이를 재우라고요?

※ 아이 이름은 '카레', 학교이름은 '포도초등학교'로 각색했으며, 글에 등장하는 학교와 선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10대 남자아이 4명이 동시에 우리 집에 온 건 처음이었다. 그중 3명은 2시간 전만 해도 몸싸움을 하고, 질세라 뛰고, 뽈을 던지고, 걷어내며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대팀 선수. 적과의 동침인가? 지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응, 지금 여긴 너네 집, 너는 홈스테이 호스트.


홈스테이. home stay. 음, 연상되는 단어는 해외, 그리고 유학생. 나는 물론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홈스테이 경험은 없었다. 가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접했던 순도 100% 간접경험, 홈스테이. 어떠한 형태로든 홈스테이라는 녀석이 내 인생에 존재할 일은 없었다. 인상 좋은 파란 눈 아주머니를 통해 '뒤늦게 해외 유학길에 나선 한국에서 온 마흔 살 게스트'라고 소개된다거나, "요즘 우리 집에서 지내는 '카자흐'라고 해"라고 친구에게 소개하며 중앙아시아에 부는 한국 유학 열풍에 대해 내가 떠들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홈스테이는 내게 군대와 같았다. 분명 그 개념은 알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할 미지의 영역. 그러나 홈스테이는 내 인생에 머리를 불쑥 디밀었다.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습격당하다시피 겪은 홈스테이 첫 경험은 카레의 첫 전지훈련 경북에서였다.


'유니폼 4벌, 슈팅복 4벌, 농구화는 크로스백에 넣어서. 여벌옷, 속옷, 양말, 칫솔, 치약... 개인 짐은 이름 꼭 쓰기. 복장은 언더아머 하얀색, 하의는 언더아머 검은색, 운동화. 오케이.'


전지훈련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그냥 간다니 가는가 보다, 단톡방에 올라온 준비물을 카레 더플백에 챙겨 넣었다. 빠진 것은 없나 공지사항을 재차 확인하는데 다시 봐도 이문장이 좀 애매하다.


'휴대폰 가져오지 않아요.'


휴대폰을 아예 가지고 가지 않는 건가? 아니면 전원은 끄고 가방 안에 넣으면 되나? 그나저나 왜 가져가면 안 되지? 총무어머님께 물어보니 집에서부터 가지고 오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소식은 카레에게 청천벽력이다. 카레는 전지훈련 출발 3일 전부터 괴로워했다.

 

카레 학교인 포도초등학교는 매주 주말 전지훈련이 있다. 처음 '전지훈련'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디 백사장에서 타이어 매고 달리고 이런 게 떠올랐는데, 전지훈련은 곧 연습경기다. 포도초가 다른 지역 학교로 가기도 하고, 타 학교에서 포도초로 오기도 한다. 연습경기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고 선배 엄마들은 말한다. 전지훈련은 금요일 수업이 끝난 후부터 일정이 시작되어 일요일 점심식사 후 파한다. 2박 3일 동안 최소 4개 경기가 치러진다. 그러니까 일주일 내내 돌아가는 현장이 초등 농구부다.


카레가 경북으로 떠나는 금요일, 나는 제주로 떠났다. 친구들과의 20주년 우정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마침 친구들이 모여있다며 강원도로 날랐다. 세 가족 뿔뿔이 흩어졌지만 잘 지내겠거니. 그날  7시 50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금요일 밤에 전화라니, 매너가 없잖아. 받지 않는다. 한 번 더 전화벨이 울린다. 중요한 일이면 문자 보내겠지. 연달아 받지 않는 전화는 곧 끊겼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어제 그 번호로 또 전화가 걸려온다. 뭐야? 새벽 7신데? 토요일 아침에 전화라니! 이번에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밤 8시 30분, 또 그 번호다! 아니, 급하거나 중요한 일이면 문자를 보내지, 주말에 왜 이렇게 전화를 하지? 목소리 착 깔고 사뭇 불쾌한 느낌을 담아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엄마!"




전화받을 테니까 언제든 전화 달라는 네 번만의 통화가 무색하게 나는 그날 밤, 두 통의 전화를 더 놓쳤다. 숙소 거실에 드러누워 친구들과 시시덕대며 보던 TV를 끄고 방으로 돌아와 통의 부재중을 확인하는 순간 털썩,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어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기 전에 조금 울었다"던 2시간 전 카레의 고백이 나를 자책의 구덩이로 데려갔다. 기꺼이 어둡고 깊은 구덩이에 몸을 던진 내게 제주의 시간은 이제부터 형벌이었다. 받지 않는 전화를 몇 번이고 걸었을 카레.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왠지 힘 빠지게  만드는 메시시를 듣고 종료 버튼을 눌렀을 카레. 그 카레의 마음이 애처롭고 쓸쓸하게 와락 나를 덮친다. 당장 카레에게 달려가고 싶다. 꼭 끌어안고 싶다. 그 아이를 안고 있는 것만이 나의 충만이자 위안이자 안심이자 평온이다.


그러다 덜컥, 이 생활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이런 생활을 지속하는 걸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친구들이 모닥불 피워놓고 와인 잔을 부딪힐 때,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숨죽여 흐느꼈다. 그날 나는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새벽 4시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누굴 닮았는지 카레는 외박을 좋아한다. 호텔도 좋아한다. 엄마, 아빠와 외박 중 기꺼이 외박을 택하는 카레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운건 10년 이래 처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프로외박러 카레를 눈물짓게 한 것은 '홈스테이'였다. 형들과 떨어져 상대팀 집에서 혼자 2박 3일을 지냈다는 걸,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카레를 통해 알았다. 으레 숙소를 잡을 거라고 생각한 엄마로 인해 아이 역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낯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연습경기가 끝난 후 아이는 낯선 집으로 따라갔을 것이고, 낯선 부엌에서 낯선 밥상을 받았을 것이다. 낯선 어른과 낯선 공간에서 아이는 어색함을 넘어 위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몇 번이고 건 그 번호는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낸 상대팀 선수 휴대폰이었다. 몰랐다. 휴대폰을 가지고 가지 않는 전지훈련은 홈스테이가 예정되어 있고, 그 홈스테이는 상대팀 부모가 제공해 주며, 휴대폰을 빌려 안부전화를 걸 수 있기에 전지훈련 기간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한다는 것을.




홈스테이와의 첫 만남이 눈물, 콧물, 빗물인 것은 어쩌면 다행이다. 아이가 낯선 집에서 지낸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진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 주리라.  따스하고 정다운 호스트 아줌마가 되리라. 기특한 다짐을 하늘이 알았는지 내게도 곧 홈스테이 제공 기회가 왔다. 우리 집으로 올 어린양은 바다초등학교 선수 3명이었다.

 

그럼 저는 두 번의 아침식사만
챙기면 되는 거죠?
   

지난 10년 동네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아이 친구를 초대해도 최대 1명, 생일파티며 파자마마티도 치러보지 않은 내가 두 번의 아침식사'만'이라고 묻고 있다. 점심, 저녁까지는 학교에서 먹이니 아침만 수고해 달라는 총무어머님의 말씀에 그 정도는 문제없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어리석은 중생이 먹이고 거둘 아이들은 하루 두 게임을 뛰는 12살, 13살 농구선수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도 모른 채.


첫날 경기를 끝낸 후 우리 집에서 지낼 귀한 손님들을 인계받았다. 물론, 조금 전까지 치고받고 싸우던(?) 상대팀 선수다. 세 명에다가 카레까지 네 명. 자비롭고 자애로운 호스트 아주머니답게 목소리를 두 톤 정도 올리고  손을 흔들며 호들갑스럽게 맞았다.

"어머~~~ 얘들아, 반가워~~~~ 잘 왔어어~~~ "  

"안녕하십니까!"


홈스테이 게스트로도, 호스트로도 초짜인 나와 달리 그들은 프로였다. 처음 본 나와 스스럼없는 대화는 물론, 씻는 순서까지 이미 정하고 온 것이 아닌가? 집에 들어와 뭘 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내게 "어머니,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묻는 그 아이 손에는 이미 갈아입을 옷과 수건이 들려있었다. 이 얼마나 센스 있는 코칭이란 말인가! 그저 나는 욕실로 안내만 해주면 되었다. 그다음 나는 뭘 하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 이거는 어디에 둘까요?" 씻고 나온 아이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땀에 젖은 유니폼과 속옷, 양말 등이 뭉쳐있다.


"어, 빨래!? 아아, 잠시만, 빨래통 만들어줄게!"


빨래통에 쌓여있던 우리 가족 빨래는 아무렇게나 버려버리고 핑크색 빨래바구니를 잽싸게 욕실 앞에 가져다 놓는다. 욕실에서 나오는 아이가 늘어날수록 빨래통 속 빨래도 쌓인다. 초등학교 6학년 왕형아는 자기 빨래 구분이 용이하도록 대형 빨래망까지 챙겨 왔다. 짬바는 무시 못 한다. 이 빨래망은 그때까지도 긴가민가 했던 초보 호스트에게 바로미터 역할도 톡톡히 했다. 아, 빨래를 집에서 해주는 거구나?


경쾌한 미소만 짓고 있는다고 훌륭한 호스트가 되는 건 아니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로 옮기고, 뜨거운 열이 남아있는 마른빨래를 꺼내고, 이건 누구 옷인지 아이들에게 확인을 하고, 우리 아이 속옷 말고는 만져본 적 없는 어색함을 극복하며 조금 더 큰 사이즈인 팬티를 개고, 갠 옷가지는 한 구석에 정리를 하고,  그 위에는 이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밑에는 예민한 아저씨가 사니 쿵쿵대지 말라 주의를 주고, 닌텐도 하자, TV 보자, 실랑이는 아이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고("지금은 닌텐도를 하고, 자기 전 누워서 TV를 보는 게 완벽하지 않을까?"), "9시 30분에 눕자?", "9시 30분이요?", "너네 9시 반에 누워도 수다 떠느라고 10시 넘어서 잘 게 뻔하거든?", "우와, 어머니, 예리하시네요!"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 배는 고프지 않은지, 덥거나 춥지는 않은지 호스트 아주머니 역할은 다채로웠다. 내일 아침은 유부초밥이라는 공지에 유부초밥 좋아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나와도 당황함을 감춘 채, 그럼 유부초밥뿐만 아니라 시리얼, 우유, 빵을 함께 준비할 테니 뷔페식으로 먹으라는 임기응변도 필요했다.




깨우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 있던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오늘 너네 학교는 무슨 색 입는다니? 유니폼을 챙기고, 소파에 조르륵 앉혀 사진을 찍고, 아이들을 태워 학교로 출근. 쿵-쿵- 농구공 튕기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는 체육관 문을 여니, 세 가지 색 유니폼이 뒤섞여 슛을 쏘고, 뺏은 공을 들고 냅다 뛰고, 그 뒤를 쫓아가고, 1대 1 연습하는 선수들 모습이 훅 들어온다. 참 이상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상대팀일 뿐이었는데, 유니폼과 상관없이 마냥 우리 아이들 같다.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 뿐 아니라 모르는 얼굴들도 괜히 반갑다. '우리 애들' 주려고 가지고 온 호두과자 상자를 열고 개수를 세어본다. 서른 개가 조금 넘는다. 아이들은 모두 28명. 옳커니!

골대 앞 단상에 상자를 풀어놓고 외쳤다.

"얘들아, 이리 와서 호두과자 먹어! 하나씩만 먹어야 한다? 두 개 먹으면 안 돼."


한 무리 군중으로 다가왔던 바다초등학교, 구름초등학교 농구부이제는 한 명, 한 명 개별로 다가온다. 나는 이제 인천에서 농구하는 동혁이도 알고, 영재도 알고, 주환이도 알고, 경북에서 농구하는 하율이도, 원빈이도, 현빈이도 안다. 이름은 모르지만 저기 구름초 7번 선수는 내년 장원중학교에 간다지? 바다초 11번 센터가 카레한테 아는 체하네? 둘이 언제 알았대? 코트에서는 승부를 가려야 하는 창과 방패지만 코트 밖을 벗어나면 서로가 뒤엉켜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을 친다.


지금 카레를 막아서며 수비를 펼치는 5학년 선수는 "어머니, 저는 이제 뭘 하면 될까요?" 물으며 호스트로서의 첫 임무를 알려준 아이다. 이 아이는 다 함께 먹은 과일 접시를 먼저 치우기도 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이 선수의 장점이 보인다. 달리기가 빠르고 가볍다. 카레가 공을 뺏기지만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다.


지금 리바운드를 하는 저 6학년 선수는 거실에 뒹구는 스트레칭용 대형 공을 빨리 치우라는 카레를 향한 나의 호통을 방어한 아이다. 제가 먼저 공을 번쩍 들고 카레 방으로 옮겨다 놓아 괜스레 내가 머쓱했다. "고마워." 인사에 "아니에요." 수줍게 웃던 아이가 지금은 가드로 변신해 장거리 슛을 넣는다.  


우리 학교가 이기는 게 중요했던 전날과 다르게 이제는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뛰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딱 우리 선수 인원만큼이었던 내 마음 방 개수가 하룻밤만에 대저택이 되었다. 단 하룻밤의 홈스테이가 내 세계의 지평을 넓혀놓았다. 위 아더 월드다!



세 학교가 함께 한 2박 3일간의 전지훈련이 끝이 났다. 제 덩치만 한 더플백과 백팩을 메고 떠날 채비를 마친 선수단을 향해 우리 학교 부모들이 외친다. "얘들아, 고생했어.", "영광 대회에서 보자." , "다치지 말고." 대형 빨래망을 챙겨 왔던 6학년 형아는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뒷걸음으로 떠난다.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는 넷이서 찍은 6컷짜리 사진이 붙어있다. 마지막 날 아침, 학교로 떠나기 전 셀프 사진관에 들러 알록달록 가발과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들끼리 찍은 사진이다. 인화된 사진에 한 아이가 매직으로 무언가를 쓰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 썼다. 그러고는 이 은 어떻고, 저 은 망했고, 저마다 손에 든 똑같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은 연신 품평회를 해댔다, 학교로 향하는 30분 내내. 학교에 도착해서는 구겨지지 않게 넣은 것을 확인하고 더플팩 사이드 지퍼를 닫았다. 아이들이 매직으로 쓴 글씨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진다.      


 '포도 스테이'




호스트로서 첫 홈스테이를 치르고 느낀 점은,  운동하는 초등학생은 먹보다. 애들 진짜 많이 먹더라며,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더라고 내가 혀를 내두르자, "애들 케어가 문제겠어요, 돈이 문제지."라는 선배엄마 말, 너무 알겠다! 집안살림 다 털리는 한이 있어도 먹여야지, 귀한 자식들인데. 나중엔 눈치껏 아이들이 괜찮다 해도, 어려워말고 먹고 싶은 거 말하라며, 잠들 때까지 배를 채우는 일에는 모두가 특히 진심이다. 낯선 곳에서 배고프면 얼마나 서럽겠나! 우리 포도초 아이들도 홈스테이를 가면 분명 살뜰한 케어를 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침 메뉴 고심하랴, 빨래 돌리랴, 우리 아이들의 성장 뒤에는 홈스테이만의 특별한 서비스가 존재한다!


휴대폰 소지 금지 원칙에는 박수를 보낸다. 휴대폰 있으면 죄다 작은 화면만 들여다보고, 누워서도 휴대폰 보느라 취침이 늦어질 텐데, 휴대폰이 없으니 아이들끼리 보드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더라도 다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너네 휴대폰 없으니 언제든 내 폰 쓰라고 하니 "네" 대답만 잘들하고 아무도 부모님께 전화 거는 이 없다. 심지어 한 명은 상당히 쿨한 어투로 엄마 번호도 모른단다. 아니, 나는 애 전화 못 받은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아픔 딴 어머니들도 겪을깝새 얼른 안부 전하라 해도 영 반응이 신통찮다. 말년 휴가 자주 나가는 병장의 냄새가 풍긴다. 결국 2박 3일 동안, 제 엄마한테 전화한 아이는 딱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첫날 우리 등쌀에 못 이겨 전화한 게 유일한 통화였다.


카레는 이번 주 금요일 또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젠 준비물 정도를 보면 숙박인지, 홈스테이인지 아는 정도가 되었다. 휴대폰을 놓고 떠나는 것에 대해서 카레도 이제 좌절하지 않는다. 알아서 휴대폰 전원을 끄고 충전기 옆에 놔두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내게 당부는 잊지 않는다.


"엄마!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이상한 번호로 전화와도 꼭 받아야 돼."






* 홈스테이는 초등학교 때만 운영하며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홈스테이도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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