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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18. 2019

누군가를 위해 망가져본 적 있나요

'아빠를 가르친 아들의 온기 가득한 말'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느끼지 못하는 걸 일깨워 준다. 반려견을 위해 거침없이 망가지는 아들 모습에서 온기를 느 흐뭇한 날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거니와 오직 마음뿐이다"라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철언을 아들이 알고 있었던 걸까.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반려견 대소변을 치운다. 낮에는 쪼로로 화장실로 가지만 밤에는 무서운지 화장실 앞에다 볼일 보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배변 패드를 깔아 놓는다. 대부분 조준을 잘하는데 가끔 반만 빗나가도 주변이 한강이 된다. 치우면서 습관적으로 무서운 목소리로 꼬미(반려견)에게 잔소리를 한다.


어느 주말 아침, 지뢰밭 된 거실을 치우면서 꼬미를 나무랐다. 꼬미는 눈치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 쳤다. 마침 일어난 열 살 아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불쑥 한마디 했다.


<우리 집 막내 꼬미>


"저 엄청 급해서 바지 내리기도 전에 오줌이 나온 적 있어요. 꼬미도 너무 급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잠깐 멈추더니 "아, 1학년 때는 배가 너무 아파서 옷 내리다가 X도 싼 적 있어요."


웃음이 터졌다. "자랑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생을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아이의 순수마음이 동했다.


6년째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내게는 퇴근할 때 가장 화끈하게 반겨주는 막내딸이다. 아내에게는 손 많이 가는 막내지만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자다. 아이들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꼬미가 있어서 안 무서워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반려동물이 아이들 정서 안정과 발달에 도움된다는 걸 경험으로 배우고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s://raysoda.com/images/103008>

  

반려견 목욕을 마치고 과감한 빗질을 선보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저 파마했을 때 세게 빗으면 머리카락 걸려서 아프던데, 꼬미도 털 꼬불거리는데 그렇게 빗으면 아플 거 같아요"라고 지적했다.


반려견과 함께 살면서 아이들은 누군가의 처지를 이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말에서 낯선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 온기는 아빠가 놓친, 상대의 처지를 생각하는 배려였다. 청소할 생각에 투정하고, 빨리 끝내고 싶어 배려 없는 빗질을 남발했으니까. 아들처럼 온기 어린 생각은 전혀 못했다.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척박한 삶을 살면서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항상 '내가 우선!', '나만 손해 볼 수는 없지!'라는 생각에 뾰족한 눈으로 상대를 주시했다. 분명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런 작은 여유 조차 사치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내가 됐다. 기분이 착잡했다.


아내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않아 다투고, 후배의 상황을 무시하며 상처를 준다. 아이들의 처지를 의심할 때는 없는지, 아이들의 못마땅한 행동에 사연이 서려 있지는 않넉넉한 마음으로 돌아보지 못했다. 누군가를 사심 없이 대한 게 언제인지 어렴풋해 부끄럽기까지 했다.


자기에게 이로울 때만 남에게 친절하고 어질게 대하지 말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한다. 왜냐하면 어진 마음 자체가 나에게 따스한 체온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수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남에게 베푸는 배려와 친절은 결국 자신을 향발산하는 온기다. 쌓이고 쌓이면 나를, 가족을, 세상을 따듯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작은 마음, 적당히 미소 띤 얼굴, 온기 어린 말 한마디만으로도 상대에게 충분한 배려가 전달된다. 돈 한 푼 안 드는 배려를 펑펑 쓰면,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따듯해질 수 있다는 걸 순수한 아들에게 배웠다.


배변 패드가 작아서 그런가 싶어 대형견 패드로 바꿨다. 더 이상 소변이 밖으로 넘치지 않았다. 역시 내 배려가 부족했던 거 같다.


". 아들. 아빠는 아직도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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