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목적지는 2층 검진동. 동승한 아내의 머리는 짧은 스포츠머리다.
"의사가 나한테 잘 참았데, 나 이런 건 잘 하자나..."라고 말끝을 흐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당황한남편은 "아니야, 당신 잘할 수 있어.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라며 아내 등을 토닥였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은 국립암센터였다. 연말이 다가와 급한 마음으로 날짜와 장소를 맞추다 보니 떠올리기도 싫은 '암'이라는 단어와 정면으로 다시 마주했다.
지하 1층에서 고작 두 층 올라가는 동안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빠졌던 환자의 머리가 다시 자라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울먹임 속에 담긴 당사자와 가족 마음에 내 마음이 잠시 들어간 기분을 느꼈다.
항암치료를 받고 다 빠졌던 머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 때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머리라도 다 자라야 친구들이라도 만날 텐데...'라던 엄마 목소리는 부질없는 메아리로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아픈 사람과 가족을 보면 엄마가 떠올라 코끝이 찡하다.
머리가 다 빠지고 다시 자라기까지의 시간은 본인과 가족에게 지옥 같은 순간이다. 하지만 희망이 다시 자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기함하고 좌절하고 수술을 결심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까지 품었을 원망과 기대, 희망과 절망. 내가 겪은 모든 일이 순식간에 머리를 꽉 채웠다.
항암치료 시작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엄마 머리는 만질 때마다 한 움큼씩 빠졌다. 엄마 혼자 감당한 일이라 누구도 알지도 보지도 못했다. 한 여름에 갑자기 머리에 두른 두건을 보고 엄마 머리카락이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머물 때 노크 없이 방 문을 열었다가 엄마의 맨머리를 마주한 적 있다. 믿기지도 잊을 수도 없는 장면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제도 못 느꼈는데, 오늘 머리 빗질하는데 한 움큼씩 세 번... 만질 때마다 우수 수다. 각오야 한 바지만 맥이 풀린다."
엄마가 남기고 떠난 짧은 일기를 통해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 엄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힘든 순간을 홀로 감내했다. 힘든 내색, 아픈 내색도 늘 최소화했고 항상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던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가족에게 의사에게 간호사에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정말 괜찮은 게 아니었을 텐데, 엘리베이터에 동승했던 가족처럼 힘내라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미루고 또 미뤘다. 희망을 담은 말로 위로하며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게 늘 아쉽고 속상하다. 숙명을 받아들이 듯 엄마를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미안하고 안타깝고 아쉽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한 환자와 가족도 수개월 동안 마음고생하면서 넘치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라는 머리를 보며 희망을 품었을 거라고 믿는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맨머리로 다니던 분, 다시 마주할 일은 없겠지만, 부디 건강하고 평범한 일상과 따듯한 웃음을 되찾길 바라본다.
약 40여분 간 형식적인 건강 검진을 받았다. 대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검진 시간은 약 5분 정도 될까. 건강을 염려한 검진인지,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검진인지 모를 시간.
검진 전 설문조사에서 일주일에 약 25분 정도 운동을 한다고 적었고, 의사는 "건강을 위해서는 일주일에 150분 이상의 운동을 추천합니다. 시간이 되면 근력 운동도 하시고."라고 말했다.
지하 1층으로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다양한 모자를 쓰고 대기하는 여러 명의 환자와 마주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 숙연한 분위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운동에 최선을 다했던 엄마, 건강에는 늘 자신만만했던 엄마다. '150분 이상의 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삐딱한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