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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Sep 26. 2022

자식 노릇 못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마세요

'잠깐 못 만나고 있는 엄마가 떠오른 날'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가는데 뒷모습이 엄마를 꼭 닮은 할머니가 지나갔다. 엄마가 즐겨 입던 스타일의 옷, 비슷한 체형, 작은 키, 머리 모양 모두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혼자 있을 때는 마음속에 떠올리고 말지만, 아이들과 함께라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 같다. 그치? 할머니 같지? 엄마 보고 싶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자식은 자식이고 엄마는 엄마다. 여전히 엄마가 수시로 떠오르고 늘 그립다.


집에 돌아오던 길에 6학년 아들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빠 말에 위로 한 스푼이라도 보태고 싶었나 보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라며 위로를 건넸다.


"잠깐 못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대요. 우리 집에 같이 살 때 말고는 할머니 가끔씩 만났잖아요. 그런 거처럼요. 나중에 만나면 된다고."


엄마가 멀쩡할 때 건강할 때 오랫동안 만나지 않을 때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던가. 그리워했던 적이 있었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자식 노릇 못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이었다. 아빠 위로하는 아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살아생전 자주 찾아가지 않은 미안함과 후회가 또다시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엄마를 어떤 할머니로 기억하고 있을까.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손주들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몇 개월이지만 함께 살면서 아이들과 친밀도를 높였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할머니 취미가 뭔 줄 알아?"

"음……마늘 까는 거요?"


엄마의 폐는 순식간에 암세포에 점령당했다. 숨이 차 거동이 불편해졌고, 반듯하게 누울 수도 없었다. 엄마는 이 고문을 마늘을 까면서 견뎠다. 방안 소파에 앉아 잠들기 전까지 마늘을 까다 비스듬히 누워 잠들었다.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시간도 금방 간다고 했다. 병자이지만 집안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 전 엄마의 모습이자, 아이들 눈에 비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속상했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활동적인 사람이었는지 아이들은 잘 모른다. 엄마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운동도 좋아했다. 일흔이 넘어서까지 요양보호사를 하면서도 동사무소에서 컴퓨터와 일본어를 배우고 붓글씨도 쓰면서 노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이들은 알 수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할머니를 잊지 않고 가끔 얘기를 꺼낼 때는 기분이 좋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과 윷놀이를 했다. 딸아이가 작년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윷놀이를 떠올렸다. 둘째가 할머니랑 같은 편이었는데, 자꾸 져서 심통이나 엄마가 굉장히 난처해했던 추억이다.


"할머니가 장ㅇㅇ 눈치 엄청 보면서 했잖아요."


아이가 말하며 웃었다. 결국 엄마의 고군분투 덕에 아들 팀이 이겼다. 오랜만에 꺼낸 즐거운 기억이다.


엄마가 떠난 지 고작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생신 날, 어버이날, 일주기, 추석 때 아이들과 납골당에 들러 엄마를 추억했다. "소원 빌어. 할머니가 들어주실 거야"라며 엄마를 추모한다. 아이들이 정말 엄마에게 소원을 빌었을까. 할머니를 한 번 더 떠올렸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이러한 루틴은 계속되겠지만,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얼굴 보고 한 번이라도 더 안아 드릴 걸'이라는 아쉬움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엄마를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영화 코코 봤지? 우리가 할머니 오래오래 기억하자." 나를 위한 부질없는 위안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이라도 아이들과 엄마를 추억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틈틈이 엄마의 좋은 기억 한 자락 전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떠난 할머니의 역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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