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하늘이 매우 청명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아내는 출근했고, 아이들은 학교에 있다. 오후 반차를 내고 맑은 하늘과 따스한 봄 햇살을 만끽하며 퇴근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엄마가 떠난 후 혼자서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만나러 납골당에 갔다.
엄마에게는 하얀 장미와 파란 안개꽃이 어우러진 꽃을, 아빠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첫눈에 반한 예쁜 꽃을 사니 기분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벼웠다. 비바람 몰아치던 우중충한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포근함이라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평일이라 한적한 납골당에 홀로 들어섰다. 엄마, 아빠 자리에 꽃을 붙였다. 조금이라도 예쁘고 반듯하게 붙이고 싶어 떼었다 붙이기도 여러 번. 가족과 갔다면 눈치 보며 한번에 붙이고 말았을 텐데, 오랜만에 혼자 마주한 부모님 앞에서는 여전히 애가 되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엄마, 아빠를 마주하니 자동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변함없다는 반가운 눈물이다. 여전히 그립고,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구시렁구시렁하고 싶을 말을 나지막하게 읇조리고, 마음속으로도 열심히 떠들며 평소보다 오랜 시간 부모님 곁에 머물렀다.
어린 아들의 마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손을 흔들고 나와 추모비에 향을 피웠다. 발길을 돌려 '하늘로 문자를 보내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면 늘 엄마 아빠에게 문자를 남기고 떠난다. 오늘은 혼자 온 김에 남들이 보낸 문자가 롤링되는 걸 한참 동안 바라봤다.
'보고 싶다', '그립다', '사랑한다'는 예쁜 말만 가득했다. 모든 문자는 '사랑한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부모님 살아생전 육성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있을 때야 비로소 입이 트여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고, 임종실에엄마와 덩그러니 둘만 남겨졌을 때 대성통곡하며 사랑한다고 외쳤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의 마음과 감정을 문자에 담아 하늘로 보내는 게 아닐까.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대립하여 살고 있는 사람에게 기쁨의 다리를 건네는 것이 사랑이다.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말> 중
부모 마음을 모른 채대립하며 사는 자식을 향한 부모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엄마, 아빠 갈게요!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뒤늦은 사랑 고백 죄송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너무 쉬워진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아들이 즐겨보는 <총몇명>이라는 유튜브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올라온 영상을 봤다. <내 나이 52 , 눈떠보니 13살!?> 이라는 제목의 영상인데, 주인공이 잠시 13살로 돌아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며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는 내용이다. 뻔한 스토리지만 목이 메었다.
인간은 왜 늘 후회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아빠가 떠난 후 엄마가 떠나기까지 무수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또 남는 건 후회와 미련, 미안함이다.
엄마, 아빠가 나이 들며 작아져 갈 때 그 왜소함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비로소 소중함과 사랑을 알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인생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가장 큰 일은 부모님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이 떠난 후 남은 옵션은 없다. 허공에 흩어지는 외침이나, 문자로만 '사랑한다'를 외치는 방법 외에는.
슬픔과 미련을 상쇄할 만큼 따듯하고 포근한 어버이날, 쾌청한 봄 하늘 아래서 첫눈에 반한 예쁜 꽃을 들고 엄마, 아빠와 마주할 수 있어 행복했다.
"엄마, 아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뒤늦은 사랑 고백 죄송합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한시외전 中>
어버이날 부모님과의 평범하고 당연한 저녁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이 되는 현실은 참 슬프다.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미국의 성직자 헨리 워드 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