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착하면 호구잡혀', '친절하면 만만하게 봐'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친절과 배려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겠죠. 앞선 선배의 말처럼 회사에는 무시당하는 착한 직장인과 착함이 플러스알파로 작용해 더욱더 인정 받는 직장인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조직에서는 긍정적인 '착하기까지해!'라든지 부정의 뉘앙스를 담아 '착하긴 한데...'라는 등 '착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착함'이 플러스알파로 작용하는 사람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착하고 친절한 정다은 간호사
"아니 간호사가 친절만 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 근데 걔는 너무 애가 친절해."
"환자들은 좋아하는 거 같던데?"
"그니까. 환자들한테만 친절하면 뭐해. 딴 간호사들한테는 민폐인데. 아 정말 바빠서 미칠 거 같은데, 그 친구만 일이 밀리니까. 다른 간호사들이 걔 몫까지 해야 되는 거거든."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내과 병동 수간호사는 주인공 정다은(박보영) 간호사가 너무 친절해서 다른 동료들에게 민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생각해 정신병동 근무를 추천한 줄 알았던 정다은 간호사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정다은 간호사는 모든 환자에게 친절합니다. 모함이나 폭행을 당하고 자신의 배려와 친절이 고통으로 되돌아 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본분이 간호사임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소명 의식을 가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단순히 일을 빨리 쳐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 내 업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내외부 고객 모두에게 관대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죠. 심지어는 정신병 걸린 간호사라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해냅니다.
내과 병동에서 일했던 정다은 간호사를 민폐 간호사라 저격한 수간호사의 생각은 짧았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판단이었죠. 정다은 간호사는 그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의 업무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남들보다 열정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다른 동료와 다르게 환자를 친절하게 대했던 거죠.
정다은 간호사가 내과 병동에서 계속 근무했다면 끝까지 민폐 간호사라는 꼬리표를 달았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다은 간호사가 정신병동에 근무했기 때문에 친절함이 빛을 발한 게 아닐 것입니다. 민폐였을지도 모를 그 순간은 단지 직장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을 뿐이죠.
친절함, 착함을 단순히 민폐라는 단어에 가둔 수간호사의 성급한 판단 오류일 뿐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인이 가장 잃기 쉬운 두 가지가 바로 열정과 친절함 아닐까요. 열정은 적성이라는 모호함에 사로잡혀 흐리멍덩해지기 일쑤고,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친절함을 버리기도 하니까요.
말끝마다 '미안해요', '죄송해요'를 달고 사는 기획팀 선배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자신이 부족해서 무조건 굽히고 사람들을 대하는 줄 알았습니다. 착하고 선해서 사람들이 쉽게 볼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함께 일을 하면서 반전 모습에 놀랐어요. 과장이었음에도 차 부장급 업무까지 믿고 맡길 만큼 뛰어난데 친절하기까지 해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이었죠. 협업하는 업무가 많은 직장에서 착한 마음까지 겸비한다면 커다란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요.
드라마 초반에 착하기만 한 민폐 동료였던 정다은 간호사는 결국 열정, 실력과 더불어 친절함까지 겸비한 유능한 간호사가 됩니다. 이는 업무 능력, 성실, 열정 등 직장인에게 필요한 많은 자질에 착함과 친절함이라는 플러스알파까지 갖춘 이상적인 직장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착함'이 무시와 따돌림으로 변질되는 사람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김성식
군대에 있을 때 갈구는 기수가 있었어요. 욕도 하고 센척하며 후임들 기선을 제압하는 역할입니다. 제가 그 기수가 되었을 때 후임들을 못 갈군다고 선임들에게 참 많이 갈굼을 당했습니다. 후임들에게는 착한 고참이었을지 몰라도 선임들이 보기에는 제가 상병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민폐 후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된 게 팀장이라는 사람이 대리보다 일을 못 하나."
"죄송합니다."
"월급 루팡이라는 말 알아? 월급 도둑이라는 말이야. 옛날 같으면 맞아도 몇 번을 맞았어. 행여나 맞아도 '감사합니다'하며 다녀야 돼 당신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직장인 김성식(조달환)에게 상사가 지속해서 쏟아 놓은 폭언입니다. 김성식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정다은 간호사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너무 속상해요. 여긴 착한 분들만 오시는 거 같아서."
"그래서 선생님도 여기 계신가 봐요. 이곳에는 착한 사람들만 온다면서요."
둘 다 착한 직장인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김성식의 상사 말처럼 명확합니다. 김성식은 한 팀을 이끄는 팀장입니다. 조직에서는 아무나 팀장을 시키지 않죠. 성과와 리더십 등 다양한 자질을 인정받았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성식은 ‘대리보다 일을 못하다’, ‘월급 루팡’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착함과 순함으로 자신을 감싸 안을 뿐, 팀장임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보다는 방관한 게 아닐까요. 김성식은 불같은 상급자와 성격이 안 맞아 괴로워하지만, 사람을 다루고 사람과 맞춰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직장인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반면 정다은 간호사는 각양각색의 환자를 만나면서 그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갑니다.
일에서 후배한테 밀리고 상급자에게 지속해서 비슷한 상황을 지적 받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뒤처지는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자신의 성향이 착하고 여리다고 자신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직이 원하는 모습을 갖추려는 노력도 직장인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직장인 페르소나가 따로 있다거나, 사회화가 잘 된 E같은 I형(MBTI)이라는 말이 있는 것도 모두 적응하려는 노력의 일환 아닐까요.
회사에서 관리자급이 되었을 때 주변에서 착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팀장은 "착하기만 하다고 좋은 리더가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건네곤 했어요. 당시에는 서운한 마음이 컸는데 돌이켜 보면 관리자급 역할을 조금 더 해달라는 조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 영화 '오피스'에서 착하다는 이유로 일을 떠안고 무시 당하던 김병국 과장
"왜 조직에서 가장 피곤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우직하고 융통성은 없는데 일은 또 엄청 열심히 해요. 게다가 착하기까지 해. 조직이라는 게 어디든 다 똑같거든. 눈치 없이 무작정 자기 일만 하는 스타일이 있다고. 위에서 뭘 원하는지 파악할 줄도 모르고 그냥 자기 혼자만 성실한 거야. 삽질하고 있는 거지."
직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 영화 〈오피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용의자로 의심받던 김병국 과장(배성우)을 두고 형사가 한 말이죠. 김병국은 착하고 온순한 성격이라 동료들 일을 대신 떠맡으면서도 따돌림을 당해왔어요. 우직, 열심, 자기 일만 하는 스타일이라는 온갖 좋은 수식어를 붙였지만 결국은 삽질하는 동료일 뿐이었던 거죠.
조직은 바로 이렇게 무섭고도 냉정한 곳입니다. 월급 이상의 성과를 요구하고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게다가 착하기까지 해’라는 비꼬는 말로 모든 걸 평가절하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직장인은 자신의 직급과 위치에서 상황에서 해야 할 역할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착함'을 지키기 위한 '독함'이 필요합니다
"아들이 너무 착해서 당하고만 사는 거 같아서 속상해. 착하고 친절하게 희생하면서 살면 호구인 세상이잖아. 애들한테 착하게만 살라고는 못하겠더라고. 주변에서 우습게나 알고 이용해 먹으러고 하니까."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한 친구가 남긴 말입니다. 친구는 착하고 친절하게 사는 것을 희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회사 후배도 초등학생 딸이 너무 착해서 이래저래 손해보며 사는 거 같아 속상하다는 말을 한적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사회가 점점 차가워짐을 느낍니다. 한국 사회에서 '착함'과 '친절함'은 한때 높이 평가받던 미덕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착함'은 무시와 따돌림이나 무능력으로 변질되었고, '친절함'은 의심의 눈초리부터 받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책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에서 전우익 작가는 '착함'을 지키기위 위해 '독한 것'을 갖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착함'과 '독함' 이율배반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저자가 말하는 '독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에서는 막연하게 착한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삭막한 사회에서는 조금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요. 차가운 사회를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물들일 수 있는 귀한 품성인 '착하다‘(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와 ‘친절하다’(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하다)를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본연의 의미 그대로 사용하며 지켜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