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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28. 2024

실적 지키는 노하우와 공을 나누는 지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영화 <명량>


최근 인공지능(AI) 매칭 채용콘텐츠 플랫폼에서 Z세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 사수'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성과를 가로채는 사수(44%)'가 최악의 사수로 1위로 꼽혔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2015년에도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최악의 직장 상사 1위로 ‘후배 공을 가로채는 상사(20.5%)’가 지목된 적 있다는 사실입니다. 10여년 전보다 23.5%나 더 많은 사람이 성과 가로채는 사수를 최악으로 평가했습니다.


본인의 실적은 팀의 실적이고, 회사의 실적이 됩니다. 그 공은 팀을 이끄는 수장에게 돌아갑니다. 수장은 그 공을 팀원들 혹은 당사자에게 치하합니다. 리더는 모든 업무를 지시하고 수시로 보고받고,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수행하는 모든 일을 함께 진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적을 리더의 공이라고도 하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아니라도 리더에게 책임이 돌아가니까요.


설문조사에서 직장인이 1위를 뽑은 이유, 즉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함께 또는 자신이 진행한 업무를 사수가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 마치 자기가 다 한 업무인 듯 행동하고, 자신만 조용히 상사의 신임을 얻거나 업무 평가를 독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업무의 실적은 당연히 상사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성과가 상사의 성과가 되고 상사의 성과가 회사의 성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의 성과관리는 다양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고, 내적인 실력을 더 쌓고 또 다른 성과를 내보일 기회가 되기 때문에 더 많이 성과를 못 낸 것을 아쉬워하는 게 마음 편한 부하 직원의 태도일 것으로 봅니다."


국내 한 대기업 면접 기출문제 중 ‘상사가 자신의 실적을 가져가려고 한다. 어떻게 대처하겠는가’에 대해기업이 원하는 답변이라고 합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이처럼 실력을 더 쌓고 또 다른 성과를 내보일 기회를 더 찾는 마음 착한? 부하들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기업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조직원들은 분노할 것이고, 의욕이 소멸되는 만큼 좋은 성과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직장인에게 참 애매모호한 이러한 상황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사수를 능가하는 후배가 되어야 합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부하직원의 실적을 뺏는 무능한 상사 김경욱 과장>


"기획안이 좀 허술하긴 해도 어떡해, 해봐야지. 대리급이 열심히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강 대리 일하는 거 방해할 생각은 없어. 다만 내 이름을 빌려주겠다는 거야. 내가 다 일이 되게 하려고 하는 거지. 안 되게 하려는 거겠냐고."

'그니까 일은 내가 다 하고 자기는 날로 먹겠단 말을 이렇게 하는 거야?'(혼잣말)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김경욱 과장(김중희)은 강지원 대리(박민영)가 제출한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기획안에 자기의 이름을 넣어 차장 승진을 노렸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측근을 투입하기 위해 기획안을 만든 강지원 대리를 빼버리죠. 이런 상황은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대처하지 않으면 직장생활이 매우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대기업 개발팀에 재직 중인 A 대리는 직속 사수가 있지만, 팀장으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곤 합니다. 팀장이 사수에게 지시한 업무 대부분을 A 대리가 주로 맡았는데, 보고를 맡은 사수가 오히려 A 대리보다 업무 파악이 부족해서 상사에게 신뢰를 잃은 탓이었습니다.


A 대리는 입사 초부터 맡은 업무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파악하며 실력을 꾸준히 닦아왔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면 제아무리 상사라 하더라도 해당 업무를 독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A 대리의 사수는 자신에게 내려온 업무 대부분을 A 대리에게 시켰습니다. 하지만 A 대리가 만든 자료로 보고할 때 상사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드라마 속 김경욱 과장처럼 욕심은 많았지만, 업무와 보고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상사가 지시한 업무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업무를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배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개인 경쟁력을 키우고, 상사가 나를 빼놓고 업무에 대해 논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맡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상사에게 신뢰받는 지름길이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전문성이 생기면 회사에서 찾는 사람이 많아짐은 물론 임원이나 대표이사 보고를 할 때 상사와 동석할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의 김지원 대리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무능한 김경욱 과장에게 기회를 뺏기지 않고 성공적으로 맡은 업무를 완수하고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공은 억지로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결국은 드러납니다. 너무 성급하고 조급하게 인정에 목말라할 필요 없습니다. 일단은 실력을 쌓고 맡은 일에서 할 도리를 다한다면 분명 능력을 인정받는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상사만 실적을 가로채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정수민(송하윤)과 강지원(박민영)이 싸우는 장면>


"이거(기획안) 너무 괜찮다. 손 좀 봐서 내가 다시 내볼게."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후배 정수민(송하윤)은 과거에 강지원(박민영) 의 기획안을 훔쳐 계약직에서 정직원이 됩니다. 상사만 누군가의 공과 실적을 가로채는 것은 아닙니다.


신입시절 같은 팀 선배와 함께 신규 브랜드 BI와 캐릭터 개발 프로젝트를 맡은 적 있습니다. 몇 개월 뒤 팀장이 병가에 들어갔고, 저는 다른 업무에 투입되면서 해당 업무에서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회사에 나와 진행 업무에 대해 보고를 받았습니다. 선배가 자리에 없길래 제가 진행상황을 보고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선배는 업무 관련 모든 파일을 저한테 보내고, “앞으로 이 업무 한이 씨가 다 해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도 동료들 간에 실적과 공에 대한 시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 선배가 제 행동이 ‘주제넘고, 예의 없는 만행’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남의 업무 영역에 함부로 침범해 버린 데 대한 비난이었죠.


회사 내 팀별로 업무가 다르듯 팀에서도 개인별로 명확한 R&R(역할 분담)이 있습니다. 제 사례처럼 과도한 의욕이나 열정 혹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R&R을 넘나드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직장인들에게는 서로 다른 역할이 주어집니다. 상사에게는 밥상머리를 넘지 않는 예절을 지키고, 동료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업무 경계가 있습니다. 특히 여러 명이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는 구성원 간 R&R과 업무 비중을 균등하게 조절하고 업무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근거 자료를 마련해 놓아야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기여도에 대한 문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했던 일 중 싫어했던 일을 생각해 보시고 그걸 남에게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대신 기분이 좋았던 일을 기억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해 보세요."


비자카드 설립자 디 호크(Dee Hock)의 말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설문에서 1위를 뽑은 직장인들과 1위로 뽑힌 직장인들 모두가 수시로 떠올려야 할 조언 아닐까요. 동료들과의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성과를 나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영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의 모습>

"절체절명의 순간에 몰아친 회오리 말입니다. 그 회오리가 아니었다면…"

"천행이었다."

"천행이라뇨? 그렇다면 아주 낭패를 볼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 순간에 백성들이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백성을 두고 천행이라고 하신 겁니까. 회오리가 아니고요?"

"네 생각에는 무엇이 더 천행이었겠느냐?"


영화 <명량>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후,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아들 이회(권율)와 나눈 대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여기지만, 이순신 장군은 백성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부하 직원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임을 아는 사람이다. 부하 직원들이 A를 받도록 힘써라. 그러면 상사인 본인은 A+를 받을 수 있다. 부하 직원을 성공시키는 임원(팀장)이라는 명성을 구축하라."


도서 <한국의 임원들>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팀원들의 ‘실력과 공’이 곧 상사의 ‘능력과 명성’이 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상사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조직의 발전을 위해 작은 것에 욕심부리지 말라는 조언이기도 합니다.


직장생활에 발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들도 이러한 선배의 조언을 새겨듣는다면 미래에 들어올 후배들에게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아질 것입니다. 실적을 뺏기지 않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 일을 오롯이 혼자서만 성공시킬 수 없는 만큼 공을 나누는 지혜로움도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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