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행사>, 트렌드에 맞춘 ‘충성심’ 함양은 직장인에게 기회입니다
과거 직장에서는 집단주의를 강조하며 조직에 대한 과몰입과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장기 고용 보장 등 이에 따른 보상도 뒤따랐죠. 하지만 몇 차례의 금융위기, 유례없던 코로나19 사태 등을 겪으며 시대는 급변했습니다. 현실 속 위기 상황을 지켜본 직장인들 특히 젊은 세대는 업무에 대한 몰입을 낮추기 시작했죠.
요즘 세대 갈등은 시대의 과도기 속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던 기성세대와 경제 위기를 체험하고 목도하면서 '각자도생'에 익숙한 요즘 세대 간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회사와 사람에 대한 충성심 강한 기성세대와 조직보다 개인이 더 중요한 세대 간 의견 차이가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거죠.
요즘 세대는 유연한 근무 형태를 선호합니다. 불필요한 충성심의 일환으로 야근과 회식을 반복하며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거죠.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N잡러 직장인도 흔한 요즘입니다. 회사를 위해 충성하는 삶이 아닌 퇴근 후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차피 다닐 회사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직장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충성심' 함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에 충성심이라니!' 혹시 미간을 찌푸리셨나요?
충성심忠誠心은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직장에서 복종의 의미를 담아 충성심 함양을 강요해 왔기 때문에 시나브로 사전적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지 않았을까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충성심도 트렌드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내가 왜 나가야 하는데, 남들 퇴근할 때도 주말에도 심지어 명절 때도 일하면서 내가 이 VC 기획을 이렇게 키워 놨는데. 정신과 약을 밥 먹듯이 먹는 쟤가 사장 자격이 있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한테 이 회사를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냐고!"
드라마 <대행사>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회사와 권력에 과도하게 충성하던 최창수 상무(조성하)는 결국 누명을 쓰고 회사에서 쫓겨납니다. 자신의 충심이 배신으로 돌아왔으니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충성심은 적당히 복용하면 득이 되고 결핍되거나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는 영양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충성심은 억지로 만들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 '충성!'을 수만 번도 더 외쳤습니다. 이 년이 지나도 고참에 대한, 부대에 대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눈곱만큼도 생겨나지 않았어요. 직장인에게 자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충성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람과 회사에 충성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충성심을 업무 능력을 키우고, 직장에서 버티면서 발전하기 위해 취사선택이 가능한 기회라고 여겨 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성공을 위해 충성의 대상을 ‘내 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무 성과와 경력 관리를 위해 상사를, 회사를 이용하는 거죠.
"넌 일을 좀 일처럼 하면 안 되냐?"
"내가 뭐처럼 하는데?"
"전쟁."
"지면 죽으니까 전쟁 맞네."
"안 죽어. 임원 못돼도."
"아니, 난 죽어. 나보다 못난 것들이 내 위에 올라가는 꼴 보면."
"우울, 불안 장애, 공황, 불면증에 취미도 없고 연애도 안 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즐거움 다 포기할 만큼 성공이 중요해?"
"난 중요해."
고아인 상무(이보영)가 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상담받는 장면입니다. 최창수 상무가 쫓겨나면서 악담을 퍼부은 ‘재’라는 사람이 바로 고아인 상무입니다. 고아인 상무는 자신을 혹사하면서 일하지만, 회사의 명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자신의 지위를 최대한 이용합니다. 이는 자신과 자신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죠.
최 상무와 고 상무 둘 다 충성심이 강하지만, 충성하는 대상은 전혀 다릅니다. 고아인 상무처럼 내 업무에서 충성심을 찾아야 성장하면서 나 자신도 지킬 수 있습니다. 충성심은 말 그대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니까요.
내 일에 대한 충성은 나의 성장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나마 상사에 대한 충성으로도 이어집니다. 조직에서 일을 잘하면 상사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계가 좋을 확률이 높습니다. 또 개인 업무에 대한 평판과 업무 평가 결과 등에 복리 이자가 붙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충성심을 개인의 발전과 직결시켜 생각한다면, 그래서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경력 관리를 위해 나쁠 것도 없습니다.
도서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에는 자신이 충분히 유능한데도 능력에 맞는 보직을 받지 못하고 주변부로만 돌거나 승진이 늦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임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합니다. 충성심을 점검해 보라는 말입니다. 충성심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임원들이 어떻게 알겠냐 싶겠지만, 그들은 직원들의 태도에서 충성심을 본다고 합니다. 회사를 자기의 일부로 여기고 그 가치에 동조하고 있는지, 적당히 일하며 늘 불만이 차 있는 사람인지 윗사람은 귀신같이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인재 발탁과 승진에는 능력뿐만 아니라 은근슬쩍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심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조직은 충성심이 높은 직원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상사가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충성은 개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바로 기회일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내 일에 대한 충성심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가치입니다. 내 일에 대한 충성은 업무 효율성과 비례합니다. 내 업무에 충성하면 업무 몰입도도 올라가고 남들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오너 일가는 직원들을 ‘머슴’이라고 칭합니다. 최 상무는 우직하게 이용만 당하다 잘린 머슴이 되었고, 고아인 상무는 머슴처럼 일하면서도 주인을 영악하게 이용해 사장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일 년 뒤 회사를 나와 직원들이 주인인 회사를 차립니다. 고아인 상무는 머슴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회사를 충분히 이용하며 자기 일에 진심으로 충성했고, 명예까지 얻어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직장인에게 내 일에 대한 영리한 충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