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아빠의 활력이 됩니다"
고1 딸아이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시험 첫날 "망했음"이라는 카톡과 함께 더이상 가족 단톡방에 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까지는 시험 보는 족족 성적을 단톡방에 올렸거든요.
딸아이는 9월부터 틈틈이 스카에 다니며 중간고사 대비를 했습니다. 추석 연휴에도 주말에도 스카에서 공부를 하다가 새벽에 돌아오곤 했죠.
중간고사가 끝나고 10월 모의고사까지 마친 다음날 밤 딸아이가 제 방에 자리를 잡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중간고사 시험 점수부터 뒷이야기, 모의고사 점수까지 싹 털어내더니 마지막에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주말에 스카간다고 나가서 OOO이랑 상암 가서 축구 경기 보고 왔어요. 걱정할까 봐 시험 끝나고 말하려고 했어요."
"알고 있었어."
"어떻게요?"
"OOO이 그날 너랑 축구장 간 거 스토리에 올렸던데?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풀러 갔나 했지."
별말 안 하는 아빠가 안심이 됐는지 그날 일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냅니다. 괜히 온갖 책을 다 챙겨가서 무거운 가방 들고 돌아다니느라 힘들었다고. "밤에 스카 가려다가 너무 피곤해서 공원에 친구랑 앉아 있다가 왔어요" 말하고 가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었지요.
"그리고 시험 기간에 틈틈이 도장에 갔어요. 과학 시험 보기 전날에는 도장 가서 연습 오래 했어요. 2단 심사 얼마 안 남아서 불안해서요."
"과학 공부 다 했으니까 갔겠지. 뭐.”
"네, 미리 공부를 다 해놔서."
"알아서 시간 관리하는 건데, 잘못한 건 아니지."
중간고사 끝나는 주 주말에 딸내미 태권도 2단 심사가 있었습니다. 시험기간과 심사가 겹쳤죠. 딸내미는 연습을 제대로 못해서 불안한 마음에 틈틈이 도장에 나가 연습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취미로 계속 태권도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 다니라고도 몇 번 말했어요.
"시험기간 되면 몇 번 가지도 못하는데, 이제 그만 다니는 게 어때? 그 시간에 쉬는 게 낫지 않아?"
"아니요. 제 삶의 낙이예요."
딸아이는 운동이 좋다고 합니다. "체대 가고 싶은데..."라는 말도 종종 하죠. 운동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니 본인이 그만한다고 할 때까지 보낼 생각입니다. 평일에는 학원 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기특하기도 안쓰럽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는 딸을 보면서 고등학생 때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도서관에 가방만 던져놓고 친구들이랑 놀던 일. 학원 빠지고 서울랜드에 다녀온 기억, 고 3 때 도서관 간다고 나와서 룰라 콘서트에 갔던 추억도 떠올랐지요. 고3 8월에는 도서관 간다고 나와 친구들이랑 고석정에 놀러 가기도. 고해성사는 부모님께 제가 해야지요.
딸아이에게 알아서 잘하고 있고 믿으니까, 일일이 고해성사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내심 이런 소소한 일까지 아빠에게 탈탈 털어 말해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어쩌면 아빠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고도의 전략? 일지도 모르지만요.
시험 성적도 일일이 단톡방에 안 올려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마치 무슨 전통처럼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성적을 단톡방에 올리고 있거든요. (딸이 만든 전통이었지요) 시험 성적을 가족 단톡방에 공개라니? 제가 고등학생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톡방에 올리지 않아도 자기 입으로 주저리주러리 말하니 어차피 다 알게 될 일이죠.
역사는 모르는 게 없었고, 과학은 미리 공부를 해놔서 잘 봤고, 국어는 정말 잘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고, 수학은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걱정을 하네요. 영어는 틀린 줄 알았던 주관식을 맞아서 만족하지만, 스펠링 하나를 잘못 써서 1점 깎인 게 아쉽다고. 매우 디테일합니다.
"이번 모의고사 역대급 잘 봤는데, 수학은 완전 망했어요. 수학 어떡하죠?"
"문과로 바꿀 수 없어?"
"신청 끝났는데? 바꿀 수 없을까요?"
"선생님한테 한 번 물어봐."
"네."
"근데 수학은 과외해볼래?"
"네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알아볼게."
딸아이의 고해성사로 시작된 즐거운 대화는 수학 과외?라는 다소 엉뚱한 결말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날은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딸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제 방에 들어와 이야기를 쏟아내는 통해 12시를 훌쩍 넘겨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좋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딸아이와 나눈 이런저런 대화가 내일 아빠의 활력이 되어 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