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매일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친구들과 모이던 시절, 자식 돌잔치에 다시 친구들이 모이던 시절이 지나니 친구들이 우르르 모이는 일은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나이를 먹어 부모님 장례식 장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네요. 누구나 겪는 과정, 저마다 부모님과의 관계나 부모님을 향한 마음은 다르겠지만, 이별하며 느끼는 한가지 감정은 같지 않을까요. 후회하는 마음.
엄마의 큰 병을 알고 대처하면서 시시때때로 후회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할 걸, 수술을 하지 말 걸, 엄마를 좀 더 빨리 모실 걸, 엄마한테 좀 더 잘할 걸, 여행이라도 함께 다녀올 걸.
그렇기에 희망의 끈을 더더욱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보상이,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결국 희망 고문이 되었습니다. 기적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희망은 더 큰 좌절과 고통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했던 1년 반 남짓한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결혼해 출가한 지 15년 만에 다시 엄마와 살림을 합치고, 함께 산책하고, 얘기하고, 영화 보며 일상을 함께했을 뿐인데, 가장 귀한 기억이 되어 저에게 위안을 선사합니다.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제 삶에서 참으로 소중했던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순식간에 다가온 엄마와의 이별은 잡을 수 없는 안개처럼 희미하게 흩어졌지만,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공원에 오면 상쾌하다. 나는 어쩌다가 지팡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나. 거기다가 죽음을 얼마 안 남긴 사형수가 아니냐? 얼마 안 남은 여생 고생 덜하고 죽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엄마의 일기 중>
호스피스 병동에서 엄마는 한 달 반 동안 남은 여생을 보냈습니다. 곁에서 엄마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습니다. 엄마와 이별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엄마가 그립습니다. 얼굴, 목소리, 웃음소리까지도 생생한데,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사진을 꺼내 보고도 싶지만, 건강했던 시절보다 아프고 나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훨씬 더 많아 선뜻 폴더를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기록해 둔 수십 장의 글은 엄마와의 추억을 더욱 생생하게 소환합니다.
엄마는 1년 3개월 동안 폐암과 최선을 다해 싸우고, 당신의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하늘나라 별장으로 떠났습니다. 병원에서조차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엄마는 친구에게 '파라다이스 병동'에 있다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힘들고 평생을 바쁘게 살아오신 엄마에게 그곳은 처음으로 편히 쉴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주무시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기록했습니다. 엄마와의 대화, 함께한 순간들, 병동에서의 시간들. 그리고 엄마보다 조금 먼저 떠나간 이들을 지켜보며 후회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든 엄마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카카오톡 메시지는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엄마는 우리에게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남몰래 남긴 휴대폰 화면 속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탈모… 내가 나를 보기도 기가 찬데 자식이 볼까 봐 조심하지만, 앞으로 일 년이 걸릴지, 다 자라는 거 볼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건으로 가리고 모자로 가리며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티며 살까 싶다."
중년의 아들이 느끼는 엄마의 부재는 어릴 적과는 또 다릅니다. 어릴 땐 그저 엄마의 품이 필요했지만, 나이 든 지금은 엄마가 곁에 계셨을 때 충분히 효도하지 못한 후회와 죄책감이 큽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이 더 늦기 전에, 나중에 후회를 하나라도 덜 하기 위해 곁에 있는 엄마에게 진정한 파라다이스를 선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시티 검사 결과 보러 아들이랑 즐거운 맘으로 왔다가 맞은 날벼락. 오른쪽 폐에 또 생긴 전이암. 나만은 괜찮을 줄 알았건만 딱 걸렸다. 가엾은 내 인생이 또 얼마나 어려움을 겪으려는지. 죽고 싶어도 그게 어디 쉬운가."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 속 문장을 보면 엄마의 무너졌을 마음이 떠올라 울컥합니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엄마에 대한 글을 남깁니다.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엄마 얼굴을 그려봅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희미해져도, 엄마와 함께한 그 모든 순간이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란 단어는 인류가 입술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다."
작가 칼리 지브란의 말입니다.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단어가 되고 나니 깨닫습니다. 세상의 그 누가 어머니 보다 나를 사랑할까요. 그 누가 나를 위해 선뜻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기꺼이 대신할 수 있을까요.
효도는 병든 엄마를 곁에서 돌보는 일이 아닙니다. 엄마가 건강할 때 자식들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들이밀고, 마주하면 따듯한 말 한마디 더 건네고, 이조차 어렵다면 전화 속 목소리라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은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요. 엄마 살아생전 하지 못한 일들이 수시로 떠올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시립니다.
중년이 되어도 '엄마'라는 단어는 귀하고 또 그립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이 엄마에게 후회할 일을 하나라도 덜 저지르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사진 속에 어여쁜 당신의 얼굴
청춘의 달콤했던 꿈들은 모두 과거로만 남아버렸나
아들딸을 키우시느라 버려야만 했던 것들
후회한 점 없으시다는 나밖에 모를 사람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요 나 땜에 변한 것 같아
그래도 온 세상 제일 예쁘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꽃
못난 자식 걱정하느라 뭉그러져버린 가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티 낼 수 없는 사람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요 나 땜에 변한 것 같아
그래도 온 세상 제일 예쁘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꽃
미안해요 우리 엄마꽃
엄마
엄마 엄마 우리 엄마꽃
<안성훈 '엄마꽃' 가사>
가사가 마음에 들어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