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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고민에 '울컥'하다가 결국 '덜컥'

"우리 아이들도 꼭! 자식 키우는 경험을 했으면..."

by 이드id


중년에 자식 걱정이 빠질 수 있을까요. 현시점에서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자식의 교육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들처럼 이런 과정을 똑같이 겪었지만, 남이 아닌 내 자식이기에 더 어렵기만 합니다.


퇴근 후 집에서 쉬던 중 우연히 본 인스타그램 속 교육 전문가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자살 생각을 가장 많이 할 때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아이들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인데, 부모가 그 마음을 헤어리지 못하고 잔소리를 퍼부으면 아이들 감정에 스파이크가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너무 싫다고,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정 부릴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건 당연한 일이야‘라고 감정을 받아준 후 차근차근 설명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피곤해서 일찍 잘까 하다가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11시가 조금 지나 남매가 동시에 현관으로 입장했습니다. 아이들을 안아주며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토닥여주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정말 통했던 걸까요. 마침 아이들이 힘들었던 순간과 아빠의 응원이 맞아떨어진 걸까요.


아이들이 제 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셋이 모여서 새벽 12시가 넘도록 수다를 떨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오늘 아이들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고2, 딸아이는 오랜만에 입이 틔였습니다. 첫마디가 "대학 가기 싫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어차피 저는 30살 전에 귀농할 건데..."였습니다.


오은영 선생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죠.


"대학 가지 않고 하고 싶은 일 있나 잘 생각해 봐. 그리고 귀농하면 아빠랑 같이 내려가자."


"개학하니까 갑자기 너무 부담스러워졌어요. 방학 때는 2학년 되면 왠지 시험을 엄청 잘 볼 거 같았는데, 막상 학교에 가니까 시험, 수행, 성적, 등급 신경 쓸게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만 받아요. 1학년 때 생기부도 망했는데... 생윤은 1등급이 3명이에요. 저는 수학은 정말 아닌가 봐요. 문제를 많이 풀어야 하는데, 숙제할 시간도 없고... 영어도 숙제도 너무 많아서 단어는 길에서 외워요. 운동할 시간도 없고. 체대 갈까요? 지금 성적으로 좋은 대학 갈 수 있을걸요?"


선생님과 상담한 얘기, 친구들, 청소, 급식 이야기보따리까지 한참을 풀어냈습니다. 개학 후 고2를 맞은 딸아이가 많이 바빠져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속마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걸 들으면서 안쓰러우면서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운동이 정말 좋아서라면 체대도 좋지. 보통 2학년 1학기부터 체대입시 시작하니까. 그때까지 생각해 보고 얘기해. 졸업 후 진로도 알아보고."


동아리는 '법과 정치'를 신청해 놓고, 체대라니. 아이들 마음은 하루에도 십 수 번 바뀌는 걸 경험한 터라 '뭐라도 하겠다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역시 며칠 뒤 카톡이 왔습니다. “저 육사 갈래요”라고)


저는 보통 아이들이 한마디 하면 바로 검색에 들어갑니다. 건축과를 가겠다고 했을 때, 농대를 가겠다고 했을 때,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바로바로 입시 관련 내용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다음날 딸아이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아빠, 체대 입시는 아직 알아보지 마세요!"


딸아이의 말은 '아빠! 저 힘들어요!'라는 넋두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답을 주기보다는 그저 들어주면 상대도 마음이 풀리곤 하는 그런 푸념. 학창 시절 제 마음도 같았거든요.


학부모가 돼 입시 관련 정보에 관심을 가지면서 '너무 가혹하다'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더불어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수시로 다짐합니다.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당사자가 아닐까요.


“이번 모의고사 망쳐서 성적표 버렸어요.”

"나중에 잘 보면 보여줘."


공부는 스스로 해야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나이를 먹으면 '그때 좀 더 할 걸'이라는 후회를 한다는 것도 다 알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기에. 그저 감정 상하지 않게 앞으로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며 응원해 주는 수밖에요.


이날 이후 딸아이가 참 안쓰러워 울컥하는 마음에 더 잘해줬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딸내미를 교회에서 픽업해 돌아오는 길, 입이 간지러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말하더군요.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애써 태연한 척) "또?? 하키 오빠? 농구부 오빠?"

"아니요. 아빠가 좋아할 걸요?" (누구를 만나도 좋아할 리가! 아직 아빠를 잘 모르네요)


*딸아이가 육사를 가겠다고 했을 때. 모집정원이 남자 286명, 여자 44명 이더라고요. “아빠는 저 남자 286명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싫다!”라고 돌려 말했는데 알아 들었겠죠.


'1년 동안 잠잠하더니. 다신 안 사귄다고 그렇게 다짐하더니. 또 남자 친구이라니!' 딸내미는 주저리주저리 남자친구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울컥했던 마음이 덜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죠. 속마음은 '지금이 남자 사귈 때야?'였지만, 예쁘게 만나고 결혼까지 꼭 하라고 응원해 줬습니다. (정말 괜찮은 친구긴 하거든요) 그래도 딸아이 마무리 멘트에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사귀면서 "우리 진짜 공부 열심히 해서. 중간고사 잘 보자!"라고 다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지금은 둘이 스카에 같이 다니고 있네요.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요. (중간고사 결과를 보면 알겠죠 ㅠㅠ)


중년의 아빠는 자식을 키우는 일이 롤러코스트 보다 어지러운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나의 엄마, 아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꼭! 자식 키우는 경험을 하면서 스펙타클한 인생을 겪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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