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도 부족..." 직장인의 욕망은 어디로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가 중년 직장인에게 던진 냉정한 질문

by 이드id


지난 명절 연휴에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를 정주행했습니다. 드라마는 고지를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한 여자의 가짜 인생을 그립니다. 주인공 사라킴(신혜선 분)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고 있자니, 어느덧 20년 넘게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온 제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사라킴은 가짜 신분으로 상류층에 입성해 '부두아'라는 가짜 브랜드 론칭에 성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집착은 단순히 부와 명성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가 되고 싶은, 진짜로 인정받고 싶은, 가짜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었습니다.


사라킴뿐만 아니라, 브랜드 '녹스'의 대표 정여진(박보경 분)은 상류 사회의 문턱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무모한 선택을 감행합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배제되지 않겠다는 불안은 그녀를 점점 더 위험한 욕망으로 밀어 넣습니다. 가짜 명품백을 만들며 진짜의 세계로 들어가길 갈망하던 여공 김미정(이이담 분)의 불행한 결말, 무너지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관계와 욕망에 매달리는 최채우(배종옥 분) 회장.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욕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촘촘한 서사 속에서 욕망은 서서히 균열을 드러내고, 결국 모두의 비극으로 완성됩니다. 이 비극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들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직장인들의 자화상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증명하는 시대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합니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모든 것을 멋지게 보이게 합니다."


<레이디 두아> 첫 편 도입부의 대사입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 <"다들 400은 벌지" 명절 허세였나?…실제 직장인 월급 300만원도 안돼>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다가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명절이면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 사이에서 은근한 '숫자' 싸움이 벌어지고, 친구끼리 모여도 연봉 이야기가 오가곤 합니다. 저 역시 금융권에 종사하는 형님과의 연봉 차이가 커 비교를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45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소수의 고액 연봉자들이 끌어올린 수치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직장인을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연봉은 3400만 원대이며, 월 실수령으로 따지면 3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직장인의 허세를 비난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실제 소득 수준과는 별개로 서로를 '숫자'로 평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의 벌이를 실제보다 조금 더 부풀려 말하기도 합니다. 체면과 비교의 문화 속에서 숫자는 쉽게 과장되고, 말과 실제 주머니 사정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생깁니다.


<사회비교 경향성과 주관적 안녕감의 관계: 문화적 자기로 조절된 물질주의 추구의 매개효과>라는 심리학 논문에 따르면, 타인과 자신을 자주 비교할수록 물질적 성공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소득과 직함을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결국 숫자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비교와 불안이 만들어낸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속 사라킴이 가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화려한 겉치레와 거짓말에 집착했듯, 우리도 어쩌면 타인의 시선에 부합하는 가짜 인생을 사느라 허덕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빠듯하게 살면서도 값비싼 외제 차를 굴리고, 무리해서 해외여행을 떠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명품백 사진을 올립니다. 그것이 나의 진짜 형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타인의 기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포장합니다.


실패로 깨달은 '중년의 욕망'


저 역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파이어족'이 되어 지긋지긋한 직장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희망은 결국 저를 향한 독화살이 되었습니다. 과한 욕심으로 코인 선물 투자에 손을 대 수억 원을 날리고 나서야 제가 쫓던 것이 얼마나 허망한 신기루였는지 깨달았습니다. 화면 속 숫자가 치솟을 때마다 회사를 그만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전액 청산을 당했을 때는 제가 쌓아온 20년의 직장생활까지 부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8년간 모은 150억 원이 단 하루 만에 2억 원대로 줄어들었다는 인기 코인 유튜버의 영상은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2017년도 초여름부터 약 8, 9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건가 하는 생각이 가장 힘들다. '내가 걸어온 길이 잘못된 거였나'하는 생각과 '앞으로 다시 올라갈 자신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긴 한다."


그가 150억 손실을 본 날, 라이브 방송 후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더 많이'를 외치던 거대한 욕망이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이 영상은 단지 한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과도한 기대와 조급함이 만들어낸 현 시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직장인들에게, 투자 광풍은 사라킴이 품었던 위험한 욕망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연봉 1억의 역설, "혼자 살아볼 기회는 다음 생애에"

"외벌이에, 세금 떼고 아파트 대출 원리금 상환하고, 카드값에 애들 학원비에 고정비 나가면 남는 건 거의 없어. '요즘에는 혼자 벌어서 혼자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

"우리 아들이 '아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았으면 부자로 살 수 있지 않았어요?'라고 하더라."

"우리 둘 다, 혼자 사는 건 다음 생애에..."


사람들이 소위 성공했다는 여기는 대기업 임원 친구와 나눈 대화입니다. 연봉 1억 원을 훌쩍 넘는, 주변에서 보기엔 부러움의 대상인 위치. 하지만 친구의 말에서 여유보다는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숫자는 분명 상위권이지만, 체감하는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는 의미겠죠.


국세청의 '2024년 1인당 평균 총급여' 자료를 보면, 상위 10%의 연봉은 9100만 원, 상위 20%는 6500만 원, 상위 30%는 5100만 원, 상위 40%는 4100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통계상으로 보면 연봉 1억 원 이상은 분명 대한민국에서 소득 상위 한자리 고소득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친구가 말한 빠듯한 삶과 맞닿은 '혼자 살아볼 기회'는 더 화려한 성공을 향한 욕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책임을 짊어진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더 높은 연봉이 아니라, 덜 얽매인 삶. 어쩌면 우리 시대 중년 직장인들의 진짜 욕망은 '더 높은 곳'이 아니라 '더 자유로운 곳'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듯한 현실에서 한 번에 벗어나고 싶었던 제 바람도, 150억 원이라는 숫자에 만족하지 못한 유튜버의 욕망도, 연봉 1억 원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친구의 현실도 결국은 같은 구조 안에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지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그 숫자가 커질수록 또 다른 부담과 불안이 따라붙습니다. 문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중년의 직장인,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가


드라마 <레이디 두아>의 결말은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주인공 사라킴은 자신의 정체를 폭로하려는 이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도덕성마저 버린 셈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대가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가짜 '부두아'를 진짜처럼 지켜냈습니다.


피 묻힌 손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지킨 그녀의 모습,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욕망을 위해 자신의 진짜 이름조차 지워버렸습니다. 직장인들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팀장, 부장, 상무, 대표라는 직함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양심을 속이거나, 소중한 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하며, 진짜 '나'를 지워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세상에 '만족'이라는 건 '만족'이라는 단어밖에 없어요."


'부두아'를 지켜 내 만족하냐는 형사의 질문에 주인공 사라킴이 답한 말입니다. 직장생활을 20여 년 해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쫓아왔던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숫자가 생각만큼 현재의 삶을 바꿔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월급이 오르고 직급이 오른만큼, 더해진 책임과 해고의 불안이 그 가치를 상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욕망은 결국 충족되지 않고, 또 다른 욕망으로 갈아입을 뿐입니다.


'욕망을 없애야겠다'라는 다짐이 아닌,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요. 남과 비교해 더 많이 갖는 욕망이 아니라, 내 현실 안에서 감당 가능한 선택을 하는 욕망. 한 번에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조급함이 아니라,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 과도한 욕망이 나를 찌르는 독화살이 되지 않도록, 현재의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에게 맞는 방향을 향해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중년에 접어든 직장인에게 욕망은 더 높이가 아니라 더 단단함, 더 빠름이 아니라 더 오래 버티는 힘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가짜가 아닌, 내 이름 만으로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진짜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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