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혈압 이야기 나누다가 '인생네컷' 찍는 친구들이 정겹습니다
중년이 되면 모임의 풍경도 달라집니다.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는 줄고, 대신 낮에 만나 식사를 하고 산책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대화의 주제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직장과 돈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건강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결혼 전까지 거의 날마다 붙어 다니던, 그야말로 '찐 친구'들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섞인 일곱 명의 작은 모임인 우리는 매달 몇만 원씩 회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사는 게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회비는 생각보다 빨리 쌓이고, 덕분에 한 번 만나면 실컷 먹고 놀아도 늘 넉넉합니다. 서로의 생일이 돌아오면 단톡방에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작은 선물이라도 꼭 챙겨주는 애틋함이 남아있는 모임입니다.
이날 모임은 낮 1시에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녁 6시나 되어야 시동을 걸었을 모임이지만, 이제는 모두가 피곤을 달고 사는 직장인이라 시간을 당겼습니다. 일찍 만나서 밀도 있게 놀고, 다음 날의 컨디션을 위해 일찍 헤어지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죠.
술기운 없이도 고기를 실컷 구워 먹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고 예전에 우리가 젊음을 발산하며 활보하던 시내 거리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달라진 거리의 풍경을 보며 옛 기억을 소환하다가, 코인 노래방에 들러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인생네컷' 사진관에 들어갔습니다. 저녁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헤어졌습니다.
"야, 우리 지금 노는 거 고등학교 때보다 더 건전하지 않냐?"
사진을 찍으며 장난스럽게 웃던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습니다. 겉모습은 주름이 생기고 머리칼은 희끗해진 중년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의 마음은 초중고 시절로 돌아가 버립니다. 다만 예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대화의 '디테일'입니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노안 이야기를 꺼내자 봇물 터지듯 건강 토크가 이어졌습니다.
"나 이번에 다초점 렌즈 맞췄어. 처음에는 어질어질하더니 이제 겨우 적응했어. 이제 지하철에서 휴대폰 볼 때 폰트 크게 안 키워도 된다."
그 말이 신호탄이었습니다.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친구, 포도막염 치료를 받느라 고생했다는 친구,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라는 고백, 그리고 매일 혈당 수치를 체크하며 식단을 조절한다는 친구까지. 마치 누가 더 아픈지 내기라도 하듯 병치레 자랑이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모임에서 술이 사라져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친구들과 항상 이렇게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닙니다. 20대 사회생활 초년생 때까지만 해도 종종 모임을 이어갔지만, 결혼을 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서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멀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돌잔치가 끝난 뒤에는 안부 전화조차 뜸해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갔습니다.
다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계기는 부모님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누군가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친구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절친이라는 관계는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슬픔을 나누던 장례식장에서 자연스럽게 단체 대화방이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빈말이 아닌 진짜 약속이 되었고, 그 약속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모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느꼈던 상실감과 가장으로서 짊어진 무게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결국 함께 자란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모두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제각각입니다. 각자의 삶이 워낙 바쁘다 보니 약속 한번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갑작스러운 회사 일로, 혹은 가족 문제로 약속이 당일에 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렵게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그동안의 공백은 단 5분 만에 사라집니다. 금방 수십 년 전 아이들로, 교복 입은 소년 소녀로 돌아갑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기억은 그 어떤 사회적 관계보다 강력한 유대감을 만들어 냅니다. 나를 포장할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초라한 모습, 힘든 상황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 중년의 삶이 고단할수록 이런 편안한 관계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모임의 모습이 달라진 것을 서글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술기운을 빌려야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맑은 정신으로도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술을 좋아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술잔을 들지 않습니다. 다음 날 겪어야 할 숙취가 무섭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더 온전하게 기억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는 또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저를 제외한 모두가 애연가였는데, 이제 우리 모임에 흡연자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야, 우리 이제 술도 안 마시고 커피에 취해서 이렇게 노는 거야?"
술 없이도 우리는 코인 노래방에서 최신곡 대신 90년대 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고, 인생네컷 사진관에서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깔깔거립니다. 예전에는 거나하게 취한 뒤 2차, 3차 뒤풀이로 이어지던 활동들이 이제는 대낮의 메인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술기운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 오히려 그 시간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같은 만성질환은 40대 이후부터 가파르게 상승한다고 합니다. 굳이 통계청 자료를 들춰보지 않아도 곁의 친구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젊을 때는 몸이 고장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달렸지만, 이제는 처음 겪는 노화의 징후들을 공유하며 위로를 얻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 건네는 인사도 "다음에 한 잔 하자"에서 "건강 잘 챙겨라, 운동 좀 하고"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중년이란 젊음이 끝난 서글픈 시기가 아니라, 비로소 자기 삶과 몸을 정성껏 돌아보기 시작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노안과 고혈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함께 노래하고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며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야, 우리 벌써 40년지기야. 진짜 징그럽다."
특히 초등학교 동창은 내 인생의 뿌리를 공유하는 존재들입니다. 굳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 나의 가정사까지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이 늘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어도,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드는 마음의 결만은 변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오랜 친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바로 이 변치 않는 동심을 일깨워 주는 데 있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단톡방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누군가는 새로 먹기 시작한 영양제를 알려주고, 또 누군가는 자녀나 배우자 이야기를 꺼냅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도 우리는 술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 이야기를 나누고, 인생네컷 사진을 찍을 것입니다. 중년의 동창 모임에서 술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대신 채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