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찾은 산, 체력은 달렸지만 기분은 최고였습니다
한국은 흔히 '등산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은 걷기(40.5%)였고, 이어 근력운동(17.5%), 등산(17.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제외하면 등산이 사실상 가장 선호하는 야외 활동 가운데 하나이며, 전년 대비 참여 비중이 가장 크게 늘어난 종목이기도 합니다. 특히 등산은 40대 이후 중장년층에서 참여율이 높은 운동으로 꼽힙니다. 주말이면 전국의 산마다 중년 등산객들이 모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발적인 건 아니었지만, 저 역시 한때는 산을 자주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20대 중반까지 명절 차례를 마치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산으로 향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꾸준히 산을 탔기 때문에 등산에는 늘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8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산은 자연스럽게 삶에서 멀어졌습니다. 가끔 회사에서 워크숍을 겸해 등산을 간 적은 있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주말 산행 등은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등산은 어느새 기억 속 취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히 따져 보니 마지막 등산이 2016년 3월이었습니다. 무려 10년 만에 다시 산을 찾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딸 때문입니다.
"아빠, 우리 등산 한번 가볼까요?"
딸과 데이트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북한산 둘레길을 선택했습니다. 나름 산을 타던 가락이 있기에 북한산둘레길8구간(난이도 '어려움', 소요 시간 2시간 8분, 코스길이 5.2km, 고도 165m)을 택했습니다. 딸아이 기초 체력도 튼튼해 걱정 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10년의 세월이 저를 완전한 중년으로 만들었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둘레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그런데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시작부터 판단 미스가 이어졌습니다. 면티에 후드티, 거기에 파카까지 껴입고 출발했습니다. 산을 조금 올랐는데, 땀이 쏟아졌습니다. 후드티를 벗어 배낭에 구겨 넣고, 파카는 허리에 묶었습니다.
더 큰 실수는 신발이었습니다. 제가 신고 가려던 운동화를 아들이 빌려 달라고 해서 순순히 내줬고, 저는 대신 굽이 조금 있고 고무줄 끈이 달린 출퇴근용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둘레길인데, 뭐'라는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막상 코스에 오르기 시작하니 제가 알고 있던 둘레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높은 산이었습니다.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바위와 흙이 많고 경사가 점점 가팔라졌습니다. 발이 자꾸 미끄러져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올라가야 할 정도였습니다.
"아빠, 이 정도면 거의 90도 아니에요?"
딸이 말했습니다. 몇 안 되는 오가는 사람 중 등산 폴을 들지 않은 사람은 저희뿐이었습니다. 난간도, 줄도 없는 바위 능선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가량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니, 공중에 데크가 매달린 전망대 같은 곳이 나타났습니다. 기자능선이었습니다.
주변은 낭떠러지였습니다. 강풍이라도 불면 그대로 산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멀리 향로봉이 보였지만, 지금까지보다 더 험한 돌산을 30분 이상 더 올라야 한다는 말에 제 신발 상태로는 무리라고 판단해 포기했습니다.
벌벌 떠는 아빠와 다르게 딸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첫 등산인데, 어린 시절의 저처럼 날아다녔습니다. 산 좀 탄다고 자신만만하던 아빠만 체면을 구긴 하루였습니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내 젊음을 딸에게 물려준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한때는 제가 부모님 앞에서 성큼성큼 산을 오르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딸의 뒤를 따라가며 숨을 고르는 중년의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산에 가기 싫어서 울면서 아빠를 따라나섰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곤 했습니다.
"아빠 늙으면 너희가 가자고 해도 못 간다."
그때는 그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늙어서 산을 못 가게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가족 곁을 떠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딸과 함께 걷던 산길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정상 탈환은 포기하고 중간에 난이도 '보통' 코스로 빠졌습니다. 내려와 근처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으며 약 세 시간 반의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오며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왜 중년이 되면 그렇게 산을 찾게 되는지 말입니다. 파릇파릇한 열아홉 살 딸이 느끼는 산과, 갓 50대에 들어선 아빠가 느끼는 산은 분명 달랐습니다.
딸에게 산은 그저 새로운 경험이고 체력을 단련하는 공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산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흐르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잡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일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잠시 멀어지면서 상쾌한 기분이 이어졌습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상 가까이 서서 숨을 크게 들이쉬니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산에서 늘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호연지기라는 게 이런 거다."
그때는 그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호연지기의 참뜻도, 자식과 함께 산을 오르는 부모의 마음도. "아빠, 우리 등산 한 번 가볼까요?"라는 말을 먼저 꺼낸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산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습니다. 매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어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릴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작년 말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번복한다고 했을 때 쏟아진 기사 제목들이었습니다.
'상무님(부장님) 등산 사진 안 봐도 된다…카톡 '친구 목록' 복원 시작'
괜히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보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한 장 올리고,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 볼 수 있는 멀티프로필로 만족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한 친구가 "너도 이제 늙었구나. 등산 사진 ㅋㅋ"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십여 년 만에 등산을 하면서 왜 과거의 부장님들과 임원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하나같이 등산 사진이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에 올라 땀을 흘리고 나니 그들이 매주 산을 찾던 이유를 저도 느꼈습니다. 중년이 되어 산을 찾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이 정리된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