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까마귀호 항해 일지 작성
작성자: 케이-6789, 까마귀호 함장
작성일: 제국력 8455년, 1월 20일 왕립대도청에서 복귀 까마귀호
나는 1년간의 감금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왕립대도청의 차가운 문을 나섰다.
긴 장거리 워프를 마치고 셔틀에서 나와 푸른 숲 조합 소속 항구를 지나 까마귀호를 찾아갔다
어두컴컴한 까마귀호의 함교로 돌아와 조종석에 앉으니, 낡은 함선 특유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 익숙한 기계음이 나를 감쌌다. 지난 1년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까마귀호 함교에 홀로 앉아 항해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황태자의 죽음은 제국 전체를 1년간의 깊은 애도 기간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국은 슬픔에 잠겼고, 나는 그 죽음의 진상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왕립대도청에 갇혔다.
나의 모든 기억, 신체 정보, 사상까지 철저히 검증받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진우는 영웅이 되었고, 푸른 숲 조합은 1급 공급처로 승격되었지만, 시민권 없는 복제인간인 나는 그저 조합의 자산으로서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제국의 심장, "태양의 길" 행성에서 나는 자료로만 보던 제국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직접 목격했다. 100년간 전장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제국의 수도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제국의 여러 부처와 관청을 오가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나의 탄생 비밀도 알게 되었다.
조사관들과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나는 고대 유적 행성에서 발견된 유전자 샘플을 바탕으로 한 10만여 복제 테스트 중 6789번째 실험체였다. 100년의 복무 기간 중 절반이 지났고, 아직 100년이 더 남아있었다. 100년 후에는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막연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조사관과 여려 귀족들은 나에게 즐거운 듯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이야깃거리였던 것 같다
황태자의 장례식은 제국의 근간을 보여주는 장엄한 의식들의 연속이었다.
자료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많은 행사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황제는 24시간 동안 "시간의 길"을 걸으며 제국의 시작과 역사를 복기했다.
고대 AI '패왕'이 지배했던 시절, 마법과 같았던 나노머신 기술과 과학의 발전, 그리고 그 패왕을 물리치고 인간이 우위에 서게 된 시황제의 위업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시간의 길"이 끝나자 인간의 욕심과 시기심, 패왕과 손잡았던 인간들을 상징하는 의식들이 이어졌다. 귀족들은 30일간 "하늘의 탑"을 오르며 분열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고, 시민들은 1년간 "통곡의 강" 의식을 통해 금식과 통금을 지키며 AI 통치 시절의 어둠을 반성했다. 모든 자동화 장비를 멀리하고 직접 목각상을 만들어 강에 흘려보내는 의식은 제국의 오랜 전통과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틈만 나면 이번 전쟁에 대해 떠드는 귀족들 조사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서 이번 전쟁에 대해 알게 되었다
헬레니아 제국이 천칭 항성계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100만의 함선을 이끌고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천칭 항성계의 불규칙성이 강한 항성계로 헬레니아 제국 함대의 발목을 잡았고, 고성 황태자가 이끄는 제국 함대에 의해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헬레니아 제국의 클라크 제독의 계책으로, 고리 은하 행성 제국 황제를 목표로 한 계략이었다. 초반 승전에 기뻐한 황제는 직접 전장으로 향했고 헬레니아 제국의 계획은 황제를 변방으로 유인해서 제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황제가 도약의 문을 나온 후 단거리 도약할 곳에 매복해 있었다. 천칭 항성계의 불규칙성 속에 10만의 함대를 소행성으로 위장한 후 10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를 잡기 위한 길고 긴 계획이 성공할 순간이었지만, 황태자 고성의 빠른 판단으로 황제의 퇴로를 뚫어준 것이었다. 황제는 황태자 덕분에 살 수 있었지만, 위대한 차기 황제를 잃어버린 상황이 되었다.
클라크 제독을 잃은 헬레니아 제국은 천칭 항성계에서 철수하였고, 고리 은하 제국은 승리하였다. 그러나 황태자를 잃은 고리 제국은 승리보다 더 큰 손해를 보았다. 이번 전쟁으로 헬레니아 제국과 오히려 왕래가 많아졌고, 조합과 일반 무역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제 까마귀호의 함장으로서 다시 일상 임무를 시작한다.
이상 복귀 기록 끝.